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살아보기’ 우수사례 발표회에서 ‘귀농·귀촌형 운영마을’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강원도 양구군 약수마을 웹용 [사진=농식품부]

[한국영농신문 이광조 기자] 

<고령화 가족>이라는 소설(천명관 저)도 있고 영화도 있지만, 고령화라는 말이 가장 흔하게 쓰이는 곳은 누가 뭐래도 농촌일 것이다. 맞다. 농촌이다. 그래서 정부나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노인만 사는 농촌이 점차 소멸될 것이므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며 말로만 무척이나 분주하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볼 점이 있다. 농촌에 노인들만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 숫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엄연히 농촌 지자체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고 그곳에 다니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린이와 청소년을 키우며 살아가는 엄마와 아빠도 농촌에는 존재한다.

바로 그 지점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거나 애써 무시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 이런 조사 결과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약 5년 전인 지난 2018년 세이브더칠드런이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와 공동 진행한 ‘한국 아동의 삶의 질에 관한 종합지수 연구’를 살펴보면, 부산, 세종, 대전, 대구 등 대도시 아이들의 행복도는 높은 반면, 경북, 충남, 전남 등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쉽게 말해 큰 도시 어린이들보다 시골, 농촌 지자체에 사는 어린이들의 삶의 질이 상대적으로 낮고 그 격차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뜻. 이는 지금부터 10여년 전인 지난 2012년 조사 때부터 일관되게 나타나는 양상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 조사 결과는 전국 17개 시도의 초3, 초5, 중 1학년 아동 총 1만 여명과 그 학부모를 설문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건강, ▲주관적 행복감, ▲아동의 관계, ▲물질적 상황, ▲위험과 안전, ▲교육, ▲주거환경, ▲바람직한 인성 등 8개 영역 46개 상세 지표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산출됐다. 좀 더 살펴보면 도시와 농어촌의 불평등이 한 두개 영역이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흔히 추론할 수 있는 재정자립도, 사회복지예산 비중 등 경제적 요인만이 그 원인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경제적으로 좀 넉넉하다고 해서 삶의 질이나 행복도가 수직상승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 농촌 지자체 아동의 삶의 질은 경제적 요인과 더불어 문화·예술·스포츠 관람 비율 등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는 영화 한 편 보러 가는데 마을버스나 직행버스를 30분에서 1시간 넘게 타고 읍내나 인근 대도시로 나가야되는 시골, 농촌 지자체 아동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역 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아동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에 대한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접근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포괄적ㆍ통합적 접근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정부나 전문가들은 수십년 동안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어촌 지역은 고용률을 제외한 경제 영역이 전반적으로 열악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농어촌 지역 보건·복지 영역도 전반적으로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픽사베이]

◇ 도시와 농촌의 삶의 질 격차 날로 커져... 특히 어린이 삶의 질 격차 주목해야

그래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어업위)가 꼼꼼히 살펴봤더니, 최근 들어 농어촌 지역의 인프라 및 서비스 수준이 전반적으로 나아지고 있지만 실제 주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질 등의 도농 간 격차는 여전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농어촌 지역은 고용률을 제외한 경제 영역이 전반적으로 열악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농어촌 지역 보건·복지 영역도 전반적으로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도농 간 보건·복지 영역 비교 결과, 보건·복지 예산 비율에서 큰 격차를 보였다.

당연한 조사 결과일 수 있다. 올해 봄부터 집중적으로 거론되며 여론의 관심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의대정원 확대’, ‘지역의사제 도입’, ‘노인돌봄 위한 간호법 제정’ 등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나 의사협회의 완강한 반대 앞에서 제자리걸음 중인 것을 보면 도시와 농촌 간의 보건ㆍ복지 영역 삶의 질 격차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혹시 우리나라 농촌 지역 중 면 지역 고령화율이 2020년 말 기준으로 31.3%인 점을 알고 있는가? 고령화율이 25%를 넘어선 상태를 초고령화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농촌 면 단위 지역은 이미 초고령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들이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거나 그럴 확률이 높다는 사실. 더구나 국내 면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 146만 명 중 27.3%인 40만 명 정도가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잠재 돌봄 수요자라는 자료도 나와있다.

