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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韓中日) 농기계 삼국지, "농기계산업도 ‘개헌’ 필요?"

-일본은 쳐들어오고 중국은 문 안 연다. 한국농기계도 현대차.기아차 처지
-국산농기계 내수.수출 답보상태. 이러다가 <삼시 세끼> 안순이만 남을라...

 

“안순이를 아십니까?” 만약 안순이를 안다면 농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재작년 여름, 고창 고구마밭에서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 남주혁 등 유명 연예인들이 쭈그리고 앉아 고구마를 캘 때 그들 엉덩이에 매달려있던 쿠션의자. 그게 바로 안순이다. 당시 <삼시 세끼, 고창>에서는 엉덩이 부착형이었지만 요새는 바퀴 2개가 달려있고 의자가 360도 회전 가능한 ‘안순이2’도 잘 팔린다. 손이 많이 가는 밭농사에서 없어선 안 될 물건인 셈이다. 안순이를 농기계라고 부르긴 어렵고 농업보조기구 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는데, 만약 안순이2에 모터를 달아서 움직이게 한다면 이 또한 농기계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낫에 모터를 달아 풀을 힘 안들이고 깎는 예초기도 농기계니까. 그렇지 않은가?

농업용 의자 ‘안순이’ [사진=제조사 녹원]

농기계. 그런데 국산 농기계 시장 분위기가 정말이지 심상치가 않다. 우리나라 농기계 시장과 기업이 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인 형국이다. 왜 그런지는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우선 내수시장 위축은 말할 필요도 없다. 30만대 씩 만들던 국산브랜드 농기계가 현재는 연간 5만대 정도 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농촌인구의 급속한 감소와 노령화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외국산 농기계의 시장 잠식속도가 우사인 볼트가 100미터를 달리는 것만큼 빠르다는 사실.

이러다간 조만간 국산 농기계를 논이나 들판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웬만한 밭농사는 일제 농기계로 짓고 논농사는 미국산 트랙터가 도맡는 때가 올 지도 모른다. 그러면 국산농기계라고는 모터달린 안순이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국내 시장을 파고드는 일본 구보다, 얀마 & 미국 존 디어, 이탈리아 CNH

안타깝게도 국내 농기계 시장은 8천억~1조 원대 안팎을 유지하며 답보중이다. 더 이상 성장하질 않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2017년 통계를 보면, 정부지원으로 보급중인 외국 농기계의 시장점유율이 놀라울 정도로 가파르다. 트랙터 26.8%, 콤바인 33.9%, 승용이앙기 78% 수준.

특히 일본 농기계들의 시장점유율이 급상승한 점이 눈에 띄는 대목. 구보다, 얀마 등 일본 브랜드 농기계들이 우리 논과 밭을 휩쓸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 농촌의 이앙기 두 대중 한 대가 일본제품이며, 콤바인은 석대 중 한 대가 일제라고 봐도 된다. 2018년 현재에는 이보다 더 상승한 수치일 것이란 점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는 한국시장에서 외국산 수입차들의 점유율 상승행진과 매우 흡사한 양상이다. 독일의 벤츠.BMW.폭스바겐이 수입자동차 시장을 절반 이상 차지하고, 그 뒤를 일본 자동차 브랜드 혼다.닛산.도요타가 잇고 있는 모양새와 너무도 비슷하다는 것. 그나마 국산 자동차 브랜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등은 국산농기계 업체와는 달리 내수시장에서는 아직까지는 버텨주고 있긴 하다. 그렇지만 이들 국산 자동차브랜드들도 중국시장이나 미국시장에서는 고전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자 통계. 물론 국내 자동차 브랜드와 국산 농기계업체의 규모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하지만 모터(엔진)을 달고 국내외에서 판매된다는 점은 누가 뭐래도 똑같다.

일본제 승용이앙기 [사진=구보다코리아 홈페이지]

흔히 3대 농기계로 분류하는 트랙터·콤바인·이앙기 국내시장규모는 2017년 매출액 기준 8,930억 원. 이 중 구보다, 얀마 2개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450억 원으로 무려 27.4%에 이른다. 게다가 지속적인 엔저 효과로 인해 일본 농기계의 가격 경쟁력도 높아졌다. 농부들 사이에선 일제농기계가 가성비도 뛰어나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구나 얀마는 2007년 29개이던 한국 내 대리점을 2017년 80개까지 늘렸다. AS에서도 국내 기업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한국 농기계업체들이 거의 유일하게 앞서있던 유통망과 AS에서마저 일본 업체들에게 따라잡힐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구보다, 얀마, 이세키 등 일본 농기계가 중소형 트랙터,이앙기 등에 특화되어있다면, 미국 농기계 기업인 존 디어(John Deere)와 이탈리아 자동차브랜드 피아트가 모회사인 CNH가 100마력 이상 대형트랙터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점도 심상치 않다. 중소형 농기계는 일본이, 대형농기계는 미국이 나눠먹는 판세가 고착되는 건 아닌지 국내 농기계업체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국내 농기계 시장은 대동공업이 시장점유율 34.8%로 1위. 그 뒤를 이어 LS엠트론(15.6%), 동양물산(15%), 국제종합기계(14.1%)가 도열해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것도 외국 농기계들의 순항모드 때문에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는 깨지기 쉬운 점유율.

