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농기계기업 존 디어(John Deere)는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CES(국제 전자제품 박람회) 2023'에서 레벨4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 트랙터를 선보였다. [사진=존 디어 홈페이지]

[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인공지능(AI)의 출현은 농기계 시장의 판도 역시 뒤바꿔 놓았다. 이젠 더 이상 로봇이라는 이름만으로 농기계나 자동화를 논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분위기는 전 세계적인 것이어서 국내 농기계업체들도 그 분위기를 따라가거나 선도하는 입장으로 급선회하고 있는 모양새.

급기야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CES(국제 전자제품 박람회) 2023에서는 세계적인 농기계기업 존 디어(John Deere)가 레벨4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 트랙터를 선보였다. 존 디어가 세계 농기계 기업들의 수준과 능력을 판가름할 수 있는 척도를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최근 소식으로는 마사회의 행보가 눈에 띈다. 국내 말(馬)산업 육성 전담기관인 한국마사회가 국내 농기계 기업 LS엠트론과 협력해 말 산업 현장용 자율주행 트랙터 ‘스마트렉(SmarTrek)’을 개발, 도입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마사회 제주목장 규모가 약 65만 평인데 여기에서 자율주행 트랙터 개발을 위한 협업을 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 만약 마사회가 계획한대로 자율주행 트랙터가 개발된다면 65만 평의 풀밭(초지)에서 인력의 도움없이 트랙터가 스스로 비료 주기에서부터 풀 깎기, 돌 제거, 파종 까지 해내게 된다. 마사회는 경마장 경주로에서도 활용 가능한 수준으로 트랙터를 개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물론 개발은 LS엠트론이 한다.

농산업에서 농기계의 발전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대규모 행사도 국내에서 열려 관심을 끌어모은다. 광주시는 오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김대중컨벤션센터 '인공지능(AI) 테크 플러스(TECH+)' 특별관에서 AI 기술과 다양한 산업의 융합을 주제로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여기서도 농산업, 모빌리티, 콘텐츠 등 AI 활용 최신 트렌드를 다루게 된다.

특히 첫날인 8월 30일 'AI+농산업'에서는 ▲첨단무인자동화 시범단지 조성 및 운영 ▲네덜란드 첨단 온실 무인자동화 기술 현황 ▲우즈베키스탄 스마트농업의 기술과 AI 등의 주제로 발표가 이루어진다. 이튿날인 31일에는 'AI+지능형 농기계' 에 대한 주제가 다뤄질 예정이다.

우리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제9차 농업기계화 기본계획’을 통해 ‘지속가능한 농업 생산을 위한 스마트 농업기계화’의 비전을 발표한 바 있다. 자율주행 농기계를 통한 무인 자동화 농업생산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로 한 제9차 농업기계화 기본계획은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중점 추진된다. 기본방향은 ▲밭 농업기계화 촉진, ▲농업기계 이용 활성화, ▲농기계 연구개발, ▲제도개선 및 안전관리 강화, ▲인력양성 및 수출지원 등이다. 5년간 약 1조 2,731억 원을 투자하는 규모있는 프로젝트다.

LS자율작업트랙터 '스마트렉'은 농촌 고령화와 일손 문제 부족의 해결점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 농업 첨단화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LS엠트론]

