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한 나그네가 있다. 산 넘고 물 건너서 길을 걷다가 이내 목이 말랐다. 냇물도 우물도 없다. 지닌 물도 없다. 더구나 산중이다. 마침 언덕 저편에 무 비슷한 게 고랑을 이루며 심어져 있다. 무라도 씹으면 갈증이 가실까 싶어 하나를 뽑아 대충 흙을 털어내고 한입 가득 베어 문다. 그런데 맛을 보니 무가 아니다. 쌉싸래하게 입 안 가득 퍼지는 향을 보니 이건 인삼. 아! 여기가 바로 인삼의 고장 00였구나! 나그네, 인삼으로 목을 적시고 다시 길을 떠난다.

인삼으로 유명한 어느 지역에 귀농해서 살아가는 지인이 들려준 얘기인데, 그가 사는 고장에선 인삼이 그만큼 흔하다는 걸 이렇듯 이야기로 표현한다고 했다. 듣는 이들의 귀가 솔깃해지는 모습에 자신도 타지 사람을 만나면 늘 이 얘기를 꺼낸다고도 했다. 재밌다.

그런데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건강에 좋은 인삼이 사방 도처에 그리 흔하니 부러워해도 된다는 말도 될 테지만, 그만큼 흔하니까 인삼값이 무척 싸서 고민일 거라는 추측할 수도 있다. 요즘 인기리에 방송중인 드라마 지리산, 바로 우리나라 지리산에서 중국 진시황이 귀하디귀한 불로초( 또는 산삼)을 찾아 소중히 여기며 먹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옛날 옛적 이야기일 뿐. 진시황 불로초 발굴 스토리를 요즘 버전으로 해석하면, 아마도 이렇게 변할 듯 싶다. “불로초(산삼)을 찾은 진시황은 지리산에 너무도 흔한 이 약초가 정말 약효가 있긴 할까라고 의심했고, 마침내 이렇듯 흔한 게 무슨 불로초일까 싶어 이를 멀리하게 된다. 그리고 진시황은 다시 사신 수백 명을 인근 국가에 파견해 새로운 불로초를 찾으라 명하기에 이르렀다.”

지인이 들려준 얘기와 진시황 스토리를 합해놓고 보면, 불로초나 산삼의 농가재배 버전인 대한민국 인삼의 현 상황이 들여다보이지 않는가? 정말이다. 매우 흡사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최근엔 인삼값 하락 여파를 극복해야 한다는 뉴스가 자주 언론에 등장한다. 누군가는 폭락이라고도 말하는데, 그래서인지 충청도의 한 인삼밭에서는 애써 키운 인삼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이른바 ‘산지 폐기’가 진행돼 방송 전파를 탔다. 인삼값이 폭락해 키울수록 손해만 보니까 아예 인삼을 폐기해버리는 것이다.

올해 인삼 10뿌리 도매 가격이 1만 3천 원 선인데, 코로나 직전인 2년 전만 하더라도 약 2만 7천 원 선에 팔렸다. 사실상 50% 이상 폭락했다. [사진=픽사베이]

◇ 인삼가격 폭락... 공급조절· 신제품 개발· 마케팅으로 장기적 목표 세워야

얼마나 인삼값이 떨어졌으면 자식 같은 인삼을 갈아엎는 걸까? 대략만 살펴봐도 인삼값은 예년에 비해 반토막이 난 상태. 올해 인삼 10뿌리 도매 가격이 1만 3천 원 선인데, 코로나 직전인 2년 전만 하더라도 약 2만 7천 원 선에 팔렸다. 사실상 50% 이상 폭락했다. 부랴부랴 농식품부는 문제의 원인을 ‘공급과잉’으로 규정하고 수매를 늘려서라도 인삼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입장. 하지만 인삼 가격 하락의 주요 원인을 진단하는 정부와 농민들의 시각이 달라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상황.

그렇다면 인삼값 하락, 아니 폭락의 원인은 대체 뭘까? 전문가들은 대개 ▲코로나19로 인한 전반적인 소비 위축, ▲면세점 운영 중단에 따른 선물용 홍삼판매 급락, ▲공급 과잉 등 3가지를 원인으로 꼽는다. 첫째, 두번째 이유를 빼고 맨 마지막 공급과잉 만으로 인삼값의 현 상태를 진단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래도 인삼업계 전체와 인삼 재배농가 양측의 윈-윈을 위해서라도 재배량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나름의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어려울 땐 생산을 좀 줄여서라도 서로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은 피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대표적인 우리나라 인삼 브랜드인 금산과 진안 쪽 사람들은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금산의 인삼농협 조합장은 산지 인삼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지 않아 제품 개발, 생산, 마케팅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인삼농협들이 힘을 합쳐 공동으로 홍삼제품을 개발, 마케팅을 펼쳐야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국적으로 산재한 인삼 가공공장을 통폐합해서라도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전국에 있는 인삼농협은 현재 약 10여 개. 정관장이라는 국가 주도의 브랜드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마치 아류제품 또는 유사품이라는 이미지도 형성되어 있다는 게 현지 인삼농가들의 푸념이다.

