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진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한식세계화재단이란 게 생겨서 이런저런 일도 추진했었고, 심지어 뉴욕 한 가운데에 한식당을 차렸던 게 두 정권 앞의 일이었다. 사실, 요란했지만 실속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게 최근엔 ‘먹방’이 대세가 됨에 따라 한식, 한국화된 음식, 한국에서 만들어진 음식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모양새. 한국식 짜장면을 짜장면의 탄생지 중국에서 만들어 파는 '현지에서 먹힐까?'라는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국민 아버지’ 최불암이 나직하고 진중한 톤으로 내레이션을 맡은 '한국인의 밥상'이 차곡차곡 한식의 가치를 드높이고도 있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칭찬이 자자하다. 최근엔 공영방송 한국방송 kbs에서 '한식의 마음'이란 프로그램으로 한식의 깊이와 폭을 재조명 중이다.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예능에서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식과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한국음식을 재미나게 버무려내고 있다. 한식이 전과 다르다는 느낌을 주는 사례는 이밖에도 차고 넘친다. 한국사람 어느 누구라도 한식에 얽힌 사연을 세계화라는 트렌드 속에서 하나 둘 꺼내어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식의 목표는 무조건 ‘세계화’일까? 너무 획일적인 목표 아닐까? [사진= 한식진흥원]

최근 의미있는 행사가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 사찰음식 요리전문가 선재스님이 이사장으로 취임한 한식진흥원이 10월 초 내실있게 개최한 '한식페스티벌'. 2018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어낸 행사라 하겠다. 마구 쏟아져 나오는 음식 관련 정보와 영상들 속에서 한식이라는 키워드로 중심을 잡아볼 기회가 되었기 때문.

한식진흥원은 올해 행사를 한식의 기본 식재료인 장(醬)을 주제로 펼쳐보였다. 우리나라 식문화의 과거-현재-미래를 통찰하는 다채로운 장 요리를 보여줌으로써 내외국인 전체를 아우르는 소비자층의 한식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된장 고추장 쌈장 등등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의 장 문화는 독특하면서도 지혜롭다는 안팎의 평가가 대세이기에 하는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우리 ‘장 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데, 한식페스티벌은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 장을 알리기 위한 시식ㆍ체험 행사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해온 게 3년 전 부터라는 게 한식진흥원의 설명.

◇ 한식이 ‘한류’라는 큰 물결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지혜 필요

이번 행사는 여러모로 세계화, 대중화를 추구한 흔적과 노력이 곳곳에서 묻어났는데, 개막식에서 배우 이서진의 축하 메시지가 상영된 것부터 그랬다. 아울러 열린 ‘명예 건강한 食 서포터즈 홍보대사 위촉식’에서는 페데리코 하인즈만(아르헨티나 출신 뉴욕 그릴 앤 바 주방장)과 조희숙(한식 대가, 샘표 우리맛 연구 프로젝트에 조리 자문, 주미 한국대사관 총주방장 역임)씨가 선정된 것도 역시 그랬다.

한식문화 진흥에 기여한 이들에게 준 감사패는 이욱정 PD( KBS 프로듀서, KBS 요리인류 대표, 르 코르동블루 요리학교 졸업),나영석 PD( CJ E&M 프로듀서, KBS 예능국 차장, KBS 예능국 프로듀서) 가 받았는데 '요리인류', '윤식당', '삼시세끼' 등 인기 프로그램을 제작해 대중들에게 우리 음식을 널리 알린 공로였단다. 모두 인기 만점의 프로그램들 아니었던가.

더불어 스타 셰프와 함께하는 한식 쿠킹쇼도 성황이었는데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TV스타들이 총출연했다. 오세득 셰프, 이원일 셰프, 박준우 셰프가 그들인데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많은 참석자들과 전문가들은 한식진흥원의 이런 노력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류라는 큰 흐름에 한식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계기를 마련함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참에 BTS(방탄소년단)에게 한식과 김치를 맡겨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는 농담 아닌 제안도 있었다. 이왕 할 거면 그래도 될 것이란 뜻이었으리라. 물론 허황된 구호로만 흩날린 한식세계화가 한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 한식세계화가 목표가 아니고, 한식 고유 가치를 지키고 계승함이 우선

한식페스티벌의 핵심이랄 수 있는 장 명인과의 만남은 이번 행사의 백미 중의 백미로 꼽을 수 있겠다. 명인들을 차례차례 접하면서 우리 전통 장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게 관람객과 참석자들의 이구동성. 한식진흥원이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간추려 소개해본다.

