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시 고령화 추세는 일본과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더 가파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약 2년 뒤 2025년에 한국은 고령화 과정의 최종단계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사진=픽사베이]

[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소설이 최근 120만 부 넘게 팔려나가면서 이른바 K-힐링소설이라는 장르가 탄생한 모양새다. 대한민국이 그만큼 치유와 돌봄이 필요한 나라라는 뜻으로 해석할 여지가 큰 대목. 소설 내용과는 좀 다르지만, 편의점을 비롯한 키오스크 매장은 노인들에게 매우 불편한 곳이다. 키오스크가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일이 고문처럼 느껴진다는 말도 노인들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불편했던 편의점’이 말 그대로의 편의점, 즉 편리한 장소 (콘비니언트 스토어 = convinient store)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일본 편의점에 개호(간호·수발·간병을 포괄하는 서비스) 상담소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18년 즈음부터다. 초고령 국가 일본의 편의점들이 음식, 생활 용품을 비롯해 간병 관련 상품, 노인들 세금 수납 등을 대행해주는 서비스까지 해주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편의점은 노인들을 위한 새로운 커뮤니티 거점으로 변모했다.

우리나라 역시 고령화 추세는 일본과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더 가파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약 2년 뒤 2025년에 한국은 고령화 과정의 최종단계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초고령사회란 만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사회. 

농촌만 떼어놓고 분석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1970년 우리나라 농가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5%가 채 되지 않는 4.9%였다. 50년 전엔 그만큼 젊은 농촌이었다는 뜻. 그렇다면 50년이 지난 2020년 우리나라 농촌의 고령화 비율은 얼마나 될까? 무려 46.6%에 이른다. 농촌에 사는 사람의 절반 가까이가 만 65세 이상 노인인 게 대한민국 농촌현실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농촌은 초고령사회 진입에 걸맞는 준비가 되어있을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매우 거리가 멀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앞서 말한 일본처럼 지역사회에서 노인을 케어(돌봄ㆍ간호ㆍ개호)하는 포괄 시스템 자체가 전무한 곳이 대한민국다.

일본은 편의점도 노인을 위해 변모중이고, 치매 카페라는 곳도 활성화되어 환자 본인과 가족들이 모여 상호 돌봄도 가능하고, 컬렉티브 하우스라는 노인 공동생활 주택도 활성화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아예 지역사회 내에서의 돌봄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어 있지도 않은 실정이다.

일본 편의점에 개호(간호·수발·간병을 포괄하는 서비스) 상담소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18년 즈음부터다. 초고령 국가 일본의 편의점들이 음식, 생활 용품을 비롯해 간병 관련 상품, 노인들 세금 수납 등을 대행해주는 서비스까지 해주고 있다. 사진은 일본 편의점 내부 [사진=픽사베이]

◇ 만 65세 이상 고령인구 47%인 우리 농촌... 의료, 돌봄 시스템 제대로일까?

우리나라는 최근에야 대한간호협회가 ‘간호법’ 제정을 앞두고 ‘간호법은 부모돌봄법, 간호법은 국민행복법’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우고 노인들에 대한 돌봄이 지역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져야 된다는 당위성을 전파중이다. 하지만 의사협회와 의사들의 반대로 이마저도 불투명한 게 대한민국의 노인돌봄 현실이다.

이웃나라 일본이 우리보다 10년~20년 정도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이유도 있겠지만, 일본의 노인돌봄 상황은 시스템으로 보나 과학기술적 연구 개발 면에서 보나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게 사실. 일본은 간병이 필요한 고령자가 증가 추세에 발맞춰 IT 기술을 돌봄, 간병에 접목시키고 있다.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일본 도쿄무역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도에 개정된 일본의 개호보수 내용은 무척이나 체계적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감염증이나 재난에 대한 대응력 강화 (감염증이나 재난이 발생한 경우라도 이용자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제공되는 체제를 구축, BCP(업무연속계획) 대책의 강화)  ▲지역포괄 케어시스템 추진 (정든 지역에서 이용자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서비스가 끊임없이 제공될 수 있도록 추진.) ▲자립지원·중증화방지 대응의 추진 (제도의 목적에 따라 질 높은 평가와 데이터를 활용하면서 과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질 높은 서비스 제공을 추진.) ▲개호인력의 확보, 개호현장의 혁신 (긴급·중요한 과제로서 개호 인력 확보, 개호현장의 혁신에 대응, 개호기기를 도입해 종사자의 부담을 경감, 웹 회의를 활용.) ▲제도의 안정성·지속 가능성의 확보 (필요한 서비스 확보, 적정화·중점화를 도모) ▲기타 사항 (요양보험시설에서의 리스크 관리 강화, 고령자 학대 방지 추진) 등.

