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농산물 소비 증가가 농촌과 농민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건 이미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어 농촌과 농민들의 심적 안정과 신뢰감 회복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 상부상조의 마음가짐이 확산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크다. [사진=농촌진흥청]

[한국영농신문 이광조 기자] 

장마와 폭염에 이어 태풍까지 우리나라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농촌은 그야말로 울상이다. 한 해 농사를 접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 농민들의 처지가 연일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이 더해간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농산물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인상되고 있는 실정.

김치를 담그는 배추 도매가격이 대표적인데, 한 달 전보다 무려 3배 가까이 올라, 4,077원이던 배추 한 포기 전국 평균 소매가격이 지난 11일엔 무려 6,073원이 됐다. 배추 한 포기 값이 무려 2천 원 정도 뛰어오른 것이다.

도매가격도 마찬가지다. 한 달 전인 7월 11일과 한 달 후인 8월 11일 가격을 비교해보면 농산물 가격이 얼마나 인상됐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배추 도매가격은 10㎏에 9,880원에서 2만 5,760원, 무 도매가격은 20㎏에 1만 2,900원에서 2만 9천320원, 대파 도매가격은 1㎏ 2,076원에서 3,250원이 됐다. 사과 역시 10kg 도매가격이 7만 4,872원에서 8만 6천225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아직까지 정확한 피해가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7월 9일부터 이어진 집중호우로 농작물 3만 6252㏊가 침수됐다. 농경지는 613.6㏊가 유실 되거나 매몰된 상황. 그 중에서도 약 436㏊가 과수원 등의 낙과 피해인 것으로 나타나 과수농가의 피해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북 정읍 논콩 침수 현장 [사진=전북농업기술원]

◇ 장마, 태풍에 과수 농가 피해 커... 설상가상으로 농산물 가격 급등

이러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농촌 뿐 아니라 도시 소비자들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몇 해 전부터 쏟아져 나온 게 사실이다. 목소리만 내는데서 벗어나 구체적인 실행으로도 옮겨져 피해 농가에 나름의 도움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적극적인 소비를 말한다.

낙과 피해를 입었거나 모양이 일부 상품성에서 벗어난 등급 외 농산물을 흔히 '못난이 농산물'이라고 한다. 알다시피 맛과 영양소는 일반 농산물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모양, 크기, 중량 등이 시장 기준에 조금 못 미칠 뿐이다. 당도나 영양소 면에서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게 농민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러한 낙과 등 못난이 농산물을 이른바 ‘맛난이’ 농산물로 대접하자는, 아니 대접해야 한다는 조용한 움직임이 올해도 계속 커지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못난이 농산물 소비 증가가 농촌과 농민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건 이미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어 농촌과 농민들의 심적 안정과 신뢰감 회복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 상부상조의 마음가짐이 확산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크다.

이러한 소비행태는 이미 경제학에서 ‘가치 소비’라는 말로 정착되고 있다. ‘미닝 아웃’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신조어다. 가치소비란 특히 MZ세대의 소비행태를 특징적으로 아우르는 말인데, 주위 시선이나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표현하는 식으로 소비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MZ세대 10명 중 8명이 가치소비를 지지한다는 설문 조사결과도 있는 걸 보면 가치소비는 이미 MZ세대에게 트렌드가 된 모양새. ‘미닝아웃’이란 말 역시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커밍아웃(coming out)'이 결합된 말로,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신념에 근거해 소비할 제품을 결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노재팬(일본 제품 불매운동)에도 적극적이었고, 돈쭐내기(돈으로 혼쭐내기) 이슈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도 MZ세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3~4년 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한 방송에서 '못난이 왕고구마' 300톤을 완판한 게 대표적 사례다. 품질엔 큰 문제가 없으나 흠집이 조금 나는 등의 하자를 지닌 못난이 왕고구마 300톤이 순식간에 팔려나가는 모습에 국민들은 감동했고 열광했다. 불과 사흘만에 벌어진 일이라서 사람들은 더욱 놀란 바 있다. 못난이 농산물이 맛난이 농산물로 변신하는 극적인 소비활동이 아닐 수 없다.

