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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형 직불제, 독일은 되고 우리나라는 왜 안되나?농업소득 1천만 원 20년째 제자리... 직불금제도 전면 개편으로 농업의 근본 혁신해야

농부고시가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그런데 고시란 뭔가? 국가가 인증하는 어려운 시험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노량진 고시촌에서 컵밥 먹어가면서 몇 년을 투자해야 합격할까 말까 한다는 공무원 시험 역시 고시 아닌가. 독일에 농부고시가 있다는 건 결국 아무나 농민이 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독일에선 농민으로 인정받으려면 수입의 절반 이상은 농업에서 벌어야 된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독일 기준으로는 우리나라 농민은 사실 농민이 아니다. 농사로 버는 수입인 농업소득이 1천만원 정도로 총 수입의 3분의 1, 4분의 1이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농민들은 농업소득의 3배 정도를 다른 경로로 벌어들인다. 농민이 농업이 아닌 걸로 먹고 사는 이상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런 의구심을 상쇄하려는 듯 최근 우리나라 농림축산식품부는 귀농귀촌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라는 것을 발표했다. 한마디로, 자화자찬 일색이었다. 내용은 암울한데 포장지만 화려하다고 할까. 농식품부는 50만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귀농귀촌 인구 중에 귀촌인구가 49만 여명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강조하지 않았다. 대신에 귀농귀촌 만족도가 무척 높고, 농촌 출신이 다시 자신의 연고지 농촌으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인다는 식으로 보고서의 제목을 잡았다.

당연히 대다수 국민들은 “아하, 귀농귀촌이 활성화되어서 우리 농촌에 사람들이 북적이나 보구나”라고 오해할 가능성만 높아졌다. 팩트(사실)이 아닌데도 말이다. 정확한 팩트는 귀농귀촌 인구 50만 명 중에 진짜로 농사를 지으러 농촌으로 온 사람들(귀농인구)은 3~4%에 불과한 1만 8천 여명 수준이라는 것. 농민 평균 나이가 66세가 넘어버리고 농촌소멸이란 말까지 나오는 마당에 왜 샴페인 터뜨리는 시늉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

 

◇ “농민이라서 행복해요” 라는 말은 독일에서나 가능할까?

한편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일단 농민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농업전문학교를 입학해 졸업해야 하고 현장에서 몇 년 동안 실습한 뒤에 농부 고시에도 합격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농민이나 농부라는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자녀들에게 농사를 물려주고 싶어 한다.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 독일이니까 가능한 일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서만은 아닌 것 같다. 우선 그들은 농업과 농민을 자랑스러워하는 '가치관'을 지녔다.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문화'가 정착되어있다. 더불어 국가에서 지급하는 직불금으로 생계를 감당할 수 있는 '안전망'이 확보되어 있다. 그들은 농가소득의 50%에서 많게는 90%까지 직불금으로 보전받는다. 직불금은 사실상 농민 기본소득 같은 것. 당연히 농촌을 떠나는 농부들이 없다. 마을붕괴니 농촌소멸이니 하는 말도 없다. 이런 게 바로 ‘사람이 먼저다’라는 가치를 앞장서서 실천하는 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독일은 있고 우리나라는 없는 농업과 농민에 대한 가치관, 문화, 안전망 중에 사실 어느 것이 먼저 정착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닭과 달걀의 우선순위를 따지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건 이 3가지 요소가 서로 어우러져 독일을 ‘농부의 나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이니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니 하는 온갖 농민 우대 슬로건이 있었지만, 그게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다.

농업현장에서 뭐가 가장 필요한 정책이냐는 질문에 농민들은 한결 같이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 수 있게 해 달라”고 입을 모은다. 농산물 제값 받기만 돼도 정부 지원 없이 농가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공산품은 생산자가 생산원가를 감안해 가격을 정하는데, 농산물은 농민이 가격을 정하지 못한다. 유통분야에서 마진이 엄청 빠져나가고 가격도 그들이 결정한다. 그래서 늘 산지폐기니 트랙터로 작물을 갈아엎느니 하는 뉴스만 수십년 째 반복된다. 청와대 앞과 광화문광장에서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정부를 성토하는 농민들의 모습은 피땀 흘려 키운 농작물을 제 값 받고 팔지 못하는 설움 때문이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일단 농민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농업전문학교를 입학해 졸업해야 하고 현장에서 몇 년 동안 실습한 뒤에 농부 고시에도 합격해야 한다. [사진=독일연방식품농업부 홈페이지]

