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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문학] 겨울 내 고향

겨울이 시작할 무릎이면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집집마다 1년에 한 번씩 볏짚을 엮어 지붕을 노랗게 덮었다. 남자 두 사람이 지붕 위에 올라가 비가 새지 않도록 서로 손발을 맞추어 엮은 짚을 꼼꼼하게 덮었다. 1년 내내 햇빛과 비에 색이 바랜 너덜너덜한 누런 지붕은 새로 단장하여 말끔하고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또한 여자들은 집에서 밀가루 풀을 직접 끓이는데 풀이 걸쭉해지면 서서히 식혔다. 문풍지는 대나무로 문살을 만들었다. 그 풀을 빗자루에 묻혀서 하얀 창호지에 바르면 바람을 막아주는 훈훈한 문풍지가 되었다. 그날은 가족들의 짜랑짜랑한 웃음소리가 집 마당을 가득 메웠다.

겨울 칼바람이 문풍지를 뚫으면 어머니는 쓰다 버린 누른 종이로 구멍을 메꾸어 나갔다. 특히 나는 우리 집 대문에 손님이 오면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구멍으로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날은 남루한 옷차림의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대문을 열고 마당 한 가운데 들어섰다.

나는 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으며 어머니한테 신호를 보냈다. 어머니는 밥그릇에 보리쌀을 담아 스님의 가방에 부어 주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합장하며 인사를 하였다.

나는 어머니와 스님의 대화가 무슨 뜻인지 그 영문을 몰랐다. 어머니는 그래도 구멍이 날 때마다 큰 구멍은 큰 목소리로 작은 구멍은 작은 목소리로 잔소리를 하며 구멍을 메꾸었다. 문풍지는 조각들로 붙인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어머니는 겨울이면 불씨를 지키기 위해 화롯불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눈이 오는 날이면 건넌방 아랫목에 묻어둔 고구마를 꺼내어 화롯불 속에 넣고는 자식들에게 지난날의 힘겨운 삶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앞날에 살아가는 방법을 나침반처럼 가리켜주곤 하였다.

고구마가 익으면 어머니는 손이 튼 손가락으로 뜨거움을 참으며 고구마 껍질을 정성껏 한 겹 한 겹씩 벗겨서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고구마를 호호 불며 이빨로 베어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 하였다.

나는 고구마를 조금씩 떼어서 어머니에게 주면 어머니는 조금 전에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르다면서 사양하였다. 어찌 어머니는 먹고 싶지 않았겠는가? 자식들을 위하여 늘 ‘나는 배가 부르다.’ 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다. 세월이 흘러 겨울이 몇 십 번이나 바뀌었고 이마에 주름은 깊은 계곡처럼 폐였다. 자식들을 위해 고된 삶이 이마의 주름과 비래한 것이었기에 나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어머니를 떠올려 본다.

나는 스케이트 타기를 좋아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눈이 오는 날이면 마을 친구들과 모여서 물이 고인 논바닥에 스케이트를 타는 것을 즐겼다. 스케이트는 나무 판을 바닥에 대어 못으로 박고 그 나무 판 밑에 굵은 철사를 양쪽으로 박았다. 그리고 막대 끝에 송곳처럼 생긴 못을 박은 것을 양손에 잡고 앉은 자세로 얼음판을 짚고 앞으로 나아가며 타고 놀았다.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 집에는 스케이트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아버지가 스케이트를 만들었다고 자랑을 하였다. 친구들과 함께 스케이트를 타러 가면 나는 친구들 것을 빌려서 타야 했다. 친구들이 열 번 타면 나는 세 번 정도 탈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나는 스케이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매일 밤 기도를 했다. 그런데 소원이 이루어졌다. 초등학교 5학년 작은 오빠가 스케이트를 힘들게 만들어 주었다. 힘이 세고 말이 없는 작은 오빠가 만들어준 스케이트가 입이 무거운 무게만큼 스케이트도 무거워서 좋았다.

겨울 햇살은 유난히 눈에 반사되어 빛나는 오후였다. 도로를 가로 질러가면 모서리에 웅덩이가 있는 논이 있었다. 나는 여동생과 스케이트를 타기 위해 논바닥에 앉았다. 처음에는 내가 탈 때 동생이 뒤에서 밀어주기로 했다. 동생과 나는 논바닥에서 서로 웃으며 재미있게 타고 놀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동생은 나를 보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한 번만 더 타고 싶어서 동생한테 밀어달라고 했다. 그러자 내가 너무 힘을 주었는지 논 모서리에 있는 웅덩이에 한 쪽 다리가 얼음을 깨고 빠지고 말았다. 나는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동생은 나를 보며 계속 울기만 하였다.

나는 얼음이 깨지면서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마침 오리댁 아저씨가 완행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헉헉’거리며 달려와 나를 웅덩이에서 꺼내 주었다. 물은 별로 깊지 않았지만 당황한 나는 고드름처럼 굵은 얼음을 밀어내고 웅덩이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이미 손발이 꽁꽁 언 상태였다. 울어도 눈물은 이내 얼음판처럼 얼어버렸다. 어머니는 밤새도록 나의 꽁꽁 언 손발을 쓰다듬으며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겨울을 지내면서 어머니는 봄 농사를 짓기 위해 아름다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배 수 자

(시인, 문학박사, 수원 영덕초 수석교사)

한국영농신문  agrienews@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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