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미국 지폐의 최고액권인 100달러에 그려진 인물은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로 불렸던 그는 토마스 제퍼슨과 함께 독립선언문 작성을 주도했다. 그는 세금과 관련해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이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In this world nothing can be said to be certain, except death and taxes) 그렇다. 한 번 부과된 세금은 죽지 않는 이상 꼭 내야 한다.

세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세금 없는 국가는 없다. 내긴 싫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호받으려면 반드시 내야한다. 문제는 ‘공평‘이다. 내가 남보다 부당하게 많이 낸다고 생각하면 단 한 푼이라도 억울한 마음이 든다. 

최악은 세금 회피 또는 포탈이다. 내야 하는 세금을 안내면 결국 누군가가 떠안아야 한다. 보통은 서민이 나눠 내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어려운 형편에 세금까지 떠맡는다면 민생은 더욱 어려워진다. 국가 재정이 악화되고 통치 체계에 문제가 생긴다. 조세저항도 일어난다. 먹고 살기 어려워진 대중은 폭동을 일으킨다. 나라가 망하는 공식이다. 역사를 보면 항상 그랬다.

미국 돈 100달러 지폐 속 벤자민 플랭클린 [사진=픽사베이]

조선의 조세제도는 조·용·조(租庸調)를 기반으로 한다. 각각 왕에게 직접 바치는 쌀(租), 병역이나 잡역 등 노동력(庸), 지역 관아를 통해 왕에게 진상되는 특산물(調) 등을 말한다. 조는 토지(田)에 부과되기 때문에 전조(田租), 용은 사람의 신체(身)에게 부과되므로 신용(身庸), 조는 가구(戶)에 납세 의무가 있어 호조(戶調)로 불렸다.

국가 수입 중 가장 비중이 높았던 것은 전조였다. 조선은 농업 국가였다. 유일한 생산 수단인 토지에서 생산되는 쌀이나 콩 등 곡물은 국가 재정의 핵심이었다. 동시에 화폐 경제가 발달하기 전이었으므로 쌀은 결제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쌀을 확보하는 것이 왕실과 정부 유지를 위한 최선의 과제였다.

또한, 당시는 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왕실과 중앙정부는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기 어려웠다. 중앙정부가 필요한 물품을 리스트로 만들어 지역에 전달하면 지역 관리들은 이를 개별 가호에 배당하여 상납하도록 했다. 이것이 공물이다.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면포, 황해도의 철물, 함경도·평안도의 짐승가죽, 강원도의 목재, 제주도의 말 등이 유명했다. 경우에 따라 소금 기술자 등 특수직 노동력을 징발해 직접 만들기도 했다.

신용은 요역과 군역으로 나뉜다. 요역은 각종 국책사업이나 국가가 경영하는 농업이나 광업 등의 사업에 동원되는 노동력이다. 세금으로 바치는 쌀을 운반하는 일에도 동원됐다. 군역은 군인으로써 복무함을 말한다. 조선 초기 16세부터 60세까지 모든 양인(良人)은 병역의 의무를 부과했다. 여기에는 양반도 포함됐다. 16개월마다 2개월씩 서울로 올라와 군사 훈련에 참가해야 했다.

모든 제도는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조선의 조세 제도도 그랬다. 특히 호조와 신용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했다. 개인이나 공동체에 부과되는 인두세였기에 신분 고하, 권력 유무에 따라 납세의 주체가 변경되기도 했다. 권력자는 빠져나가고 서민이 뒤집어 쓰는 경우가 많았다.

대동법은 각 지역에서 올라오던 공물을 쌀로 통일해 걷고 필요한 것은 시장을 통해 조달하도록 한 제도다. [사진=픽사베이]

우선 공물은 해당 품목이 제때, 일정 수준의 품질로, 해당지역에서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빈번했다. 백성들은 불합격 판정을 받지 않을 최상의 물건을 구하기 위해 생계를 뒤로 하고 해당 물품을 찾아 나섰다. 아니면 방납업자에게 돈을 주고 구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국가에 바칠 세금을 웃돈을 들여 구하는 모순이 생긴 것. 당시 사료를 보면 농민이 부담하는 10원짜리 공물 중 방납업자 이윤이 5~6은 되고 실제 국고로 들어간 것은 1~2원에 지나지 않았다. 국가 재정 수입도 늘지 않고 납세자만 힘든 구조였다.

또한 국가에 각종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도 문제였다. 한참 농사를 지어 세금도 내고 생계도 유지해야 하는 농민에게 요역이 떨어지면 큰일이었다. 중앙정부가 필요에 따라 수시로 농민의 노동력을 징발한다. 이때가 농번기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된다. 농사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군역은 각종 특혜로 양반은 빠져나갔다. 성균관이나 지방 서원에 들어가면 병역을 면제해주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후에 노동력 대신 베(布)로 내도록 했지만 이 역시 서민들 몫이었다. 몸도 안 바친 양반들이 베를 낼 리 만무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게 대동법(大同法)과 균역법(均役法)이었다. 우선 대동법은 각 지역에서 올라오던 공물을 쌀로 통일해 걷고 필요한 것은 시장을 통해 조달하도록 한 제도다. 토지 1결(쌀 300두가 생산되는 면적)당 10두 내외의 쌀을 봄가을로 걷어 이 자원으로 공물을 사도록 했다. 부과 대상을 개인에서 토지로 바꿔 일반 백성의 부담을 경감시키는데 의의가 있었다. 대동법이 최초로 시도된 것이 양난을 거친 뒤 광해군 때였다. 1608년 경기도에 한해 시범적으로 운영됐다. 이후 충청도와 호남지역까지 확대되고 숙종 34년인 1708년에 황해도까지 실시됐다. 제도 정착에 100년이 걸린 셈이다. 최근 이재명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대동법을 언급해 주목받기도 했다.

