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가 몰고 온 바람이 거세다. 이 대표는 청년 세대의 분노는 기회의 불공정에 있다며, 개선책으로 ‘능력‘ 위주의 선발을 내세웠다. 당대표 공약 1호였던 대변인단 토론 배틀도 인기를 끌며 진행 중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논쟁과 토론에서 이긴 사람에게 당 대변인단이 되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 여기에 더해 내년 지방자치제 선거 후보들에게 일종의 자격시험을 치러 통과하는 사람에게만 공천 기회를 주겠다고도 했다. 이 대표의 새로운 시도와 관점에, 여론은 참신하다, 기대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채용과 선발은 자격의 인증임과 동시에 생존권의 확보이기도 하다. 명문대학교에 들어가는 것, 좋은 대우를 받는 큰 회사에 들어가는 것 등이 특히 그렇다. 20대 청년이 분노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요컨대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이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불만 없는데,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회사에 정규직이 되는 건 못 참겠다는 것이다. 지금 50대 이상이 한국경제 호황의 결과로 쉽게 대가를 얻던 시절과 비교해 보면, 20대 청년들의 분노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3저 효과가 생겨난 80년대 중반부터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 약 10여년은 한국 경제의 황금기였다. 경제 성장률은 높았고 기업들은 앞다투어 투자에 열을 올렸다. 수출이 늘어나면서 회사의 규모가 커지니 외국어 가능한 대졸 직원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1990년 대학진학률이 33% 정도였으니 대졸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 대기업 취업하기 편했던 시절이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학번까지가 누렸던 행운이다.

먹고 살려면 직업이 있어야 하는데 대한민국의 20대가 원하는 일자리의 수는 적으니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당연히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도 많다. 이들은 불안한 미래와 무너진 자존감에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사진=픽사베이]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경영은 보수적으로 변했다. 부채 비율을 낮추고 현금을 확보하고 있지 않으면 언제든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도화된 경제구조도 한몫 했다. 이전과 달리 투자와 경쟁이 한계에 이르러서 돈을 쓰려고 해도 마땅치 않다. IT와 생산기술 향상으로 기업활동에 필요한 직원 수도 줄어들게 됐다.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해외에 회사를 세운 우리 기업들의 국내 매출액 비중도 낮아졌다. 기업들이 국내에서 직원을 뽑을 이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2020년 기준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73%에 이른다. 전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업은 화이트 컬러 일자리를 안 뽑고, 그 자리를 원하는 청년들은 넘쳐난다. 요즘 취업난의 원인이다. 

먹고 살려면 직업이 있어야 하는데 대한민국의 20대가 원하는 일자리의 수는 적으니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당연히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도 많다. 이들은 불안한 미래와 무너진 자존감에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이들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하는 50대들은 이미 꼰대가 되어 버렸다. 청년들이 보기에, 586 세대는 시절 좋을 때 태어나 운 좋게 일자리를 얻어 집 값 쌀 때 집사서 10억이 넘는 자산가들이 된 오만한 아저씨, 아줌마들이다. 

이런 와중에 LH 사태가 터졌으니 20대를 중심으로 상실감과 배신감이 들불처럼 일어난 것은 당연했다. 결과는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 여당의 전패. 박근혜 정권이 부정부패로 무너지고 나서 국민들은 이걸 고쳐보라고 민주당을 밀어줬다. 여기에 더해 국회의원 180석이라는 전무후무한 권력을 넘겨주기도 했다. 희망을 가지고 믿었던 정부이기에 사는게 가장 팍팍한 20대의 좌절과 분노는 더 크다. 이들이 원하는 건 당장은 공정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백만장자가 되는 걸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노력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를 열망한다. 지극히 당연한 주권자로써의 명령이다. 정부와 여당, 정치권은 하나가 되어 이들의 분노에 귀를 기울이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직에 나선 자들의 의무다.

젊은 나이에 필기시험으로 사람을 뽑으면 경험이 많은 전문가가 배제될 수 있다. 어떤 기준으로 테스트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사진=픽사베이]

이 대목에서 드는 의문 하나가 있다. 한정된 일자리, 늘어날 일자리 등을 어떻게 배분하느냐, 즉 어떻게 뽑는 게 공정할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늘 부작용은 뒤따랐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 일장일단이 있다. 

서양에서 근대 이전에는 왕족과 귀족이 아는 사람을 관료로 임명하는 정실주의(情實主義, cronyism)가 대세였다. 혈연과 지연으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우리 정서와 비슷하다. 그러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민주주의와 함께 정당정치가 발달하게 된다. 정권을 차지한 측이 최고위직부터 말단까지 일자리를 접수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를 엽관주의(獵官主義, Spoils System)라고 부른다. 관직을 사냥한다는 의미로 집권 세력이 정부 조직을 전부 차지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공무원들은 정치권에 줄을 대기 시작한다. 정권 교체되면 업무는 단절되어 다시 시작해야 하는 비효율도 나타났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실적주의(實績主義, Merit system)이다. 앞선 두 제도는 개인의 역량보다는 혈연·지연·인연 등 연고를 중시했으므로 비대해진 정부 조직을 이끌고 나가는데 한계가 있었다. 실적주의는 말 그대로 똑똑해서 일의 실적(성과)을 낼 수 있는 사람을 뽑아 일을 맡기겠다는 방식이다. 특정한 절차를 통해 걸러내고 그렇게 뽑은 사람의 신분 보장을 해주어 연속성 있는 업무를 수행토록 했다. 현대 여러나라 공무원 제도의 골격이 되는 제도다.

