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상을 지정학적 긴장의 도가니 동북아에서 해도 되는 걸까? 낭만이 좀 지나치단 말을 들어도 상상은 자유니까 그리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그게 뭐냐 하면, 한국과 일본 사이에 거대한 밧줄을 드리우고 양쪽 국민이 그 줄을 잡아당기면 한국과 일본 땅은 얼마나 가까워질까, 라는 상상. 만약 그렇게 되면 둘은 서로 더욱 친해져서 화합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게 아니면, 일본과 중국에 거대한 밧줄을 놓고 잡아당겨 일본을 중국과 한국 사이 서해로 당겨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중국-일본-한국이 서로 이어져 시너지를 내며 동북아시아의 전성기를 빚어낼 수 있을까? 상상으로나마 가능하지 않을까?

이는 줄다리기 하나로 못해낼 게 없고, 불가능은 전혀 없을 것 같은 당찬 슬로건을 내건 지자체 축제가 있기에 가능한 상상일 것이다. 바로 ‘당진 기지시 줄다리기 축제’ 슬로건 ‘줄로 하나 되는 세상’ 덕분이다. 올해도 당진에서는 4월 12일부터 15일까지 나흘 간 당진 줄다리기 축제가 열린다. 100미터가 넘고 무게도 몇십 톤이나 나가는 거대한 밧줄 양편에 수백 명이 젖 먹던 힘을 쏟으며 평화와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축제. 이런 축제를 세상 어디에서 본 적이 있나 싶다. 그 웅장한 철학에 힘입어 2015년 기지시 줄다리기를 비롯한 한국의 줄다리기 6종목이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의 줄다리기 등 4개국과 함께 ‘줄다리기 의례와 놀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등재에 성공했다.

당진 기지시 줄다리기 축제에 쓰일 거대한 밧줄 [사진=당진시청]

# 서해안에 자리잡은 당진은 백제 때부터 당나라(唐)를 오가던 포구(津)라는 뜻을 지닌 곳. 예로부터 바다 건너 중국과의 주요한 교역통로였으며 동북아시아의 교통 요지였다. 해로를 통한 다양한 정보 수입과 폭넓게 열린 정신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줄다리기는 농촌사회에서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이라는 설이 다수설이자 정설이다. 특히 당진 기지시 줄다리기는 밧줄의 재료가 짚이란 점에서는 농업, 밧줄을 제작하는 방식은 어업(닺줄 꼬는 방식), 돈이 들어가는 줄 제작은 시장 상인들의 모금으로 진행되어온 그야말로 농업,어업,상업의 복합축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

#줄다리기가 올림픽 종목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900년 제2회 프랑스 파리 올림픽 때부터 1920년 벨기에 앤트워프 올림픽 까지 총 5번의 올림픽에서 육상종목으로 실시된 정식종목이었다. 현재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80개국이 국제줄다리기연맹에 가입되어 있다.

2015년 당진 기지시 줄다리기가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자, 중국에서는 “한국이 중국의 줄다리기를 훔쳐서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는 식의 푸념과 불만을 늘어놓았다. 중국의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줄다리기의 기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楚)나라가 오(吳)나라를 상대로 퇴각하는 배에 밧줄을 달아 끌어당겨 퇴각을 막았다는 것. 이때부터 당나라 때까지 줄다리기는 정식 군사 훈련으로 연마되었다는 게 중국 측의 주장. 하지만 중국이 한발 늦었다.

당진 기지시 줄다리기 민속축제 알림 포스터 [출처=당진시청]

일본의 줄다리기 사랑도 만만치 않다.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2015년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측에 줄다리기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해줄 것을 요청하고 정식절차를 밟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 일본 각지에서 벌어지는 축제(마츠리)에서 줄다리기가 수백년 전통행사로 전해져 오고 있기 때문. 일본줄다리기연맹은 체급 별로 줄다리기 경기를 구분하고 인원수를 제한하는 등의 구체적인 경기 방침도 마련해 IOC를 공략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보와 교류의 통로였던 덕분일 것이다. 당진은 대한민국의 다른 지자체와는 격이 다른 슬로건 “다산의 삼농(三農) 본받아 부자농촌 만들자”를 대대적으로 앞세우며 살기 좋은 농촌이란 이상을 향해 용맹정진중이다. 삼농이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에서 강조했던 내용. 농사가 수지에 맞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후농(厚農), 공업에 비해 힘들고 불편한 농사를 편하게 지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편농(便農), 농민의 사회적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상농(上農)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름난 영농법인들도 많은데 그 중 <당진 백석올미영농조합법인>은 몇 년 전 농림축산식품부가 개최한 ‘농업 6차산업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평균연령 70세인 할머니들이 만든 백석올미는 6차산업화의 우수 사례로 단연 돋보인다. 조합원 57명이 매출 6억원을 내는 영농조합으로 성장했다. 수익보다 더 큰 의미는 농촌 할머니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농촌직장’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는 점. 조합원들은 모두 4대보험과 퇴직금이 보장된 정규직이며 매달 월급을 받는다. “내 평생 명함이란 걸 처음 가져봤다”라는 게 조합원 할머니들의 자랑거리 멘트가 됐다.

당진 프리지어 영농조합법인 [사진=당진시청]

또한 <당진 프리지어 영농조합법인>은 프리지어꽃 재배로 국내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지난 2009년부터 해마다 일본으로 프리지어꽃을 수출한다. <당진들녘경영체 해나루영농조합법인>은 최근 소형 쌀가공처리시설을 자체 설립해 당진시의 해나루쌀 품질 고급화를 위해 노력중이다. <사과연구회영농조합법인>는 매년 약 5천톤의 생산 사과를 가공해 연간 약 2백톤의 사과주스를 만들어 판다.

백종호 기자  bjh@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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