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한 겨울에 차가운 방안으로 뜨거운 화로를 가져왔다고 상상해보자. 가만히 두면 식는다. 대신 방안의 공기는 훈훈해진다. 화로 속의 나무가 불타며 생긴 열기가 방 안의 공기를 데우는 에너지로 전환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무-불-화로-공기-따뜻함 순으로 물질의 에너지가 형태를 바꾸며 이동한다. 하지만 잠시 뒤 방안의 따뜻함도 바깥 공기에게 에너지를 빼앗기며 다시 차가운 상태가 된다. 나무가 타며 낸 열은 결국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로 변해 날아가 버린다.

이렇게 하나의 물질(상태)이 다른 물질(상태)로 변환할 때 소실되는 물리량을 ‘엔트로피‘(Entropy)라고 한다. 엔트로피는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가 1865년에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하며 사용한 단어다. '에너지'라는 말의 어원인 그리스어 ἐνέργεια(에네르게이아)에서 전치사 ἐν(엔)을 남기고, '전환'이라는 의미의 τροπή(트로페)를 조합해 만들었다. '에너지의 전환'이라는 뜻이다. 

앞선 사례에서 열기는 궁극적으로 주변 공기에 흡수되면서 바깥 온도와 같아지는 상태가 된다. 이를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하나의 공간(방, 지구, 우주)의 균질도(상태가 같게 되는 정도)가 높아진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평형 상태로의 이동이며 에너지 측면으로는 안정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임을 의미한다. 마치 엄청나게 흥분했다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평상심을 되찾는 인간의 마음과도 같다. 

열기는 궁극적으로 주변 공기에 흡수되면서 바깥 온도와 같아지는 상태가 된다. 이를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하나의 공간(방, 지구, 우주)의 균질도(상태가 같게 되는 정도)가 높아진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평형 상태로의 이동이며 에너지 측면으로는 안정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임을 의미한다. [사진=픽사베이]

생태계에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풍요로우면 개체수가 늘어나고 불안하면 줄어든다. 개체군에 밀도가 높아지면 전쟁, 질병, 심지어 같은 종을 잡아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 일어나기도 한다. 개체군 전체가 살기위해 스스로 밀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작년 6월 열린 제11회 ‘이데일리 전략포럼’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본능인 번식을 포기하는 한국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면서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재천 교수는 “동물들은 주변 환경, 상황이 나빠지면 새끼를 낳지 않거나 덜 낳는다.”며 “인간 역시 다를 바 없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사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낳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하물며 식물도 한 해는 열매를 맺지 않는 ‘해걸이‘라는 걸 하는데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적응이 저출산”이라고 진단했다. 최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아이를 낳아 키우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증거가 저출산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저출산 문제는 국가 생존의 중차대한 문제다. 이를 해결하려고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무수히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저명한 전문가들이 앞다투어 해법을 제시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지방소멸위험지수‘라는 개념도 나왔다. ’65세 이상 인구 대비 가임여성 비율’을 의미한다. 이 지수가 낮을수록 신생아가 태어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해당 지역이 없어질 것이라는 가설이다. 

우리와 똑같이 수도권 집중과 지방 인구 감소 문제로 고민하던 일본에서 2015년 나온 개념이다. 이 지수의 맹점은 가임여성의 비율이 비교적 높은 도시지역에서 합계출산율이 떨어지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반면 가임여성이 적은 농촌지역의 인구소멸 위험을 지나치게 부각해 오히려 지방으로 인구이동을 막는 부정적 효과도 있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본능인 번식을 포기하는 한국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면서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진=픽사베이]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지방재생잠재력지수’라는 게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은 지난 4월 <지역재생잠재력지수의 의의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이를 소개했다. 지역에서 얼마나 인구를 증가시킬 잠재력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지수로, 출산가능인구 비율 대비 두 자녀 이상 출생률로 계산한다. 즉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 중에서 두 아이 이상 낳은 비율을 의미한다. 지역에서 둘째 이상 자녀가 얼마나 분포하는지를 알면 인구의 증감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 출산가능인구 비율이 0.5인데 두 아이 이상 낳은 비율이 1이라면 이 지수는 2가 된다. 지수가 1을 초과하므로 그 지역에서는 인구가 재생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신생아를 낳아서 기를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말과 같다. 아이가 얼마나 태어나는가보다는 기존의 지방소멸위험지수가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지역사회 육아·보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파악해 보는 게 목적이다. 농경연이 지난 4월 발표한 지역별 지방재생잠재력지수의 데이터를 보자.