◇ 농촌붕괴-지방소멸을 막으려면 농민의 기본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 모습이 딱하고 더 이상 보기 싫다면 다른 방법으로 농민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배려해야 한다. 그게 바로 농촌 기본소득이다. 도시의 최저임금처럼 농촌에서도 최저생계수당이라는 개념이 사회적합의를 통해 정착되어야 한다. 

이는 농사를 지으면서 농촌에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만이라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전직 농림부장관은 자신의 저서에서 농업관련 기관을 다 없애면 농민들에게 매달 2~3백만원 씩을 지급할 수 있다고까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농산물 가격의 조절에 매번 실패하면서 농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농산물가격이 오르면 자동적으로 수입을 늘리고, 가격이 하락하면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제값 받고만 팔 수 있어도 농촌에서 어떻게든 살 수 있겠다는 농민들의 바람과 희망을 농산물 수입으로 매번 무너뜨리고 있는 게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농산물 수입은 점점 늘어나고 우리 농업과 농촌은 더욱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농축산물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2018년 농축산물 수입액은 352억 달러로 2017년의 322억 달러보다 10% 정도 늘었다. 그러다보니 농산물 가격은 실질적으로 하락하고 농가소득 수준은 더욱 악화되었다. 도시근로자가구 소득 대비 농가소득은 1993년 95.5%에서 2016년 63.5%로 낮아졌다.

농림어업취업자 비중은 1990년 17.9%에서 2017년 4.8%로 하락했다. 농가인구는 1995년 485만 명에서 2017년 242만 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자 농업경영주 평균 연령은 67세로 높아졌다. 즉 농부들의 평균 나이가 60대 중반을 훌쩍 넘겼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독일처럼 65세가 되면 자랑스럽게 자녀들에게 농업과 농사를 물려주고 은퇴하기는커녕 늙어서도 일해야만 농업소득으로 1년에 1천만원 정도를 번다.

누군가의 말처럼, 국가도 정부도 ‘늙은 농부와 활력잃은 농촌’을 챙기지 않는다. 농부는 구슬땀을 흘려가며 미세먼지 피해를 제일 많이 겪으면서도 국민의 먹을거리를 챙긴다. 하지만 정부도, 국민도 농부의 삶과 미래를 돌보지 않는다.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란 영화제목처럼 농민을 위한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익형 직불제가 해법일까? 그런데 2018년 10월부터 논의의 급물살을 탄 직불제 개편안이 2019년 3월 현재까지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이 표류만 하고 있다. 더구나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직불제 개편안 내용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며 농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국민과 함께 하는 농민의 길 소속 농민단체’(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가톨릭농민회)와 전국쌀생산자연합회 대표자들은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불제 개편의 졸속처리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대체 무슨 일일까?

농민의길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가톨릭농민회) 은 3월 26일 국회 정문 앞에서 직불제 개편 졸속처리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전국농민회총연맹]

◇ 공익형 직불제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항. 그런데 왜 진척없이 삐걱대나?

그들은 직불금이 농민들에게 온전히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부터 성토했다. 더불어 농민들의 수입을 어느 정도 보장하고있는 변동직불제마저 사라지면 농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 농업예산 확대하라, 스마트팜 혁신밸리 2차 공모 중단하라, 채소값 폭락 대책 수립하라, 밥쌀용 쌀 국가별 쿼터협상 중단하라 등등의 내용을 함께 담은 요구안을 공개했다.

농민의 길과 쌀 협회는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에서 ▲쌀부터 공공수급제 도입 ▲농민수당제 도입 ▲직불금 부당수령 근절대책 마련 ▲농민규정 확립 ▲공공급식 확대 ▲농업예산 확대를 통한 직불제 예산 인상 등의 ‘직불제 개편 6대 요구안’을 공개했다.