낙과 피해를 입었거나 모양이 일부 상품성에서 벗어난 등급 외 농산물을 흔히 '못난이 농산물'이라고 한다. 알다시피 맛과 영양소는 일반 농산물과 큰 차이가 없다. [사진=농촌진흥청]

◇ 가치소비, 미닝 아웃... 못난이 농산물을 ‘맛난이 농산물’로 대접하는 지름길

최근엔 ‘푸드 업사이클링’ 활동이 점점 더 구체적이고 안정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추세다. 시장에서 외면 받던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해 만든 새로운 농식품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듬뿍 받고 있는 것. 알다시피 푸드 업사이클링이란 상품 가치가 낮아 폐기될 농산물이나 식품 부산물을 활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농식품 부산물을 활용한 ‘농식품 새 활용(업사이클링)’을 10대 푸드테크로 선정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두부 제조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활용한 과자라든가, 샤인머스캣 낙과를 이용해 샤인머스캣 건포도로 만들어낸다든가, 떨어진 사과나 배를 주스로 만들어 판다든가, 낙과를 건조해 과일칩을 만드는 게 대표적인 푸드 업사이클링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국내 유통업체들 역시 이번 장마와 태풍 피해 상황 속에서 가치소비와 푸드 업사이클링에 기여함과 동시에 피해농가를 돕기 위한 못난이 농산물 소비 진작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편의점 GS25는 이번 수해로 피해가 큰 경상북도와 충청도 지역의 과일을 매입해 판매하기로 했는데, 판매 품목은 경북의 못난이 사과와 충북 영동의 복숭아. 회사측은 상품을 적극 매입해 피해 농가의 판로를 지원한다는 계획. 슈퍼마켓인 GS더프레시 역시 채소류(마늘, 대파, 알배기배추 등)을 중심으로 못난이 상품을 매입해 할인 판매하기로 했다.

홈플러스도 호우 피해가 막심한 강원도의 다다기오이, 청양·오이맛고추를 ‘맛난이 농산물’로 명명하고 전 점포에서 판매하고 있다. ‘맛난이'라는 이름으로 일반 상품 대비 20~30% 저렴하게 팔고 있어 소비자들의 호응이 크다. 롯데마트도 외관상의 이유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못난이 오이’를 약 10톤 정도 매입해 ‘상생 오이’라는 이름으로 판매중이다.

국내 유통업체들 역시 이번 장마와 태풍 피해 상황 속에서 가치소비와 푸드 업사이클링에 기여함과 동시에 피해농가를 돕기 위한 못난이 농산물 소비 진작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사진=이병로 기자]

◇ 푸드 업사이클 진작, 피해농가 지원 위해 국내 유통업체도 나서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20년 5월 농산물 비규격품을 원료로 한 가공식품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4개 품목 생산자 대표 수출회사(코파(KOPA, 파프리카), 케이 베리(K-berry, 딸기), 케이 그레이프(K-grape, 포도), 케이 머쉬(K-mush, 버섯)), 가공, 해외 진출 프랜차이즈 업체 등 11개사가 참여하는 다자간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농식품부는 상품개발이 이루어지는 대로 품목별 수출 목표를 설정한 이후 정책지원을 추진해왔다.

실제로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한 상품화는 다양하게 진행중이다. 국내 못난이 농산물을 티 블렌딩 재료로 가공하여 다양한 재료와 혼합한 블렌딩 티를 개발하는 ‘퍼스티아’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023 ITQI 국제식음료품평회(International Taste Institute)’에서 국제우수미각상(Superior Taste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충청북도 농업기술원은 도지사의 역점 사업인 못난이 농산물 소비 활성화를 위해 파프리카 혼합 잼을 개발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 제품은 파프리카 특유의 풋내를 유자청으로 감소시켰고, 잼과 같은 물성을 위해서 사과를 활용했다고. 파프리카 잼은 3가지 품종(빨간, 주황, 노랑)을 활용해 시제품으로 생산됐다.

클린뷰티 브랜드 라타플랑은 최근 전남 순천의 무농약 못난이 미나리에서 추출한 성분을 활용해 '미나리 진정 세럼'을 출시했다. 제품에 함유된 미나리 추출물은 여름철 열로 인해 자극 받은 피부 관리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

앞서 예를 든 것처럼 장마 피해, 태풍 피해를 입은 농가를 돕는 일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못난이 농산물, 아니 맛난이 농산물로 만들어진 제품을 적극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수해 피해농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셈인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 맛난이 농산물 소비에 주저하고 망설일 이유는 없지 않을까? 특별히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많은 엠제트 세대 소비자들의 동참을 기대한다.

이광조 기자  lgj@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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