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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영준 주페루 대사감자의 나라이자 고향, 페루... 5800종 유전자 보유, 종주국 위상 확고
조영준 주페루 대사 [사진=주페루 대사관]

감자는 쌀과 밀, 그리고 옥수수와 함께 인류가 소비하는 4대 주요 식용작물이며, 연간 세계 총생산량은 3억 톤이 넘는다. 감자의 원산지는 현재의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칠레를 아우르는 안데스 고산지대이다. 특히 페루는 감자의 원산지이며, 약 4천여 종의 감자가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원산지 안데스를 떠나 유럽에 첫 선을 보인 감자는 온대와 열대, 한대를 망라한 모든 대륙(남극을 제외한)에서 재배되는 주요 식량자원이 되었다. 그러나 인류가 과거 백만 년은 먹어온 듯 익숙한 덩이줄기 작물 감자가 세계무대에 등장한 것은 장구한 인류사에서 기껏해야 4백여 년 남짓에 불과하다.

■ 감자 재배의 기원 = 학자들은 약 8천 년 전 해발 3800미터 안데스 고지인 티티카카 호수(Lake Titikaka) 인근에서 야생식물이던 감자의 작물화가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본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현생인류가 유럽, 아시아, 북미를 거쳐 약 1만 5천 년 전 남미에 도착하고도 7천년이 지난 후 감자의 식량화가 시작된 셈이다.

역사가 다 기록하지 못하는 수많은 안데스 지방문명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했던 8천 년 간 감자는 옥수수와 함께 안데스인의 필수 영양 공급원이었다. 안데스 최초 문명인 카랄(Caral) 문명이 융성과 몰락을 겪고,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으로 세계가 지각변동을 겪는 순간까지도 감자는 오롯이 남미 원주민의 차지였던 것이다.

특히 15세기 잉카인들이 지금의 콜롬비아 남부에서 칠레와 아르헨티나 북부에 걸친 광활한 제국을 건설하면서 감자는 잉카의 세력권 전역에서 주식으로 섭취되었다. 지금도 쿠스코 지역의 옛 잉카 유적지를 방문하면, 주거지내에 감자 보관소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잉카인들이 감자를 빻아 얇게 펴서 말린 뒤 냉동과 해동을 반복해 만든 추뇨(Chuño)라는 냉동건조 감자는 10년까지도 장기 보존할 수 있다.

안데스산지에서 재배되는 다양한 형태의 감자 [사진=국제감자센터, RPP Noticias]

■ 늦깎이 세계무대 데뷔, 그리고 세계화 = 1532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지휘하는 정복군(Conquistadores)이 단시일 내 잉카제국을 멸망시키고 이십 여 년이 흐른 1554년, 안데스의 감자는 다른 신세계 작물들과 함께 스페인 배에 실려 유럽으로 전파된다. 스페인령 카나리아에서 초기 재배과정을 겪은 후 스페인 본토에서는 1573년 시험 재배가 개시되었다. 영국에는 1570년대, 아일랜드에는 1580년대에 전파되었다. 네덜란드에는 1650년대, 그리고 독일, 프랑스, 폴란드에는 1740년대, 러시아에는 1840년대에 전파되었다. 

유럽인들이 처음부터 감자를 환영한 것은 아니며, 유럽 전역에서 감자가 식용작물로 재배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시 유럽인들은 땅 속에서 자라며 흙으로 뒤덮인 울퉁불퉁하며 검은 반점의 신세계 작물을 동물이나 미개인들이 먹는 것으로 멸시했다. 여러 편견과 감자가 나병과 같은 질병을 가져온다는 소문, 독성이 있다는 이유로 감자는 악마의 식물로 불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빈번한 전쟁과 흉작 등으로 주기적 기근과 식량부족에 시달린 유럽인들은 밀을 대체하는 구황작물로서 감자의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 특히, 1770년대 유럽 전역을 휩쓴 대기근과 1810년대 나폴레옹 전쟁 중에 감자는 대중적인 식량원이 되었다. 독일의 경우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정책적으로 감자 재배와 섭취를 장려한 것이 감자 식용 대중화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알려진다.

