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암소 한 마리가 있었다. 덩치도 크고 튼튼하였다. 일도 무척 잘하는 일소였다. 우리 집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 가족 같은 존재였다. 가끔 새끼까지 쑥쑥 잘 나서 오형제 학비의 밑거름이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그 암소를 우리 집 식구처럼 대했다. 한 마디로 생구(生口)였다.

소가 없는 집에서 우리 암소를 일소로 빌려 가면 사람 몇 품으로 우리 집 일을 대신 하여 줄 정도였다. 우리 소는 호리소였다.

아버지는 가끔 큰 쇠빗으로 암소의 등을 긁으면서 ‘큰아들이 너만 같았으면 좋겠다’ 라고 혼자 말씀하셨다. 그러면 우리 암소는 아버지 말씀을 알아듣는지 커다란 눈망울을 끔뻑거렸다. 큰형은 쓰잘 데 없는 잡기(雜技)로 부모님이 속을 무척 썩혀 드렸다. 6.25 전후의 어려운 시골에서 진공관 라디오를 사온다, 유성기, 카메라, 새총, 심지어는 그 당시 서울에서나 유행하던 풀빵 굽는 기계까지 사다가 법석거렸다. 장남이 그러니 부모님 마음은 오죽했으랴!

아침이면 달랑거리는 워낭소리는 바람 따라 울려 퍼지는 산사(山寺) 풍경소리 같았다.

우리 집 암소는 전천후 농기구였다. 밭일, 논일, 길마질, 마차 끌기 등, 힘든 일을 도맡아 하였다.

소에 대한 나의 역할은 풀을 뜯기거나 꼴을 베어오는 일이었다. 큰 작두로 여물 써는 일은 기중에 큰형이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혼자서 하는 손작두는 한약방에서 약재를 썰듯 혼자서 할 수 있으나 큰 작두질은 마음 맞는 2인 1조가 하는 일이었다. 작두로 여물을 썰려면 우선 마당에 큰 멍석을 깔았다. 그러면 큰형이 광에 세워진 작두를 멍석 위에 뉘였다. 아버지는 작두를 타고 앉아서 짚을 먹이고, 큰형은 왼손으로 작대기를 짚고 오른발로 작두질을 하였다. 이때 오른손에는 작두날에 묶인 새끼줄을 올렸다 내렸다 하였다. 이 작두질은 아무나 시키지 않았다. 짚을 작두에 먹이는 아버지와 작두날을 내려 밟는 큰형과 화합이 맞지 않으면 아버지의 손가락이 잘려나가기 십상이다.

짚을 작두날 밑으로 먹이는 것, 작두날을 내려 밟는 것, 순간적인 상황이의 삼박자가 맞아야 했다. 행여 한눈을 팔거나 딴 생각을 하면 아버지의 손가락은 온전할 리 없었다. 지금은 다 기계가 해주지만…….

들일을 하고 해거름이 되면 아버지와 암소는 같이 돌아왔다. 아버지 손에는 고삐가 쥐여져 있었다. 혹가다 고삐를 놓쳐버려도 소는 혼자서도 어슬렁거리며 집을 잘 찾아와 외양간으로 들어갔다.

땀을 뻘뻘 흘리는 여름 냇가에 가서 등목을 시켜주면 등줄기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났다. 추운 겨울에는 아버지가 손수 짠 덕석을 덮어주었다. 양지 바른 곳에서 궁둥이에 붙은 똥딱지를 떼어주고, 콩알만하 진드기도 잡아 주었다. 가끔 쇠빗으로 털을 긁어 주었다. 입주위에서는 항상 침을 질질 흘렸다. 겨울에는 그게 얼어 작은 고드름이 수염처럼 달렸다. 굴뚝 같은 콧구멍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났다. 커다란 눈망울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深淵)이었다.

우리 암소는 적어도 세 가지 사람 말을 알아들었다. “이랴, 워, 들버!”였다. ‘이랴’는 앞으로 가라, ‘워’는 서라, ‘들버’는 고삐가 다리 안으로 들어갔으니 다리를 들으라는 소리였다.

꼬리는 연신 파리채가 되었고, 앉아 있으면 언제나 되새김질을 하였다.

그렇게 사랑을 받던 우리 암소는 6.25가 일어난 1950년 더운 여름에 퇴각하는 인민군에게 큰형을 대신하여 끌려갔다.

