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이 육성한 골드키위 품종 '감황' [사진=농촌진흥청]

[한국영농신문 이광조 기자] 

우리나라 농민들이 가장 많이 재배하는 아열대 작물은 무엇일까? 뜬금없는 질문 같지만, 전 세계적 기후 변화에 따른 재배작목 선택과 변경은 농업계에서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남부지역, 특히 전남에서는 아열대 작물 재배가 급속히 늘고 있다. 짐작했겠지만,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한 정답은 바로 ‘키위’

키위가 압도적인 1위라는 점은 재배농가 숫자에서 일단 드러난다. 전체 아열대작물 재배농가 절반 가량인 43%가 키위를 선택했다. 전체 재배면적으로 따지면 약 50.7%. 2위는 무화과인데 전체 재배면적 비율 33%, 재배농가 비율 37.5%를 점하고 있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아열대작물 재배 80%는 키위, 무화과에 집중되어 있다는 뜻. 3위부터 5위까지는 1~2위와 비교해 그 비중이 상당히 낮은데, 3위가 석류, 4위가 망고, 5위가 비파. 재배면적 비율은 각각 4% 안팎이다.

현재 국산 키위는 국내 판매 뿐 아니라 일본으로까지 대량 수출된다. 전남농업기술원이 육종한 골드키위 해금, 해원 품종은 유럽에 수출되면서 로열티까지 받는다. 지리적 표시 제111호'인 보성 키위는 전국 생산량 약 22%를 차지한다. 무화과 농가숫자는 전남 영암이 으뜸이다. 특히 서영암농협의 2023년 무화과 취급량은 384 톤으로 전년보다 41% 성장했고, 매출액도 27억원으로 급상승했다.

전남이 아열대 작물 재배가 한창이라면, 강원도에서는 최근 새로운 소득작목으로 육성 중인 땅두릅(백미향)의 출하량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겨울철까지 재배하며 3모작까지 가능하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안정적 고소득 창출 작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춘천 지역 농가들이 생산한 땅두릅은 남부지방 생산물보다 2개월 빠른 1월부터 생산 출하가 가능해 가격 경쟁력에서도 앞선다는 평가다.

이처럼 키위, 무화과 등 아열대작물 재배 증가는 이미 어느 정도 성공한, 자리를 잡은 작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채소 과수 등 농촌지역 재배작목들은 어떻게 그 지역에서 특화된 농산물이나 대박 작목이라고 평가받는 것일까? 단순한 우연일까? 물론 그건 아닐 것이다. 혜안을 지닌 한 두 명의 농민이 무심코 시골에 내려가서 그 일대와 주변 지자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특산물, 히트작목 벨트를 구축했다는 말은 ‘전설’이라고 봐도 된다. 수많은 땀방울과 많은 이들의 합심의 결과가 바로 지역 특산물이자 특화작목이기 때문이다.

각도별 지역특화작목 [사진=농촌진흥청]

◇ 키위, 무화과 등 남부지역 지역특화작목으로 자리잡은 아열대 작물들

여기서 다시 한번 ‘지역특화작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농촌진흥청이 힘주어 밀고 있는 지역별 작목을 '지역특화작목'이라고 부른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경기도의 선인장, 일본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전라북도의 파프리카, 앞서 언급한 전남 보성의 키위(참다래), 충청도의 딸기 등을 대표적인 지역특화작목으로 꼽을 수 있다.

사실 지역특화작목의 적극적 발굴 및 육성은 자유무역협정(FTA)와도 연관이 깊다. 원래는 방패 역할이었지만 지금은 창의 기능 또한 톡톡히 해내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전국 각지의 특화작목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지난 2021년부터 '제1차 지역특화작목 연구개발 및 육성 종합계획(2021~2025년)'을 추진 중이다. 각 도별로 7~8개씩 총 69개 지역특화작목을 선정하고 전국에 총 42곳의 지역특화작목연구소도 설립했다.

그렇게 운영되던 지역특화작목 제도는 2023년 가을에 변화를 맞았다. 기존 지역특화작목(69개)을 재편해 사업성과, 시장경쟁력, 산업발전 가능성, 지역 특화성, 연구기반 우수성 등을 종합해 ▲대표작목(9개) ▲집중육성작목(18개) ▲자체 육성작목(42개)으로 세분화했다. 뭔가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이 가동되나 싶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지역특화작목 연구개발‧육성정책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으로 나타나 문제가 됐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촌진흥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는 ‘지역농업 연구기반 및 전략작목 육성’ 사업의 2024년 예산이 2023년보다 79.4% 삭감된 약 37억원인 것으로 나타나 질타를 받았다. 당시 국감에서 제시된 자료로 파악한 지역별 삭감률은 경기 88.2%, 제주 84.9%, 전북 80.3%, 충북 79.3% 순. 특히나 농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자체의 전략작목 육성 예산이 삭감된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윤 의원은 “국가 주도 특화작목을 집중 지원한다면서 관련 예산이 79.4%(144억원)이나 한꺼번에 증발했다. 지속가능한 농업 기반 조성을 위해 예산 복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더불어 지역 특화작목 육성을 위한 재배기술, 지역브랜드화에도 계속 힘써야 한다”고 질타했다.

2023년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 현장 [사진=이광조 기자]

◇ 예산마저 깎인 ‘지역특화작목’ 항목... 그많던 약속은 다 어디로?

그렇다면 이후 실제로 예산은 어떻게 됐을까? 이는 올해 초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예산 및 정책추진방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농촌진흥청 2024년 예산은 지난해 1조 2547억원에서 1573억원(12.5%) 감소한 1조 974억원으로 확정됐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지역농업연구기반 및 전략작목육성’(+45억원), ‘농업공공기술 진흥사업’(30억원, 신규), ‘반려동물 전주기 고도화 기술개발’ (+28억원) 등 7개 사업, 119억원이 추가 증액됐다는 게 농진청 측의 설명이다.

그런데 지역농업연구기반 및 전략작목육성에 45억원이 증액됐다는 걸 한번 찬찬히 따져보자. ‘지역농업 연구기반 및 전략작목 육성’ 항목의 지난해 2023년 예산은 172억원이었다. 그런데 올해 2024년 관련 예산은 77억원으로 확정됐다. 거의 100억 원이 줄어들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농진청은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45억원을 증액했다는 식으로 발표했다. 눈 가리고 아웅이란 게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란 걸 농촌진흥청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역특화작목 등을 포괄하는 전략작목육성 항목은 172억원의 예산이 77억 원으로 65% 가량 줄어들었다.

그나마 농진청은 지역 특성에 맞는 과학영농시설 지원, 소득향상과 관련이 깊은 전략적 특화작목 핵심기술 보급, 지역농업의 경쟁력 강화에 지난해보다 80억원 증가한 970억원을 반영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12월 2023년도 지역특화작목 사업 성과 보고회를 열었다. 지역특화작목 우수기관과 유공자에 대한 시상 및 포상도 이루어졌다. 감자연구소, 곤충연구소, 농산물원종장 등이 우수성과를 발표됐다. 아울러 지역특화작목 연구소들에 대한 지원도 계속될 계획이라고 농진청은 발표했다.

예산은 깎으면서 지원은 앞으로도 계속 잘 하겠다는 말을 누가 믿을지 궁금해진다.

이광조 기자  lgj@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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