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시에 있는 종자 저장창고에서 보관된 신동진 볍씨 307톤의 발아율이 85% 미만으로 떨어졌다. 원인은 곰팡이라는게 국립종자원의 해명이다. [사진=픽사베이]

[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지난해 2월 전라북도 도청 앞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전북지역 대표 쌀 품종인 신동진 벼가 공공비축미 매입 대상에서 제한된다는 정부 발표가 나오자마자 농민 단체가 벌떼처럼 일어나 규탄대회를 연 것. 전북농업인단체연합회는 전북도청 앞 기자회견에서 “맛과 품질이 검증되어 전북도내 쌀농가 53%가 재배중인 신동진쌀을 공공비축미 매입 제한 품목에 추가한 정부의 속내가 무엇인가?” 라며 농식품부를 맹성토했다. 이들은 또 “신동진쌀을 포기하고 갑자기 새로운 품종으로 전환하라는 것은 또 무슨 속셈인가?”라며 농업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탁상행정을 펼치는 농식품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지는 게 흔한 일인가? 전라북도에서는 신동진쌀 관련해 1년만에 이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국립종자원 전북지원에 보관 중인 신동진 볍씨 수백 톤이 곰팡이에 오염되어 사실상 폐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좀 더 정확한 팩트는 이렇다. 전북 익산시에 있는 종자 저장창고에서 보관된 신동진 볍씨 307톤의 발아율이 85% 미만으로 떨어진 사실. 원인은 곰팡이.

관계기관은 공무원들의 관리 실패라고 단순사건으로 매듭지으려 했지만, 지역 언론이나 농민단체들은 ‘신동진쌀 대신에 다른 품종을 강권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결과’라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단순실수인가, 의도된 공작인가. 지금 전라북도 농업 현장은 "실수일까, 의도된 걸까"라는 질문으로 온통 벌집 쑤신 듯한 모양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은 성명을 통해 "농민들은 이번 사태를 보면서 신동진 벼 퇴출을 위해 의도적인 상황을 만든 게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농은 "정부는 지난해 쌀 생산량이 많다는 엉터리 조사를 근거로 2026년까지 신동진 종자를 완전히 퇴출하겠다고 했다"며 "그러나 표준재배법이 확립된 이후 같은 조건·면적에서 생산된 나락 양은 정부가 추천하는 참동진보다 신동진이 더 적다는 게 농촌진흥청의 발표"라고 지적했다.

이어 "신동진과 비슷하다는 참동진은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아 가격도 낮고 맛도 떨어진다는 게 전반적인 농민과 소비자의 평가"라며 "(국립종자원의) 볍씨 오염이 정부가 발표한 신동진 퇴출의 연속선상에서 일어난 점을 고려할 때 의도된 일이 아닌지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립종자원도 황급하게 답변하고 나섰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 국립종자원은 농업인에게 고품질 종자 공급을 위해 주기적으로 단계별(수매, 저장, 제품, 출고 전) 품질관리를 실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단계별 품질관리의 일환으로 국립종자원 전북지원에서 수매한 신동진, 안평, 해담쌀 등 6개 품종에 대해 대략정선(모래 등 이물질을 대략 거르는 작업) 후 정밀정선을 위해 저장빈에 보관 중인 종자의 발아율을 검사하였습니다. 이러한 검사 과정에서 신동진 벼 일부 물량(1,328톤 중 307톤)에서 발아율이 85% 미만으로 저하되는 현상을 발견한 것으로, 일부 보도에서 제기한 정부의 새로운 장려 품종을 보급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닙니다.

발아율 저하 상세 원인에 대해서는 종자검정연구센터 등을 통해 조사 중이며, 국립종자원 전북지원에서 전북도농업기술원과 신동진 종자를 소독 처리하여 농가에 공급하는 방안을 협의 중에 있습니다. 이와 함께 농업인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정부 보급종의 원활한 생산·공급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쌀, 즉 볍씨의 정선 과정은 대략정선 → 건조 → 정밀정선 → 비중정선 → 색채정선을 거치게 되어 있다는 게 국립종자원의 설명이다. 대략정선과 정밀정선 사이에 있는 건조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게 국립종자원의 항변인데, 대규모 건조용기에 보관된 볍씨가 곰팡이가 슬어 발아율이 85%이하로 떨어졌다는 건 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보관용기 관리,작동을 능숙하게 하지 못한 공무원의 책임인가 아니면 불량 건조용기를 도입해 애초부터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제공한 누군가의 책임인가?

한심한 일이라고만 지적하기엔 너무도 참담한 일이다. 이런 일로 농업이 ‘전국민적 의제,화제’가 되는 게 농업,농촌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싶은 것이다. 국립종자원은 변명만 늘어놓지 말고, 사태발생의 정확한 원인부터 파악해서 그 전모를 국민들 앞에 밝혀야만 할 것이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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