균역법은 글자 그대로 신분 구분 없이 똑같이 ‘역‘의 의무를 다하자는 취지다. 효종 10년(1659) 병조참지 유계의 “군포(軍布) 2필은 1필로 줄이며 이로 인한 재정 부족은 양반에게서의 1필 수포로 해결한다.”는 상소가 시초다. 당시에는 조정 신료들의 반대에 좌초됐고 100여년 뒤 영조 27년(1751년) 9월에야 공포됐다. 영조는 군포를 1필로 감해주고, 대신 균역청을 설치하여 줄어든 세원을 보충하는 정책을 실행하도록 했다. 왕족, 권문세가, 지방 관청이 걷던 어장세, 선박세, 소금세 등을 국세로 전환했다. 또한 토지마다 1결당 2말의 결작미를 징수하여 군역의 부담을 전세(田稅, 쌀)로 바꿨다.

김홍도의 '타작' [그림=국립중앙박물관]

이러한 조선 후기 세제 개혁이 성공했을까? 알다시피 아니다. 성공했으면 민생이 회복되고 국가재정이 튼튼해지면서 조선은 부국강병의 길로 나갔을 것이다. 조선의 왕과 영의정의 대화를 통해 당시 사대부 양반들의 세금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자. 때는 효종 10년(1659년). 병조참지 유계의 상소에 어전회의가 열렸다. 병자호란의 패전으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땅에 찧는 굴욕을 당한 게 1637년의 일이다. 22년 전 나라가 멸절될 위기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나라, 조선의 영의정 심지원이 하는 말은 대략 이렇다.

“갑작스럽게 사족(士族)들에게 군포를 징수해서 전에 없었던 일을 새로 만들어 놓는다면 혹시 이 뒤에 원망하고 괴로워하는 폐단이 있을까 걱정됩니다.” 이에 효종이 “도망자나 죽은 자에게 부과되는 군포를 내야 하는 사람들의 원통함은 어떻겠는가?”라고 반문하니, 심인지는 이렇게 받아친다. “우리나라가 유지되는 것은 바로 사대부의 힘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루아침에 갑자기 일찍이 없었던 일을 만들어 서민들과 똑같이 군포를 징수한다면 그 원망 소리 또한 크지 않겠습니까?”

국방력 강화나 서민의 부담 경감보다는 사대부의 반발을 더 걱정하는 사람이 국정의 2인자였으니 결과는 뻔했다. 이날 효종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유계의 상소는 유야무야됐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영·정조의 뒤를 이은 왕들의 이른 죽음, 연이어 어린 왕이 즉위하면서 왕권은 허약해졌다. 왕의 외척이 중심이 된 권문세도가들이 장기 집권을 하자 세제 개혁은 공염불이 됐다. 이유는 강고한 기득권의 저항, 쉽게 말해 ‘안내던 세금을 왜 내냐’는 양반들이 반대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책이 마지막 기회였지만 그의 실각으로 개혁의 동력은 상실된다. 이후 조선은 변변한 전투 한번 못해보고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는 무력한 나라가 됐다.

요즘 종부세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 민주당과 정부가 애초 기조를 변경해 종부세 완화를 꺼내들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민주사회의 정당과 국가조직 내에서 다양한 의견과 활발한 토론은 있을 수 있다. 다만, 거기까지. 한번 선거에서 졌다고 정책의 근본을 흔들면 개혁은 요원해 진다. 종부세의 취지는 고액 부동산 소유자에 대한 추가 징세로 과세 정의를 실현하는데 있다. 과세 표준인 공시지가가 올랐다고 기준점을 낮춰 부자들의 세 부담을 완화해주는 건 본래의 입법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세금 깎아주기인지, 깎아준 세금은 누가 내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쓴 웃음이 나온다. 코로나로 형편이 어려워진 국민들을 지원하느라 늘어난 나라 빚을 그렇게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기에 더욱 그렇다. 올해 종부세 과세 대상자는 전체의 3.7%에 불과하다. 나머지 96.3%가 이들이 내야 할 세금을 나눠 내면 공평 과세가 실현되는가? 

일각에서는 물건 살 때 붙는 부가세를 올리자는 주장을 한다. 부자들 세금은 깎고 일반인의 세금을 올려 메우자는 소리다. 양반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세금을 회피하고 농민들이 국가재정의 대부분을 몸과 마음을 다해 떠받치던 봉건시대와 닮았다. 영의정 심지원도 공평 과세보다는 사대부의 조세 저항을 먼저 걱정했다. 망국의 기운이 돌던 조선 말기의 데자뷰가 떠오르는 요즘이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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