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경기도가 지난해(2021년) 하반기 시범 실시로 물꼬를 튼 농민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전국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농민기본소득이 고령화, 인구 급감, 노동력 부족 등으로 소멸위기에 처했다는 말까지 나오는 농촌 지자체에 대한 치료약이 될지 응급진통제가 될 지를 놓고 찬반 논란도 가열 중이다. 어느 지역, 특정 직업, 어떤 계층이 더 열악한지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구도를 형성할 수도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그래도 농민기본소득은 몇 해 전부터 꾸준히 정치권과 농촌과 농업계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지자체에서는 농민기본소득에 대한 면밀하고 심도 있는 논의도 이루어진다. 경기도 화성시는 지난달 27일 관내 농민 및 어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화성형 농민기본소득의 추진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화성형 농민기본소득은 소멸위기에 처한 농어촌을 살리기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화성형 농민기본소득’은 농민 뿐 아니라 어민에게까지 기본소득 지급을 확대하자는 것. 그래서 농어업과 농어촌을 지키는 농어민들의 삶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주자는 게 핵심이다. 화성시는 이를 위해 관내 630여 명의 어민에게 기본소득을 확대 지원하기 위해 현행 조례를 개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성형 농민기본소득’의 지급대상은 관내 농어민 2만 5천여 명이다. 화성시에 연속 3년 또는 비연속 합산 10년 이상 거주하는 1년 이상 실제 농어업생산에 종사한 농어민이 대상이라고 화성시는 밝혔다. 농업 외 종합소득이 3700만 원 이상인 사람은 화성형 농민기본소득 대상에서 제외된다. 농가단위가 아닌 개별 농민단위로 1인 월 5만원, 연간 60만원을 화성시 지역화폐로 지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연간 약 160억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 게 화성시의 설명이다.

그런가하면 경기도의회에서는 최근 이런 일도 있었다.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추진한 ‘농민기본소득’의 예산이 감액되면서 도의회가 이를 비판하고 나선 것. 경기도가 도의회에 제출한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따르면 경기도는 약 780억 원 규모였던 농민기본소득 예산을 약 210억 원 감액해 570억 원으로 편성했다. 경기도는 도내 17개 시·군의 24만 5천 명 정도 농민을 대상자로 정했으나, 올해 사업을 실시한 결과 약 6만 7천 명이 자격 미달, 신청 거부 등으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제외된 이들에 대한 예산 210억 원이 감액된 것이다. 당연히 이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수요예측 및 대상자 파악에 좀 더 면밀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 자격미달은 그렇다 치고 신청을 하지 않은 농민들이 왜 미신청했는지 원인부터 파악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한편 김포시에서는 농민기본소득 지급 방식인 ‘김포페이’를 놓고 논란이 불거졌다. 애초 김포시는 농민기본소득 지급대상자로 확정된 9531명에게 지역화폐 김포페이 약 43억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런데 획일적으로 지역화폐만 지급하다보니 지역농협의 농자재센터나 마트 등에서는 사용 자체를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다보니 1만 명에 가까운 농민기본소득 대상자들이 가족들과 식사 정도나 하는 식으로 지역화폐를 사용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22일 경기도의회 제363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 도정 질의·답변을 통해 “우리 사회·경제·교육 등 모든 문제는 기회로 연결되면서 역동성을 의미한다. 더 많은 기회와 더 고른 기회를 만들도록 신경 쓰겠다”며 “이런 측면에서 기회소득 개념을 도입하려 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가치를 창출하지만,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일정 기간 소득 보전의 기회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경기도청]

◇ 경기도가 쏘아올린 농민기본소득 시범제도... 개선점도 속속 노출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첫 삽을 뜬 농민기본소득제도가 경기도내 17개 시.군 지자체에서 시행중인 가운데,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는 ‘기회소득’이라는 개념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재명 전 지사가 전국적인 의제로 급부상시킨 농민기본소득이 김동연 경기도지사에 의해 업그레이드되는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동연 지사의 기회소득은 쉽게 말해 ‘우리 사회에서 가치를 창출하지만 보상은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소득 보전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경기도에서 그 소득에 대해서는 책임진다는 개념이다.