그리하여 감자는 인류가 근대로 진입한 지 한참이나 지난 18세기 후반 주요 식용작물로서 유럽 식문화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학자들은 유럽이 '맬서스 트랩'(Malthusian trap)을 극복하고 18~19세기 급속한 인구 증가를 이룬 이유를 신대륙 작물(특히 감자)의 유럽 보급에서 찾는다.

감자의 역사를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대목이 아일랜드 대기근이다. 19세기 영국 지배시기 아일랜드의 피폐한 농민들에게 감자는 대체 불가한 식량이었다. 하지만 1845년부터 1848년까지 발생한 감자잎마름병으로 전국 감자 생산지가 초토화되었다. 2백만 명이 아사하고, 2백만 명이 해외 이주하면서 인구가 절반으로 줄었다. 해외 이주자 중 1백만 명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 내 아일랜드계가 급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구대륙에 느리게 확산되던 감자는 17세기 초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함께 신대륙(지금의 미국 버지니아)에도 뿌리내렸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선에 실려 17세기 초 인도네시아로 건너간 후, 일본으로도 전해졌다. 유럽에서 중국으로, 1820년대에 한국(조선)에 전파되었다. 그리고 1880년대 아프리카 대륙에 전파되면서 마침내 16세기 중엽 남미에서 시작된 감자의 세계 전파는 대미(大尾)를 장식했다.

감자의 세계화는 만성적 기근을 겪던 인류의 새로운 식용작물에 대한 수요 이외에도 감자가 지닌 최강의 생존력에도 기인한다. 감자는 저지대에서 해발 4700미터의 고지대까지, 남미 최남단 칠레 남부에서 북극권 그린란드에 이르는 광범위한 기후대에서 재배 가능하다. 심지어 국제감자연구소(International Potato Center)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과 공동으로 화성의 자연여건에서도 감자 재배가 가능할 지를 시험 중이라 한다.

사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이래 유럽에 전파되고 다시 세계로 확산되어 인류의 식량난 해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중남미 원산지 작물들은 감자 이외에도 고구마, 옥수수, 토마토, 고추, 땅콩, 파인애플, 카카오 등 다양하다. 그리고 신세계와 구세계 간 오랜 고립의 시간이 저물고 인류사에 출현한 이른바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은 유사 이래 기아에 시달린 인류에게는 따사로운 축복이었다.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된 <감자 먹는 사람들’(potato eaters)>은 감자에 관해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미술품이다. 19세기 말 네덜란드 식문화의 단편,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마치고 둘러앉아 감자를 나눠먹는 서민들의 삶, 그리고 그들과 별반 처지가 다르지 않았을 무명의 빈한한 화가 반 고흐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감자 먹는 사람들, 반 고흐, 1885 [사진=반 고흐 박물관(Van Gogh Museum)]

■ 감자, 그대 이름은 파파, 파타타 혹은 땅속의 사과 = 스페인의 남미 상륙 이전 안데스를 통일한 잉카제국의 공용어 케추아(Quechua)에는 다양한 감자 종을 구분하여 부르는 이름이 수백 개에 이르렀으며, 수많은 감자 종을 통칭하여 파파(papa)라고 불렀다. 안데스 고산지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현재의 농민들 역시 다양한 감자를 모두 구분하여 품종별로 서로 다르게 부르고 있다.

1542년 스페인 제국이 페루 부왕청을 설치하고 남미 식민통치를 본격화한 이후, 스페인 지배세력 역시 파파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다. 오늘날 페루를 포함한 스페인어권 중남미(Hispanoamerica)에서 감자를 파파라고 부르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스페인으로 간 감자는 파타타(patata)로 개명하였고, 포르투갈어와 아랍어 권에서는 바타타(batata)라고 부르게 되었다. 영국으로 간 감자는 모두 알다시피 포테이토(potato)로 불리게 되었다.

스페인에서 감자가 파타타로 불리게 된 것에는 여러 해석이 있으며 가장 흥미로운 주장은 로마 교황과 관련된다. 페루에서 가져간 감자를 스페인 왕실에 처음 소개한 이들은 원산지명 그대로 '파파(papa)'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독실한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의 왕실은 감자를 로마 교황(파파, Papa)의 호칭과 동일하게 부를 경우 교황 모독죄에 해당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결국 16세기 카리브에서 도입된 고구마를 일컫던 바타타(batata)와 파파 두 가지 이름을 혼합하여 파타타를 감자의 새 이름으로 정했다고 알려진다.