 

미국 시장에 편향된 수출을 중국 시장으로 확대하는 지혜가 필요

세계 농기계 산업은 2018년에 2,000억불(우리 돈 200조원) 정도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중국이 463억불로 전체시장의 1위에 오를 것이며 서유럽이 453억불, 미국도 328억불로 성장할 것이라고. 따라서 우리업체들은 미국 뿐 아니라 유럽과 중국시장도 공략해야만 활로가 확보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농기계의 해외진출과 수출은 대동공업, LS엠트론, 동양물산기업, 국제종합기계 등 4개 종합형농기계업체들이 이끌고 있다.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트랙터 수출이 5억 달러 정도, 총 수출액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미국에 수출하는 트랙터가 약 4억 달러로 농기계 총수출액의 절반인 50%를 넘고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우리 농기계업체들은 미국에 트랙터를 수출하는 데에 너무 매달려 있었다는 것. 그런데 그나마도 미국시장에서 맹활약중인 일본업체들 때문에 만만하지가 않은 상황. 미국 전체 트랙터 시장을 존 디어(미국), CNH(이태리), 구보다(일본) 가 거의 삼분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중국시장을 공략하면 되지 않을까? 상황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2018년 농기계시장규모는 약 5천억 위안(약 90조원)정도. 이렇게 큰 중국시장에서 우리 업체들은 얼마나 선전하고 있을까? 생각보다 미미한 실적에 놀랍기만 할 따름이다. 동양물산기업은 2016년 2,500만달러(한화 약 289억원) 매출을 올렸고, 대동공업은 2016년 113억 원의 매출을 중국에서 올렸을 뿐이다. 시장점유율을 논할 수도 없는 수준인 것이다.

국산 트랙터 [사진=동양물산 홈페이지]

중국시장 역시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세계 농기계시장 1위 업체 미국의 존 디어(John Deere)사와 일본의 3대 농기계 기업(KUBOTA, Yanmar, ISEKI)는 중국현지에 공장을 설립하고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 농기계가 중국에서 가격경쟁력을 갖추려면 중국 정부의 농기계 구입보조정책을 활용해야만 한다. 중국에서 생산된 농기계에만 판매가격의 30%를 보조해주기 때문. 한국 농기계가 중국에 진출하려면 중국 정부의 구입자금 보조 대상기종에 선정돼야만 한다. 그러려면 제품 현지화율을 높이는 게 시작이다.

 

호주.대만처럼 거의 다 수입해 쓸 것인가, 아니면 지원책을 마련할 것인가 ?

남의 나라 일이라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편하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지만, 농기계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나라들이 있다. 바로 호주와 대만. 호주는 1980년대부터 트랙터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전량 수입해 쓴다. 그러다보니 약 2조원대의 호주 트랙터 시장에서는 세계 농기계 강자들의 각축전이 어느 나라보다 치열하다. 게다가 대만은 외국산 농기계 시장점유율이 50% 수준일 때 자국 농기계 업체들이 외국브랜드들에게 무릎을 꿇어버렸다. 현재 대만에서는 자국 브랜드 농기계가 거의 없다. 일제와 미제 농기계가 논밭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시장 내 외국산 농기계의 잠식속도를 보면, 우리나라도 호주나 대만처럼 농기계를 거의 전량 일제나 미제로 쓰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암울한 전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호주와 대만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만 할까? 국산 농기계업체를 살려야 할까 아니면 냉혹한 시장논리에 맡겨둬야만 할까?

사실 우리 농민들에게 우리나라 농기계는 한마디로 ‘뜨거운 감자’다. 냉혹하게 들리겠지만 현재까지는 그렇다. 더구나 일본 농기계는 국내시장에서 나날이 시장점유율을 높여갈 태세다. 편들어줄 게 당연해 보이는 농민들마저 국산농기계를 한 수 아래라며 내려다본다. 중국은 파고들어가기 어려운 시장이라서 일단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山)이로다’라는 시조를 읊으며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일단 성능과 가격대부터 합리적 수준으로 재조정하라” 며 좀처럼 도와줄 생각을 않는다. 농협도 농기계업체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그래서, 우리 국산 농기계 산업은 이대로 점점 고사하는 것인가? 말라죽지 않으려면, 개헌에 해당할 만큼의 경천동지할 계획과 비전이 필요해 보인다. 시장은 결코 국산 농기계업체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때마침 정치권에서도 토지공개념, 농업의 사회적 가치 등등을 헌법에 반영하고 실행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이참에 국내 농기계업체들이 개헌 같은 특단의 처방을 먼저 정부와 농민들에게 제안하는 용기와 지혜를 발휘해주길 바란다. 안 그러면 머지않아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농기계는 안순이와 예초기 정도밖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종호 기자  bjh@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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