이와 같은 내용의 현실화를 위해 일본에서는 노인들의 보행보조 로봇에서부터 비데와 연결된 IT기술 장착 기저귀에 이르기까지 돌봄ㆍ간병 IT기기들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종식 후에 발생할 가능성이 큰 고령자의 외출자제에 따른 운동 부족, 대화나 만남 부족에 따른 심신 허약화 문제도 ICT나 로봇을 활용하는 단계에 와 있다.

일본의 개호식품 전문회사 '큐피'의 제품들 [사진=큐피 홈페이지]

◇ 일본, 돌봄ㆍ간병 IT기기 다양... 한국, 노인돌봄 지향하는 「간호법」 제정도 불투명

일본은 간호,간병,돌봄 선진국이자 고령친화식품 천국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노인들을 위한 개호식품(고령친화식품)이 발달한 나라다. 코트라 일본 오사카무역관 자료를 보면, 일본의 간병대상자는 2015년 620만 명에서 2035년에는 899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병원에서 간병하다가 자택 간병으로 전환하는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간병 대상자가 기존의 병원이 아닌 요양시설, 가정에서 간병을 받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 역시 지난 2018년도 GDP의 1.9%를 차지하던 간병 관련 사회보장 비용 10조 7000억 엔(우리돈 107조 원)이 오는 2025년에는 15조 3천억 엔(우리돈 153조 원), 2040년에는 25조 8천억 엔(우리돈 258조 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재택 간병을 적극적으로 홍보 중이다.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일본의 후생노동성은 오는 2025년까지 거주 지역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역포괄 케어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역 요양시설이나 가정에서의 간병을 선택하는 고령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재택 간병자의 증가추세에 따라 일본의 고령친화식품 시장이 날로 성장하고 있다. 고령친화식품은 고령자의 식품 섭취와 소화를 돕기 위해 식품의 물리적인 성질을 바꾸거나 소화하기 쉬운 성분이나 형태가 되도록 만들고 영양 성분을 조정한 음식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고령친화식품'으로 불리고, 일본에서는 '개호식품(介護食品, Care food)'라고 부른다. 여기서 '개호(介護, elderly care)'는 고령자를 돌보는 서비스를 의미하므로 한국에서는 간호, 요양, 간병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다.

일본은 이처럼 증가하는 간병 대상자와 고령친화식품 수요층을 겨냥해 각 식품 제조사가 고령친화식품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케어푸드가 간병 대상 고령자 뿐만 아니라 뇌 질환 등으로 인한 연하기능 곤란자, 치과치료, 교정치료, 발치 등 각종 이유로 음식을 씹기 곤란한 사람들 역시 수요층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일반 소비자와 간병 대상자를 모두 겨냥하고 있다는 것.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과 한국은 모두 고령화국가들임과 동시에 초고령사회에 이미 진입했거나 진입 직전에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의 개호, 즉 돌봄 간호 간병 시스템의 차이는 한마디로 천지차이다. 일본이 IT기기를 활용한 간호 간병 기기를 다양하게 생산,출시하고 법과 시스템을 매년 수정해가며 노인들의 돌봄,간병,간호를 위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쏟아붓고 있다면, 한국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한국에서도 노인돌봄, 존엄돌봄, 부모돌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간호법 제정이 추진 중이라는 점이다. 의사들 입장에서야 병원을 찾아오는 외래환자가 중요할 수 있겠지만, 병원 바깥의 현실, 즉 허술하기 짝이 없는 노인돌봄이나 지역사회에서의 재택 간호ㆍ간병 현실마저 외면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병원을 찾아갈 수 없는 노인들의 입장과 현실을 적극 반영한 의료시스템의 재설계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웃나라 일본의 노인돌봄 시스템과 IT기술의 접목 그리고 케어푸드의 발전상은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부러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식약처 등 관련부처와 의사협회, 간호협회 등 모든 기관들은 힘을 합쳐 개선해야될 점이 바로 우리나라의 노인돌봄, 지역사회 간호,간병 시스템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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