이들은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쌀 목표가격을 아직까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직불제 개편안에 대해서도 마치 예산이 전부인 양 기획재정부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고 정부를 성토했다. 이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쌀값 안정 대책 없는 직불제 예산확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며 전체 농토의 절반이 넘는 부재지주들이 직불제 부당수령을 막지 않으면 직불제는 하나마나”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들의 주장 중에 눈여겨 볼 점은 농민수당제 도입이다. 농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 '안전망'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맥을 같이 하는 문재인정부의 농정개혁 핵심이라 할 직불제 개편 논의 현황을 보면 쓴 소리가 더 나올 수 밖에 없다. 지난해 10월부터 논의가 시작된 직불제 개편 문제는 2019년 4월 현재까지 전혀 진척이 없다.

와중에 기획재정부는 직불제 개편의 핵심인 예산 증액에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기존 직불제 예산 5년 평균인 1조 8천억 원을 고집하고 있다. 농식품부에서 제시한 2조 4천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예산규모라서 기재부 계획대로라면 사실상 공익형 직불제는 물 건너간 얘기가 되는 것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제시된 공약도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공익형 직불제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항이다. 그런데 아직 진척이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사진은 작년 12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농업인 초청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소년 농부 한태웅군으로부터 직접 농사지은 쌀은 받고 있는 모습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 농촌 살리기의 가장 심각한 걸림돌은 ‘농민을 홀대해도 된다는 그릇된 시각’

농식품부의 애초 직불제 예산 규모는 2022년까지 농업예산 대비 30%인 5조 2천억원이었다. 하지만 농식품부도 최근 태도가 돌변했다. 농민과 농촌을 책임져야할 농림축산식품부가 역부족이란 입장으로 선회한 것. 기재부가 반대하는 예산도 예산이지만,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직불제를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책임 떠넘기기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농토 절반을 부재지주가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헌법에도 명시된 ‘경자유전’을 건드려서 좋을 게 뭐냐는 무책임한 태도까지 드러내고 있다.

농식품부의 인식이 심각한 수준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농민을 제외한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시각이라고 봐도 되는 걸까 싶지만, 농식품부의 이런 시각이 보편화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물가가 오르면 농산물 가격부터 주범으로 지목하는 언론의 태도만 봐도 그렇고, 농민보다는 시장과 마트를 더 믿고 신뢰하는 소비자단체들의 자세에서도 농민홀대의 일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공익형 직불제로의 개편을 위해 넘어야할 산은 무척이나 많다. ▲농민이 참여하지 않는 소통 없는 일방주의, ▲쌀 가격을 고려하지 않은 변동직불금 폐지의 대안이 없다는 것, ▲공익형 직불제를 논하면서 소농이 상대적으로 직불금을 더 많이 받게끔 제도화함에 따르는 부작용, ▲ 농민수당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직불제 예산의 규모 등이다.

공익형 직불제가 농정개혁의 주요 과제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공익’과 ‘직불제’가 내포한 수많은 갈등요소들을 관리할 방법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게 사실이다. 쌀농사가 대세인 우리 농촌 현실과 부재지주가 절반인 농토소유실태를 간과할 수도 없는 일이다. 또한 다른 수많은 농산물의 가격안정대책도 마련해야만 한다. 기재부가 극구 반대하는 예산 확대 역시 대통령과 농특위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농민들의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들이 농사만 지어도 살 수 있는 소득과 명분(대접)을 확보하는 일이다. 사실 어쩌면 해법은 간단할 지도 모른다.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나라를 만들면 된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가치를 농촌에서부터 실현해가면 될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공익형 직불제 논의에 2백만 농민들의 눈과 귀가 쏠려있는 것이다. 아니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수 백만 명에 달하는 ‘잠재적 농민’들도 정부의 공익형 직불제 논의를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농업과 농민을 자랑스러워하는 '가치관'을 지녔고,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문화'가 정착되어있으며, 국가에서 지급하는 직불금으로 생계를 감당할 수 있는 '안전망'이 확보되어 있는 나라가 어디인가 묻는다면, 그게 바로 대한민국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공익형직불제 개편논의가 농민과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길 기대해본다. 더불어 농민이 아닌 모든 국민들이 농민들을 응원해주길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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