이 역시 문제는 있었다. 먼저 일을 시켜보고 한참을 평가하기 전에는 실적을 낼 인재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모종의 테스트가 생겨났는데, 이게 문제가 된다. 젊은 나이에 필기시험으로 사람을 뽑으면 경험이 많은 전문가가 배제될 수 있다. 어떤 기준으로 테스트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조선의 경우 성리학을 국시로 삼았으므로 과거시험의 과목도 유학 경전을 중심으로 했다. 무과나 잡과 같이 실용적 지식을 묻는 시험도 있었으나 이 출신들은 마이너, 철저히 비주류였다.

이렇게 뽑힌 성리학과 중국 고전문학의 전문가들은 과학기술로 무장한 19세기 서양과 일본 세력의 도발에 맞설 지식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세계관이었다. 의(義)와 예(禮)에 경도된 관료들은 실(實)과 속(俗)을 천한 것으로 보고 과학과 기술, 외교와 군사, 상업과 공업 등 민중의 삶과 직결되는 지식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처럼 사회 지도층의 문약한 풍조가 조선 왕조 멸망의 도화선이 됐다. '능력'으로 관료를 뽑는 실적주의의 폐단이었다. 

마이클 영의 소설 'Meritocracy' 표지 [사진=예스24]

실적주의는 일종의 인재 채용 방식이다. 반면, 부나 권력과 같은 희소한 자원의 분배에 있어서 사람의 재능, 노력 및 성취도를 평가하여 차등적으로 보상함을 추구하는 정치 철학도 있다. 능력주의로 번역되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가 그것이다. 능력보다는 우수한 성적, 업적, 공로 등으로로 표현하는게 더 정확한 번역이라는 의견도 있다. 데모크라시는 민중에 의한 통치라면, 메리토크라시는 성적에 의한 통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최근 공정이 화두로 등장하면서 주목받는 개념이다.

원래 이 단어는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라는 영국의 사회학자에 의해 탄생됐다. 그는 1958년 펴낸 <능력주의의 부상>이라는 소설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Merit(능력/성적)=IQ(지능)+Effort(노력)이라고 정의하고 선천적 재능에 노력을 더한 값이 성적, 즉 능력이 된다고 했다. IQ는 유전과 가정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때문에 마이클 영은 능력은 공정하지 않으며 이를 기준으로 사회-경제적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암시했다. 

작년 10월 강득구 의원(더불어민주당)과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부모의 경제적 배경에 따라 대학 교육 격차가 얼마나 발생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국장학재단에 자료를 요청한 적이 있다. 이들이 공개한 ‘2020년 대학별 국가장학금 신청자 현황’ 자료를 보면, 국가장학금 신청자 중 서울대의 경우 고소득층(소득 8·9·10분위) 자녀 비율이 62.6%로 저소득층 자녀 비율(18.5%) 보다 약 3.4배가 높았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확대하면 고소득층 자녀 비율이 56.6% 조금 낮아지지만 여전히 저소득층 자녀(21.5%) 보다 2.6배 높았다. 잘 나가는 부모를 만나, 관심과 지원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좋은 대학교에 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사교육비를 얼마나 퍼부었느냐가 핵심은 아니다. 지적인 대화, 책 읽는 집안 분위기, 아이들의 생활을 관리해주고 감정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능력, 친인척 중 멘토링을 해줄 인물 여부 등이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물적, 인적, 정서적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업 성적을 좋게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소위 SKY 학벌을 가진 자가 많은 보상을 받는 능력주의가 평등하다고 볼 수 있을까? 재산과 함께 능력이 세습된다면 말이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사의 노력이 소중한 것처럼, 공동체에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부의 노력도 값진 법이다. 의사의 땀과 농부의 땀에 왜 차이가 있어야 할까?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5월 24일 경주시 안강읍 옥산마을를 방문해 직접 모내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청와대]

능력과 업적에 따라 보상을 달리하자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우리가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은 그 격차다. 임금과 자산의 격차가 소위 선천적 환경에 지배 받는 능력에 따라 너무 크게 벌어진다면 과연 공정할 것인가?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사의 노력이 소중한 것처럼, 공동체에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부의 노력도 값진 법이다. 의사의 땀과 농부의 땀에 왜 차이가 있어야 할까? 모두 사람의 정신과 육체의 노고를 동반하는 '노동'이기에 존중받아 마땅하다.

얼마전 농정 당국은 2020년 농가소득이 4503만원으로 역대 최고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따지고 들어가면 놀랍다. 농사를 지어서 벌어들인 돈인 농업소득은 고작 1182만원. 십 수년 째 제자리다. 이밖에 농업 아닌 부업으로 벌어들인 농외소득이 1161만원, 각종 보조금과 타인에게 받은 돈인 이전소득이 1426만원이다. 새벽에 나와 저녁까지 휴일도 없이 일하는 농부들의 평균 소득이 이렇다. 의사는 커녕, 도시 노동자 평균 소득에도 못미치는 초라한 보상이다.

20대 청년의 분노에 각 정당은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고 있다. 마찬가지로 농부들의 분노에도, 비정규직의 분노에도,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분노에도 관심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학생의 공부도,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 노동자의 수고도, 지하철 자동문을 고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손길도 모두 소중하다. 공정도 좋지만, 다함께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공동체가 추구하는 헌법적 가치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 데모크라시인가, 메리토크라시인가?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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