‘앉으면 죽산(竹山), 서면 백산(白山)’. 봉기한 농민들이 손에 죽창을 들고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조선왕조 고종 때인 1894년 5월. 농민군이 모두 앉으면 손에 든 죽창이 숲을 이루어 산처럼 보였고(竹山), 그들이 다 함께 일어서면 하얀 옷을 입은 농민들의 모습이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산(白山)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100년도 넘게 세월이 흘러 2018년 4월 24일. 1895년 4월 24일 일본에 의해 처형된 녹두장군 전봉준의 순국 123주기, 서울 종로 네거리에 동상 하나가 세워지고 제막식이 열렸다. 사진 속 형형한 눈빛을 무척이나 닮은 동상.

123년 전에는 압송되어 서울(한양)에 왔지만, 2018년엔 농민대표로 서울 한복판에 터를 잡고 앉은 녹두장군 전봉준. 미루어 짐작컨대 그는 분명 타임머신을 타고 농민대표로 서울에 왔을 것이다. 100년 넘게 가슴 속에 품어두었던 말들도 무척이나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읊조리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123년 전이나 지금이나 농민과 농업은 변한 게 별로 없구나...”

1895년 전봉준의 사진과 123년 뒤 종로에 세워진 동상 [자료=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사업회 ]

올해도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의 뜻을 기리는 행사가 전라북도 정읍,고창,부안 일대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그 중 <황토현동학농민혁명기념제>가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와 정읍시 주최로 동학농민혁명 당시 최초의 농민군 전승지 정읍 황토현전적지에서 5월 12일부터 13일에 걸쳐 이틀 동안 열리게 된다. 그 이전과 이후에도 전북에서는 여러 다양한 동학농민혁명 관련 행사가 펼쳐진다.

올해로 제 50회를 맞이하는 <황토현동학농민혁명기념제>는 기념식, 동학농민혁명대상 시상식으로 막을 올린다. ▲구민사제례, ▲갑오선열 ▲위패봉안례, ▲무명동학 농민군 위령제, ▲전국 청소년 토론대회, ▲전국 역사퀴즈 페스티벌, ▲전국 농악경연대회, ▲동학농민혁명 특별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본행사에 이어 계속된다.

기념제가 정읍시 주최라면, 탐방행사나 농민봉기 재현 행사 등은 부안에서 열린다. 제124주년 동학농민혁명 백산봉기 기념대회는 5월 1일 부안군 백산면 일원에서 열렸다. 동학농민혁명 백산봉기대회는 제폭구민, 보국안민의 기치로 수 만 명의 농민이 모여 군대를 조직하고 격문과 행동강령을 만들어 본격적인 농민혁명을 시작한 곳이 바로 부안군 백산면이기 때문.

고창군은 녹두장군 전봉준의 뜻을 기리는 유적지 탐방교육을 실시한다. 오는 6월 4일까지 고창군 관내 초등학교 3곳과 중학교 1곳, 고등학교 3곳을 선정해 고창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탐방과 전봉준 장군 생가터 방문, 무장기포지와 동학홍보관을 둘러보는 뜻깊은 행사다. 특히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배꼽 속에 들어있던 비결이 세상에 나오는 날 한양이 망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전설은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도 위력을 발휘했던 전설.

동학농민혁명 캐릭터 [자료=(사)동학농민혁명 계승사업회]

최근 전라북도 내 4개 시군(전주시, 정읍시, 고창군, 부안군)이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을 추진 중이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일시 중에서 전주화약일(전주시),무장기포 기념일(고창군), 황토현 전승일(정읍시), 백산봉기대회일(부안군) 중에서 하루를 선정해 법정기념일로 만들자는 것. 지난 2004년 3월 ‘동학농민혁명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제정되었지만 국가기념일 제정은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반성에서 시작된 일이다.

또한 동학농민혁명 관련 소설도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소설가 이성수씨의 역사소설 <70일의 비밀>과 동학혁명(백주년)기념관 이윤영 관장의 장편소설 <혁명>이 출간됐다. 이어 유성엽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도 개헌 헌법 전문에 동학농민혁명정신이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서울로 간 전봉준, 아니 서울 종로에 앉은 녹두장군 전봉준은 이 모든 진행상황을 눈여겨 지켜볼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아 농민이 대접받고 사는 나라, 농민과 국민이 더불어 행복한 나라가 되는 날을 두 눈 부릅뜨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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