김 지사는 지난 9월 2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문화예술인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이들에게 소득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를 내비쳤다. 당연히 여기에는 농민도 포함될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도지사에 취임할 때부터 저는 ‘기회’를 강조했습니다. 부총리로 공직을 마무리하고 2년 넘게 전국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 겪는 어려움이 기회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 많은 기회가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높이고, 더 고른 기회가 양극화를 줄여 포용과 상생의 공동체로 나가는 길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문화예술인의 경우 예술창작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만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소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창작활동을 지속하는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일정 기간 소득을 제공해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기회소득’입니다. 문화예술인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도민에게 ‘기회소득’을 제공하겠습니다. 그 구체적인 개념 정립과 방향 설정을 위한 연구용역도 진행할 것입니다.” 

이 같은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기회소득’개념은 이재명 전 지사의 기본소득과는 범위와 색깔이 다소 차이가 있다. 기본소득이 무조건적, 보편적이라면 기회소득은 조건적(조건부), 선별적 지급에 가깝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가치 활동을 평가해 보상하겠다는 취지다. 김 지사의 이 같은 언급에 경기도는 ‘기회소득’ 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해 우선 연구용역을 진행한다는 계획인데, 일단 기회소득에 대한 개념 정립과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경기도는 차기 추경예산에 ‘예술인 기회소득 정책연구용역’ 예산 5천만 원을 반영해서 내년까지는 지원 대상과 규모를 정한다는 계획이다.

농민기본소득 입법촉구대회가 허영 국회의원과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주최로 9월 20일 국회의원회관 7간담회실에서 열렸다. [사진=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 이재명의 기본소득, 김동연의 기회소득... 방향ㆍ범위 확정 진행 중

이렇듯 농민기본소득에 대한 논의 및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를 아예 국가차원에서 법제화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와 허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월 20일 국회에서 ‘농민기본소득 입법촉구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참석 농민단체들은 이구동성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농민기본소득법」(허영 의원 대표발의)’발의안의 조속 통과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우리의 먹거리와 생명을 책임지는 농업이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정책은 매우 느슨하고 별로 효과가 없었다. 우리의 농업과 농촌이 죽어가고 있다... (중략) 가장 확실하고 근본적인 대안은 농민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할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한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는 이를 위하여 오늘부터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농민기본소득법안 취지를 알리고 공동발의를 요청하는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긴급하고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한 우리 농업농촌의 미래를 위하여 법 제정에 필요한 행동을 전국에서 추진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이날 농민기본소득 입법촉구대회에 이름을 올린 단체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녹색평론, 한살림연합, 불교환경연대, 감리교농촌선교훈련원, 농촌목회자연대농촌기본소득특위,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로컬푸드전국네트워크,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식생활교육네트워크, 기본소득당, 녹색당농업먹거리특별위원회, 정의당농어민위원회,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경기참여농정포럼, 두레생산자회, 화천귀농학교, 정치경제연구소대안, 두레생협연합회, 행복중심생협연합회, 한국YWCA연합회 등이다.

하지만 어떤 정책이든 시작 전후에 반론은 존재한다. 농민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들은 그 이유로 “농민뿐 아니라 다른 직업군에서도 기본소득제도 도입을 요구할 것이다. 모든 직업군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다. 국가 재정이 파탄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반대 입장을 펼치고 있다. 향후 제기될 형평성 문제를 미리 우려하고 있는 것. 실제로 예술인 단체에서도 ‘예술인 기본소득제’를, 노동계에서는 ‘노동자 기본소득제’의 입법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있는 게 사실이다. 반대 입장은 아니지만 보다 정교한 개념정립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농촌'기본소득인가, ‘농민'기본소득인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바야흐로 기본소득 제도가 전 국민적 의제로 떠올랐다. 재난기본소득 지급과 함께 농민기본소득이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된 지금이 바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때다. 보다 심도 있고 미래지향적인 논의가 선행되어야함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핀란드와 스페인 등 기본소득 관련 성공, 실패 사례들도 참고해 치밀한 정책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처럼,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치열하게 고민해 볼 일이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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