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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벨기에 유기농장에서 보낸 2주 - 동료애 충만한 피에르 마리씨 농장 / 박푸른들
피에르 마리씨 농장을 노니는 닭

“들, Wake Up" 어두운 아침, 킹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 덕분에 잠에서 깼다.

오전 8시부터 일을 시작하는 그는 6시 반이면 꼭 일어났다.

겨우 일어나 옷을 입고 부엌에 가니 킹가, 아니타, 피오르가 벌써 식사를 마친 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셋은 벨기에 리에주에 있는 피에르 마리씨의 농장 시즌워커로 폴란드에서 왔다.

길게는 6년, 짧게는 1년 동안 가을마다 피에르 마리씨와 함께 일하는 동료인 이들은 8시간 작업, 점심식사 1시간, 오후 휴식 20분을 정확히 지켰으며, 작업에도 능숙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유럽 전역의 농장을 다니며 일하는 베테랑 시즌워커들이었다.

내가 머무른 일주일은 이 셋이 일하는 마지막 주였다.

나무에서 마지막 열매를 수확하고 선별하는 시기.

2017년 10월, 나는 벨기에 리에주에 있었다.

 

리에주는 퇴사 2년을 맞아 새로운 경험을 위해 파리에서 한 달을 보낸 후 간 곳이다.

한때 난 농민운동가를 꿈꾸며 농민단체에서 일했다.

당시의 나는 농업 현주소를 정확히 짚는 사람, 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아는 사람, 이상향과 현실적인 목표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었다.

조직에서 경험한 현장이 공부와 토론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는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랐지만, 조직은 너무 바빴다. 또한 이론과 실천의 분업이 철저한 곳이기도 했다.

 

어느덧 실무자로 일한지 3년이 되던 해였다. 스스로 정체되었다고 느낀 어느 날, 나는 단체를 그만 두었다.

이제는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싶었다. 곧 서른을 앞둔 시점에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 내가 나를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퇴사 후,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다녔다.

새로운 공부와 일을 시작했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 모든 시간이 내게는 여행과 같았다.

 

그렇게 떠난 리에주는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에서 기차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국제가톨릭농민운동연맹 ‘피막(FIMACR)’ 덕분에 난 리에주에서 2주 동안 세 유기농 농장을 방문할 수 있었고, 그 중 두 농장에 머물렀다.

피막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피막 가입단체인 한국 가톨릭농민회에서 활동하는 선배 덕분이었다.

아직 단체 실무자였더라면 오지 못 했을 테지만, 실무자가 아니었더라면 알지 못 했을 곳, 만나지 못 할 사람들이었다.

 

소개 받은 세 농장은 각자의 개성이 있었다. 자연과 우주의 리듬을 따르는 ‘생명역동농업(biodynamic)’으로 사과와 배 농사를 짓는 과수농장, 한 해 50여 가지 채소를 농사짓는 채소농장, 우유 무인판매대를 운영하는 축산농장까지.

채소농장 농민 이자벨씨에 따르면 리에주는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농장이 많은 지역이었다.

“충만하다”는 말이 자꾸 입 밖으로 나올 정도로, 농장에서 지내는 시간은 행복했다.

 

2017년 마지막 사과를 수확하는 시즌워커 피오르

세 농장에서 나의 역할은 관찰자에 가까웠다.

나는 대단한 농업기술보다는 농민들의 하루 리듬을 더 눈여겨봤다.

나는 농민의 딸이기도 한데, 평생 한 지역에서 농민으로 살아온 아빠는 자주 고단해했다.

농업에 대한 애정이나 자부심은 현실에서 겪는 좌절과는 별개였다.

계속되는 좌절의 경험 때문에, 아빠는 농민운동가임에도 불구하고 딸인 내게 자신과 같은 농민의 삶을 추천하지 않았다.

그런 아빠의 모습은, 다른 농민들의 삶이 궁금한 이유가 됐다.