▲기순도 명인 : 진장(陳醬). 360년 전통의 깊은 장맛을 빚어냈다. 유서 깊은 집안에는 저마다의 역사를 지닌 장(醬)도 있다. 기순도 명인의 양진제 종가에도 역시 360여 년 된 씨간장 항아리가 있다. 기순도 명인의 장맛은 150m 지하에서 퍼 올린 맑고 깨끗한 물과 직접 구운 담양의 죽염에서 연유한다. 장의 맛과 품위가 높다.

▲권기옥 명인 : 어육장(魚肉醬). 궁중에서 전래된 임금님의 건강식. 오래된 사대부 가문의 집안 내력으로 조선시대 궁중음식과 사대부가의 음식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큰 외조모께서 흥선대원군의 주선으로 그 아들인 백낙평님과 혼인 후 조선왕실의 음식과 궁중 장을 다루셨으며 자연스레 명인의 모친과 명인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다.

▲성명례 명인 : 대맥장(大麥醬). 검게 앉은 장맛에 깃든 사대부가의 맥. 안동권씨와 안동김씨 등 사대부 집안에 내려온 대맥장 장인인 성명례 명인은 시어머니로부터 대맥장 제조법을 전수받았으며 대맥장을 사대부가 며느리의 소명으로 여긴다.

▲윤왕순 명인 : 천리장(千里醬). 고종도 칭찬한 파평 윤씨 집안의 음식 맛. 양반가인 파평 윤씨 가문에서 집안 대대로 전수되어 내려오는 내림장인 천리장은 이 집안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별미장. 궁중과 양반가에서만 먹었다고 한다.

▲최명희 명인 : 소두장(小豆醬). 종갓집 고유의 가풍과 장맛을 계승. 장류로는 최초로 식품명인 제51호로 지정 받은 최명희 명인. 시할머니 때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소두장을 전수받아 전통방식 그대로 장을 제조하고 있다. 장류문화의 다양성과 장인정신을 잇고 있다.

▲서분례 명인 : 청국장(淸麴醬). 대한민국 청국장의 자존심.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청국장 명인. 3대째 이어온 전통방식을 고집하며 계승시키면서 과학적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식생활에 맞게 간편조리식, 편이식 등을 개발했다. 청국장이 국민 건강식품으로 자리 잡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양정옥 명인 : 제주막장. 일상 속의 제주 푸른콩장으로 귀중한 의미를 찾다. 제주 서귀포 일대에서 자라는 푸른콩으로 할머니와 어머니가 장 담그시는 걸 보고 자랐기에 그저 장을 담그게 되었다는 명인. 유난히 된장 중심의 음식 문화를 지닌 제주의 독특함을 주변에 알리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2018 세계한식페스티벌 개막식 모습 [사진=농림축산식품부]

◇ 한식진흥원, 세계김치연구소, 농림축산식품부의 협업이 절실한 때

한식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널리 알리는 일은 어쩌면 양날의 칼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한식진흥원의 선재 이사장도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장을 유네스코 등재시키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우리 스스로 그만큼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가치를 만들어가는 일? 그 일은 한식진흥원만의 무거운 짐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식관련 모든 단체들의 ‘콜라보’가 절대적인 작업이라는 건 누구라도 안다. 아무쪼록 한식진흥원, 세계김치연구소,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기관.단체의 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것만 이루어져도 좋겠다 싶다. 한식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모두 합쳐 십리를 가는 일이라면 그중에 절반은 관련기관.단체들의 협업이라고 믿어본다. 건투를 빈다.

백종호 논설실장  bjh@youngnong.co.kr

<저작권자 © 한국영농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