진안은 사정이 좀 나을까? 사정은 피차일반이지만, 진안은 최근 홍삼과 곤충을 활용해 유망한 건강기능성식품을 개발, 전국적으로 판매해 지역 일자리 창출과 공동체 활력을 추진한다는 야심찬 밑그림을 그렸다. 진안군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 명품홍삼 집적화단지를 조성해서 홍삼의 생산, 가공, 유통, 판매, 홍보 등을 집중화하기로 했다. 홍삼브랜드 가치 상승을 위한 먼 안목의 투자를 실행중인 것이다. 전춘성 진안군수는 "진안군은 농식품부 농촌신활력플러스 70억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홍삼과 곤충을 결합한 건강식품육성을 통해 홍삼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킬 계기를 마련 중“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진안군 신활력플러스 추진단의 책임자 성기상 추진단장도 마찬가지. 인삼시장의 불황을 오히려 진안 인삼 생태계와 전국적인 인삼 시장을 잇는 기회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진안을 중심으로 거대한 인삼산업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것.

성기상 단장은 “ 현재 전국의 인삼산업, 특히 인삼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인삼을 홍삼으로 변모시켜 약효나 부가가치를 급상승시킨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현대화해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인삼, 홍삼, 곤충, 약용작물을 결합해 새로운 건강기능성식품을 생산해 포지셔닝한다는 발상은 진안 뿐 아니라 우리 인삼 농가 전체를 견인할 수 있는 발상일 수 있다”고 역설한다. 성 단장은 또 “인삼 생산지역의 자체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실질적 판매량 증가는 여러 요소들의 시너지를 기대해야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새로운 상품개발과 마케팅에 집중하는 게 급선무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정부는 2019년 말 혁신성장전략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표방한 ‘5대 유망식품 집중 육성’이라는 식품산업 발전 계획을 추진 중이다. 정부의 이런 방침은 식품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미래 유망 식품분야를 적극적으로 발굴ㆍ육성해 식품산업을 견인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사진은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기획재정부]

◇ 기능성 강조 마케팅 강화, 수출 다각화, 판매 촉진 등 정부 역할 대두

정부도 금산군과 진안군의 이런 노력들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농식품부는 인삼과 누에 등 곤충식품의 해외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해 인삼과 누에의 기능성 성분의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마케팅 활동을 지원하기로 했다. 기능성식품 수출지원단도 구성했다. 코로나19를 살아가며 사람들의 건강과 면역에 대한 관심 증가가 기능성식품 시장의 확대개편과 수출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판매를 돕는 이벤트에도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강화인삼농협, 농협경제지주(인삼특작부)와 국내대형마트 이마트는 최근 강화도 6년근 세척인삼 11톤을 20%가량 할인해 판매하는 행사를 벌였다. 이들은 인삼이 최근 수요 감소와 공급 과잉으로 재고가 쌓이는 상황을 타개하는데 할인행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또한 정부는 민간 수매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가격 안정을 위해서인데, 민간 수매 물량을 기존 약 5800톤에서 약 1600톤을 추가해 7200톤으로 늘린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농협, 인삼공사(KGC) 등이 모두 나섰다.

인삼 유통으로 유명한 충남 금산군과 경북 영주시의 전통시장 5곳에서도 비슷한 행사가 열린다. 오는 11월까지 약 60억원 가량의 인삼을 20~30% 할인해 판매하는 이벤트를 열고 있다. 서울의 하나로마트(양재점, 창동점, 고양점, 성남점, 용인점)에서도 햇수삼 할인 행사를 연다.

정부는 또한 구조적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삼경작신고의무제’ 등을 도입하기로 했다. 생산자가 생산 면적을 조절해 자율적인 수급조절체계를 갖추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2일 ‘2021년 수확기 인삼 수급 안정 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발표한 수급안정 대책의 주요 골자는 농협과 인삼공사를 통한 민간 수매를 확대하고, 다양한 판촉행사를 통해 인삼 소비를 늘린다는 것이다. 수급과 관련해서는 수급 불균형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2년부터 경작신고 의무제를 도입해 단계적으로 재배 면적 감축을 추진해나간다는 방침.

이 시점에서 정부든 인삼재배농가든 모두 기억해야할 게 있다. 바로 정부는 2019년 말 혁신성장전략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표방한 ‘5대 유망식품 집중 육성’이라는 식품산업 발전 계획이다. 정부의 이런 방침은 식품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미래 유망 식품분야를 적극적으로 발굴ㆍ육성해 식품산업을 견인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정부 선정 5대 유망식품분야는 ▲맞춤형ㆍ특수식품 (메디푸드(Medi-Food), 고령친화식품, 대체식품) ▲기능성 식품, ▲간편식품, ▲친환경 식품, ▲수출 식품 등이다.

인삼이든 다른 약용작물이든 주목해야 될 점이 바로 이런 5대 유망식품분야의 성장세일 것이다. 이런 분야를 타깃으로 삼아 신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할 계획을 세워나가는 노력이 공급조절 보다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농식품부가 추진중인 ‘인삼경작신고의무제’가 한 치 앞만 보고 급한 불만 끄자는 식의 정책이 아니길 바란다. 지금이야말로 인삼을 비롯한 약용, 특용작물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때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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