시도별로는 서울, 세종, 광역시, 경기도의 지역재생잠재력지수가 1 미만이었고, 전라남도와 경상북도가 1.2 이상의 가장 높은 값을 나타냈다. 시도별로는 지역재생잠재력지수 2 이상인 지역이 없는 반면, 2 이상의 값을 나타내는 지역들은 모두 군 지역이었다. 산청군, 보성군, 신안군, 고흥군, 하동군, 의성군, 봉화군, 합천군, 군위군, 청송군, 남해군, 장수군, 완도군, 구례군, 단양군, 함평군, 고성군(경남), 진도군, 청양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지자체들에는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출산을 꺼리지 않는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우세하게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왜일까? 지방소멸위기 지역으로 몰렸던 경북 의성군과 전남 고흥군의 성공사례를 보면 답이 보인다.

경북 의성군은 출산·보육 지원을 위한 ‘의성군 출산통합지원센터’와 더불어 ‘이웃사촌 시범마을’을 안계면에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출산통합지원센터를 통해 영·유아들에게는 장난감 대여와 놀이방, 체험교육 서비스를 제공, 부모에게는 임신과 출산, 보육 관련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웃사촌 시범마을은 유입 청년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일자리와 주거, 의료, 복지 등을 두루 갖춘 환경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군민들이 이웃사촌이 되어 전입하는 외지 사람들을 돕겠다는 취지다. IT 시설을 갖춘 스마트팜에서 청년들이 농업을 배우고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사업으로 29명의 청년 농부가 마을로 들어왔다. 의성군은 ‘인구소멸 위험’ 전국 1위 지역이었다. 하지만 경북 23개 시·군 중 귀농 실적 1위를 차지하였고 합계출산율 전국 3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전남 고흥군은 지자체 중심의 출산 정책보다는 ‘고흥의 모든 군민이 나선다’는 취지로 민간단체 중심의 출산 장려 정책을 추진 중이다. 우선 고흥 내 23곳의 금융기관과 업체들이 ‘사회복지 협의회’를 구성해 출산 가정에 장려금과 ‘축복꾸러미세트’ 후원 물품을 선물한다. 지역의 식당이나 커피숍, 미용실 등 80여개 업체가 다자녀 가정에 추가 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 이 외에도 백일사진 촬영권 지원, 셋째 아이 이상 돌맞이 축하금 지원, 다자녀 가정 생활 속 상생 등 다양한 맞춤형 출산 장려 지원을 ‘자발적 민간 참여’로 추진한다. 

고흥군청도 보건소 산하였던 출산장려팀을 독립시켜 전담조직으로 만들고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청년인구 유입과 결혼친화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 신혼부부 결혼장려금, 청년부부 웨딩촬영비, 청년부부 내집 마련 대출이자 지원 사업을 시행 중이다. 그 결과 2019년 기준, 도시에서 유입된 귀농인이 176명으로 전국에서 1등을 기록했다. 또한, 2018년부터 1년 10개월 동안 1745가구, 2245명이 고흥군으로 전입했다.

의성군은 ‘이웃사촌 청년시범마을' 사업을 운영 중이다. 사진은 2020년 7월 19일, 비츨담다갤러리에서 열린 청년 소통 간담회 현장. 이 날 행사에는 청년일자리사업 창업팀(8팀)과 의성살아보기 ‘청춘구 행복동’ 프로젝트 참여 청년 15명, ‘예술가 일촌맺기’프로젝트 참여 청년예술가 5명 등 30여명 등이 참석했다. [사진=의성군]

의성군과 고흥군의 사례의 공통점은 출산문제에 공동체가 나섰다는데 있다. 안심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고 낳은 아이는 모두가 같이 책임지겠다는 철학을 공유했기에 성과를 냈다. 예산 등 투자의 크기보다 정책의 방향이 정확했던 것.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인구감소, 지방소멸의 공포로 너무 흥분되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지만 결국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앞으로 에너지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해 균질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수도권에 집중된 자원은 밀도가 낮은 지방 특히 농촌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지역재생잠재력지수는 농촌 지역의 가임기 여성이 도시보다 수적으로는 적지만 결혼하면 자녀를 도시보다 많이 낳는 경향이 있다는 힌트를 준다. 농촌이 인구의 재생력 측면에서 오히려 잠재력이 높다는 뜻이다.

미쳐버린 집값, 불안정한 직업, 치열한 경쟁으로 도시는 생명체가 서식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아무리 가임기 여성이 많다 한들 이런 조건에서 출산을 꺼리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개체들은 안전한 서식지를 찾아 떠난다. 뜨겁게 달아오른 화로가 식는 것처럼, 돈과 사람도 이제 폭발 직전인 도시를 떠날 때가 됐다. 

최재천 교수가 말한 혁명적 발상 전환은 뭘까? 인구문제로 고심하는 정부 당국은 ‘지방소멸’이라는 공포보다는 ‘지방재생’이라는 기회에 집중할 것을 권한다. 수십 년간 실패한 도시 위주 인구정책에서 벗어나 농촌으로 시선을 돌려보라는 것이다. 소멸위기의 작은 지자체들이 일궈낸 긍정의 에너지에 주목할 때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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