특별하지 않은 우리 아빠 같은 평범한 농민들이 하루를 행복하게 살길 바라며, 리에주 농민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처음 일주일을 보낸 농장 ‘DE LA FLEUR AU FRUIT’는 피에르 마리씨가 아들과 사과와 배, 집에 딸린 유기농 매장에서 판매할 채소를 기르는 곳이었다.

벨기에에서 생명역동농법으로 사과농사를 짓는 두 농장 중 한 농장이기도 했다.

농장은 농가와 드넓은 과수원, 채소밭, 크고 작은 창고 겸 작업실, 유기농 매장, 시즌워커들을 위한 숙소가 있었다.

과수원에는 닭이 모이를 쪼았고, 허브가 심겨진 농가 마당에는 개 세 마리가 노닐고, 사과나 배를 사러 온 사람들이 오거니 가거니 했다.

농장과 지역의 유기농산물, 유기농 가공식품을 판매하는 매장은 아내 카린느가 맡았고 시즌워커를 빼면 농장에는 유기농학교 학생이, 매장에는 지역주민이 직원으로 일했다.

 

농장 사과, 배로 만든 음료

일주일 동안 그곳에서 난 시즌워커들과 같은 방을 쓰고, 같이 세끼를 해 먹고, 같은 작업을 했다.

나무에서 마지막 사과를 땄고, 사과와 배를 선별했다. 작은 건 아이들이 먹을 용으로, 중간 크기와 큰 건 각각 6개월 저장용(저장 박스: jannymt)으로, 상처 난 건 가공용으로.

작업이 낯선 내가 상처 난 사과를 저장용 박스에 넣을 때마다 피오르는 민첩하게 골라냈고, 미안해하는 내게 아니타는 자주 “No, Stress.”라고 말해주었다.

종종 피에르 마리씨나 그의 아들 장 피에르씨를 따라가 다른 곳에 있는 그들의 농장이나 가공공장으로 견학을 다니기도 했다.

 

시즌워커 마지막 날 밤. 계약서, 작업시간, 급여를 확인하는 농장주 피에르 마리씨와 시즌워커들.

시즌워커로 다녀본 곳들 중 덴마크가 가장 좋았다는 킹가는, 내년 가을에도 이 농장에 오겠다고 했다.

나라도 그러고 싶을 것 같았다. 이 농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호의적인 관계였다.

그들은 각자 역할에 충실했고, 서로에게 친절했으며 무리한 요구란 없었다.

시즌워커들은 시간 내 능숙하게 작업을 마쳤고, 농장주 피에르 마리씨는 작업 전 쓴 계약서에 따른 급여와 안전한 숙소를 제공했다.

당연한 모습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평생을 한국에서 산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우애 있는 관계였다.

 

“봉쥬르, 마담!” 아침이 되면 농장에는 피에르 마리씨의 인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이 활기찬 목소리 주인공은 농장 사람들 칭찬대로 좋은 사람이었고, 무척 바쁜 사람이었다.

과거 유기농학교 교사였던 피에르 마리씨는 교사와 농사를 병행하다 20여 년 전부터 전업농이 됐다고 한다.

그는 생명역동농법에 따라 달이 떴을 때 트랙터를 몰았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추운 날에도 어김없이 일했다.

1년 중 휴가는 단 3일. 그 중 하루는 독일로 생명역동농법을 공부하러 다녔다. 그럼에도 기운이 펄펄 넘치는 피에르 마리씨는 농사짓는 게 즐겁다고 했다.

 

고작 일주일. 단면을 보고 공명(共鳴)하는 게 전부였지만, 피에르 마리씨의 동료애와 농장에서 짓는 즐거운 표정은 분명 부러운 에너지였다.

2017년 10월, 나는 벨기에 리에주의 가을 한 가운데 있었다.

일주일 동안 함께 일한 시즌워커 동료들. 왼쪽부터 킹가, 아니타, 나, 피오르.

-다음주에 계속-

 

박푸른들 / 농촌청년여성캠프 기획자, 농 저널 '농담' 운영자

고향에서 농민 아빠를 따라 농사지을 준비 중인 농촌 페미니스트. 취미는 그림, 특기는 일 벌리기.

한국영농신문  agrienews@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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