눈여겨 봐야할 점은 이 40만 명의 잠재돌봄 노인층 중에서 22만 명만 노인장기요양보험,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등을 받는 공적 돌봄 대상자라는 사실. 즉 나머지 18만 명의 노인들은 돌봄이 필요하지만 공적 돌봄을 받지 못하는 노인인 것으로 조사됐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점들이 농촌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가장 큰 요인들이라는 걸 정부나 관계자들은 직시해야 한다. 의대정원 확대, 지역의사제 도입, 간호법 제정, 간병비 의료보험화 등 전반적인 의료시스템의 변화, 아니 보다 폭넓은 변혁이 필요한 건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농어업위 조사 결과를 좀 더 살펴보면, 또한 도농 간 문화시설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고, 농어촌 지역의 빈집 비율이 높고 하수도 보급률도 낮아 전반적으로 인프라가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농어촌 지역 청년 비율과 교통접근성이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도시에 비해 삶의 질 지표가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지난 13일 열린 농어업위 ‘제19차 본회의’에서 김창길 농어촌분과위원장이 ‘농어촌 삶의 질 지표 예비조사 및 활용 방안’을 발표하면서 나왔다. 특히 농어촌 삶의 질 지표체계 및 지수를 개발해 전국 139개 농어촌 시·군 지역별 삶의 질 수준을 제시했다.

경남창원 빗돌배기마을 단감과수원에서 소풍을 즐기는 모습 [사진=농촌진흥청]

◇ “의대,병원도 부족, 돌봄 인력도 부족”...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특위 결단에 주목

농어촌 삶의 질 지수 산정 결과, 농어촌 삶의 종합 지수에서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은 최상위권 지역은 군 지역은 인천 옹진, 울산 울주, 대구 달성, 강원도 화천, 전라북도 진안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농복합시에서는 경기 화성ㆍ용인ㆍ김포ㆍ이천, 세종특별자치시 등이 선정됐는데, 수도권 인근이나 서울에서 대전으로 연결되는 회랑 지역, 지방 산업단지 인근 시군에서 삶의 질 지수가 높게 나타났다.

경제영역 지수에서 최상위권 지역은 군 지역의 경우 충북 진천ㆍ음성, 경북 울릉ㆍ청송. 인천 옹진, 충남 청양 등이 선장됐고, 도농복합시는 경기 화성ㆍ이천, 충남 서산ㆍ아산ㆍ당진 등 산업단지 지역중심으로 경제규모가 큰 것으로 나왔다. 보건·복지영역 지수는 군 지역의 경우 부산 기장, 대구 달성, 울산 울주, 인천 강화, 경기 양평 등이 선정됐으며, 도농복합시는 경기 남양주ㆍ용인ㆍ김포ㆍ화성, 충북 청주 등 대도시 인근 지역에서 높은 지수가 나타났다.

문화·공동체영역 지수 최상위권 지역으로는 군 지역은 인천 옹진ㆍ강화, 전북 고창, 충남 서천, 강원 양구 등이 선정됐으며, 도농복합시는 충남 계룡, 전북 정읍, 세종, 강원 삼척ㆍ강릉 등에서 지수가 높게 나왔다. 환경·안전영역 지수 최상위권 지역은 군 지역의 경우 전북 진안, 충북 청양, 경북 영양ㆍ봉화ㆍ군위 등이 선정됐으며, 도농복합시는 경기 남양주ㆍ용인ㆍ김포, 세종, 충남 계룡 등이 높은 지수를 나타냈다. 지역회복영역 지수 최상위권 지역은 청년인구 비율과 인구증감률이 높은 경기 화성ㆍ김포, 세종 등이 지수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창길 농어촌분과위원장은 “이번 지표체계 및 지수 구축을 통해 지역 간 삶의 질 격차를 줄이는데 이바지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농어촌 삶의 질 지표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장태평 농어업위원장은 “내년부터는 지역소멸과 관련된 문제들을 실질적으로 다루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번 발표가 도농 간 삶의 질 차이를 줄이고, 정책에도 지표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

농어업위가 진단을 제대로 한 게 맞는다면, 이제 남은 것은 행동일 것이다. 고령화, 지역의료 돌봄 시스템 취약, 지역소멸 위기, 어린이 삶의 질 저하, 여성 농업인들을 위한 제도 미비 등 산적한 난제들을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보다 과감하게 실행하는 일만 남아있다는 뜻이다. 지체하면 일을 그르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서둘러야 한다.

이광조 기자  lgj@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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