◇ 세계는 지금, 무인자동화 농업 열풍... 말 산업에도 자율주행 트랙터 도입

이 같은 큰 변화의 물결은 이전처럼 자동차 완성차 업계에서만 주목받던 자율주행 기능을 농산업을 비롯한 전 산업계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농기계에서의 자율주행 적용은 정밀농업이라는 슬로건과 맞물려 인력난 해소와 생산성 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지름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내 농기계 제조사들 역시 농기계 자율주행이라는 세계적인 트랜드에 동참해 질주하고 있는 모양새다. 국내 굴지의 농기계 업체 대동은 자율주행과 농업 솔루션 등을 성장동력으로 하는 전략을 구사하며 순항하고 있다. 자율주행 트랙터·이앙기를 일단 기본으로 선보였다. 국내 농기계기업 티와이엠(TYM) 역시 농기계의 완전 자율주행화를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정밀농업 전문회사 티와이엠 아이씨티(TYM ICT)를 출범시켜 스마트 농업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정부도 이 같은 분위기를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는 자율주행 농기계 국산화 기술 및 보급 지원에 초점을 맞춰, 자율주행 농기계의 상용화를 위해 위치측정과 자세제어 등 필요한 핵심부품 국산화 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내년까지 438억 원을 투입해 무인 자동화 농업기계를 개발하고,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00억 원을 쏟아부어 자율주행 농기계 고도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정부는 현재 개발 중인 자율주행 농기계의 성능과 안정성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실증부지를 오는 2026년까지 새만금 간척지에 1,092억 원을 투자해 조성하기로 했다. 이 실증단지는 49.8㏊ 규모의 ‘밭농업농기계 실증단지’와 40.7㏊ 크기의 ‘논농업농기계 실증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대대적인 자율주행 농기계 트렌드와는 별개로 2023년 상반기 한국 농기계시장은 침체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농가소득 감소 및 물가상승 압박 때문에 목돈을 내고 구입해야하는 농기계에 대한 지출이 맞물려 감소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정부융자지원으로 판매된 트랙터 금액이 지난해보다 2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축산농가의 소득 감소 역시 농기계 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대형 농기계의 자가 구매 비율이 높은 축산농가들이 지난해 맞이한 한우고기값 폭락, 사료값 인상 등의 요인 때문에 농기계 추가 구입을 꺼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티와이엠(TYM)의 자회사 티와이이엠 아이씨티(TYM ICT)는 지난 2021년 7월 전북 익산에서 텔레매틱스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트랙터 시연회를 마무리했다. [사진=TYM]

◇ 정부도 국내 농기계업체들도 자율주행 농기계 개발에 집중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 한국농업에 대한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가 눈에 띈다. 전경련이 한국 농업이 직면하고 있는 복합위기를 극복하고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농기계 산업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나섰다.

전경련은 <농기계 산업 글로벌 동향과 한국의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자율주행・로보틱스 등 첨단산업으로 진화하는 농기계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을 통해 취약한 식량안보, 농촌 고령화, 농업 생산성 하락 등 ‘삼중고’에 직면한 한국 농업에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 자료는 한국 농기계 시장이 세계시장의 1% 수준이며,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농기계 기업인 ‘존 디어’ 같은 회사를 키워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최근 추산에 따르면 전세계 농업용 자율주행 및 드론 분야는 2025년까지 각각 26억 달러(약 3조 3천억 원) 및 17억 달러(약 2조 2천억 원) 규모로 성장(연평균 18% 이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개최된 CES 2023에서 기조발표로 많은 관심을 받은 농기계 글로벌 1위 기업인 존 디어는 이미 유인 자율주행 단계(레벨 2)의 트랙터를 양산하고 있으며, 완전 무인 자율주행 단계(레벨 4)의 트랙터에 대한 연구개발까지 완료했다. 일본의 대표적 농기계 기업인 구보다(Kubota)도 최근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인 테벨 에로로보틱스 테크놀로지스(Tevel Aerobotoics Technologies)에 투자하여 과일 수확용 드론 사업에 진출하는 등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일본 농업 환경에 적합한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의 농기계 산업 현황을 살펴보면 내수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2조 3천억 원으로 지난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1.7%에 그치고 있다. 주요 기업으로는 대동, LS엠트론, 티와이엠 등이 있으나 매출 규모 측면에서는 글로벌 기업의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또한 최근 우리 기업들도 치열한 연구개발을 통해서 기술 수준을 높이고는 있지만,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의 분석에 따르면 농기계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의 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약 3년 정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련은 같은 자료에서 “향후 농기계 산업은 기존의 전통 기계산업에서 자율주행, AI, 빅데이터 등 다양한 첨단기술 분야가 결합한 모빌리티, 로보틱스로 진화하고 있어 기존의 칸막이형 R&D 지원보다는 여러 가지 요소기술들을 아우를 수 있는 ‘융복합형’ R&D 추진정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전경련은 이를 위해서는 농기계 관련 연구기관(농촌진흥청, 기계연구원, 생산기술연구원 등)을 포괄하는 산학연 연계 클러스터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법적・제도적으로 강력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현재 국회에 제출된 ‘스마트농업육성법’도 조속히 통과되어야 한다며, 첨단 농기계 관련 R&D나 설비에 투자하는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적용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장이 정체된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농기계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며, 특히 개도국 대상 농촌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추진 시 국내 농기계 기업의 참여를 염두에 둔 사업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도 전경련 자료의 핵심내용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는 한국 농기계업체의 발전을 기대하게 된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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