흥미롭게도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에서 감자의 이름은 땅속의 사과(earth apple)라는 어원을 갖는다. 프랑스어의 폼드테르(pomme de terre), 독일어의 에르트에펠(erdäpfel) 등 여러 사례가 있다. 다양한 지형과 기후에서 재배 가능하며 풍부한 영양소를 갖춘 감자와 사과의 공통점에서 기원한 이름으로 추정된다. 유럽 식물학자가 지은 감자의 라틴어 학명은 솔라넘 튜버섬(Solanum Tuberosum L.)이며 가지과 덩이줄기 식물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얼핏 감자의 사촌쯤 될 것 같은 고구마에 대해 유럽인들은 ‘단 감자’라는 이름은 붙였는데, 영어의 스위트포테이토(sweet potato), 스페인어의 빠따따둘시(patata dulce) 등이 사례다. 그러나 감자는 덩이줄기식물이며 고구마는 뿌리식물로서 서로 거리가 먼 식물인 점에서 ‘단 감자’는 터무니없는 작명임에 분명하다.

페루 감자 축제 현장 [사진=주페루 대사관, 농업잡지 Revista Agronoticias, Argenpapa]

■ 감자 종주국의 위상, 5800 종의 감자 유전자 =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최대 감자 생산국은 중국, 인도, 우크라이나, 러시아, 미국 순이다. 감자 종주국 페루는 15위인데, 19개 주에서 연간 520만 톤의 감자가 생산된다. 비록 감자 생산량 면에서는 세계의 경제, 인구대국들과 경쟁하기 버거울 테지만, 종의 다양성에 있어 페루의 감자는 대단히 압도적이며 세계 최고다.

실상 16세기 유럽에 전해지고 세계로 퍼져나간 감자 품종은 안데스에서 재배되던 감자 종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유럽인들이 가져간 감자 종들은 안데스라는 호수에서 물 한 컵 떠간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농담도 있다. 3천 종 이상의 감자가 페루 전역에서 재배된다니, 과연 감자 종주국의 위상이 가볍지 않다. 페루 고산지에서 재배되는 상당 수 감자 품종은 특정한 생태환경에서만 생산이 가능하여 안데스 이외 지역에서는 재배할 수 없다고 한다.

페루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맛과 형형색색의 감자를 많이 볼 수 있다. 페루에서 감자는 거의 모든 요리에 식재료로 사용되며, 음식별로 사용되는 감자의 종류도 제각기 다르다. 감자는 ‘남미 음식문화의 수도’ 페루의 미식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 재료인 것이다.

한편, 페루 정부는 2005년부터 5월 30일을 감자의 날로 지정하고 매년 전국의 감자 산지에서 다채로운 감자 축제와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나아가 페루 정부는 지난 수년 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측에 5월 30일을 ‘국제 감자의 날’로 지정해 줄 것을 줄기차게 요청해왔다. 페루의 의도대로 진행된다면, 머지않아 우리 국내의 감자 재배 농가들도 함께 기념하는 국제 감자의 날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감자 분야의 국제기구인 국제감자센터가 1971년 건립되어 감자에 관한 독보적 연구개발 활동을 수행해 오고 있다. 필자는 2022년 3월 센터를 방문했는데, 필자를 맞이한 오르티스(Oscar Ortiz) 소장은 센터의 중점사업인 감자, 고구마, 안데스지역 덩이줄기 작물과 관련된 연구개발 활동을 소개했다.

대화 중에 오르티스 소장은 국제감자센터의 유전자뱅크(Genebank)에는 대부분 안데스가 원산지인 5800 종의 감자 유전자가 보관되어 있으며, 특정한 감자 종이 산지에서 멸종되더라도 유전자를 이용해 복원할 수 있다고 했다. 순간 필자의 미숙한 스페인어로 인해 숫자를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확인할 만큼, 안데스 감자 종의 다양성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역시 페루는 감자의 나라이며 감자의 고향이다.

한국영농신문  agrienews@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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