큰형은 동네 청년 두 명과 의용군으로 자원하였다. 그것은 물색 모르는 큰형의 우쭐거리는 잘못으로 그리됐다. 통 크고 지혜로운 어머니는 큰형을 의용군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큰형을 장질부사 환자로 둔갑 시켰다. 그 당시 장질부사는 염병(染病) 중의 염병이었다. 그때 최고의 욕은 “엠병, 땀병 고도마리 속병!”이었다. 또는 “엠병할 놈!”이라고 욕을 하였다. 장질부사는 땀이 안 나면 죽는다고 하였다. 염병 환자로 둔갑한 형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한 여름철에 두꺼운 겨울 이불을 쓰고 앓는 시늉을 하였다. 방은 엿을 고는 방처럼 쩔쩔 끓었다. 하기야 그 당시 장티프스는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형을 의용군으로 데리러 온 땅꼬바지에 권총을 찬 인민군 장교와 따발총을 멘 졸병을 형이 장질부사 환자라는 말에 기겁을 하였다. 후끈거리고 후덕지근한 방에서 덜덜 떨고 있는 큰형을 본 인민군은 기겁을 하였다. 그들은 형 대신 외양간에 매어 있는 우리 암소를 요구하였다. 소심하고 통이 작던 아버지는 우리 집 생구이며 큰 재산인 소 앞에 주저주저하였지만, 어머니는 소의 고삐를 망설이지 않고 인민군의 손에 덥석 쥐어 주었다.

뒤돌아보며 울며 질질 끌려가던 우리 암소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 앞논 곁을 지나가던 암소의 워낭소리는 마치 꽃상여의 꼭두가 흔들어 대던 요령 소리 같이 바람결에 타고 구슬프게 들어 왔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마치 우리 암소의 마지막 눈망울처럼……. 무명 행주치마로 눈물을 훔치던 어머니 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의 저편에 아련히 남아 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갔어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있다. 워낭소리 슬피 울리며 인민군에게 끌려가던 우리 암소의 눈망울이 그리워진다. 1951년 1. 4 후퇴 때, 우리 가족은 마곡사를 거쳐 충남 공주로 피난을 갔다 왔다. 1952년 춘사월에 어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육남매를 두고. 그때 내 나이 아홉 살이었다. 하기야 그렇게 부모님 속을 썩이던 큰형도 지금은 부모 곁에 누워 있다. 거기서도 속을 썩혀드릴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 옆에는 우리 암소가 되새김질하며 같이 있겠지?

쇠죽 쑬겸 우리가 자는 건너방에 군불을 때던 아버지, 한쪽 마음을 도려내며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인민군에게 자식 같은 우리 암소의 고삐를 쥐어주던 어머니! 그때, 인민군에게 의용군으로 끌려간 동네 청년 두 명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어미를 졸졸 쫓아다니며 퉁퉁 분 어미젖을 머리로 치받아 꿀꺽 먹던 송아지, 우리 암소는 얼룩배기 황소는 아니었지만 누런 황소였다. 어미 찾는 새끼를 뒤로 하고 우리 암소는 어떻게 갔을까? 사랑방 벽에는 노간주나무로 휘어 놓은 코뚜레가 걸려 있었다. 송아지용 코뚜레였다.

여름 빗속으로, 바지게 없는 지게에다 쟁기를 지고 소고삐 이랴 하며 집에 오시던 아버지, 아버지보다 우리 암소에게 우선적으로 구정물에 보릿겨 타서 목을 축여주시던 어머니.

“어여, 먹어라! 얼마나 목이 말랐니?” 쇠잔등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솟았다. 쇠꼴을 베어오던 형들, 쇠빗으로 소의 엉덩이에 붙은 똥딱지를 떼 주던 나, 뽑힌 쇠털을 모아 동그랗게 뭉쳐 공놀이하던 동생, 옥수수 쪄 내오던 큰 누나!

이젠 우리 암소도 부모님도 형 둘도, 그리고 단 한 분이던 누나도 다 볼 길이 없다. 우리 암소의 해설피 웃던 미소도…. 다 그리움의 여울목에서 맴돌이한다.

한 폭의 수묵화(水墨畵)처럼 농담(濃淡)은 진하게 스며들고 퍼져 나간다. 아릿하게 추억이라는 그림 속에서 워낭소리 울려 퍼지듯이 퍼지고 있다. 은은하게 추억과 그리움의 여백(餘白)을 채우며…….

번지고 스민다. 일하고 와서 땀이 무럭무럭 나는 우리 암소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말없이 고마움을 표하던 아버지 손길, 콩이라 한 줌 더 쇠죽솥에 넣어주시던 어머니!

우리 암소는 우리 집 식구였다.

<정영인> 약력

경기도 안중 출생

인천문인협회 회원

수필가, 숲해설가, 한국어 강사

수필집 「비움과 채움」

한국영농신문  arom@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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