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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부의 기원, 용병과 시계와 은행사업 성공의 핵심은 신뢰와 고부가가치... 한국산 농산물의 평판 돌아볼 때

[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스위스는 남한의 41% 면적에 인구가 850만 명에 불과하지만 2019년 기준 1인당 명목 GDP는 8만 3716달러로 세계 2위다. 알프스의 나라라는 명성답게 산지가 70%가 넘는다. 호수도 많다. 농사를 지을 땅이 별로 없다. 지금이야 세계 최고 부자나라지만 경작지의 크기가 국력의 척도였던 근대 이전에는 가난한 나라였다. 그래서 스위스 남자들은 용병으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먹고 살게 딱히 없던 스위스 사람들에겐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다.

‘전장으로 나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라이스로이퍼(Reisläufer)’로 불렸던 이들은 1315년 모르가르텐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를 상대를 승리하고 독립을 쟁취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 후 주로 프랑스에 의해 고용되며 여러 전투에서 맹위를 떨쳤다.

알프스를 넘는 스위스 용병 [사진=위키피디아]

스위스 용병의 명성은 '신뢰'에서 나왔다. 그들은 고용주를 배신하거나 도망치는 법이 없었다. 파이크(Pike, 긴 창)과 핼버드(Halberd, 도끼 창)를 든 스위스 용병은 전투가 벌어지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맡은 일은 최후의 한 사람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키려고 노력했다. 이들의 용맹함과 충성심에 대한 대표적 사례가 프랑스 혁명기에 있었던 루이 16세 사수 전투다. 

1792년 4월 프랑스 혁명이 자국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연합군은 프랑스를 침공한다. 프랑스 혁명 전쟁이 발발한 것. 당시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 마리앙트와네트가 적국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파리에서부터 왕과 왕비를 처단하자는 민중봉기가 시작되었다. 8월 10일 수만 명의 파리 시민들은 루이 16세 일가가 머무르고 있는 튈르리궁으로 쳐들어갔다. 국왕의 직속 근위대조차 모두 도주한 상황에서 루이16세는 스위스 용병들에게 “임무를 다했으니 가도 좋다”는 명을 내린다. 혁명군과 군중들도 이들에 대한 원한이 없었으므로 도망치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스위스 용병 786명은 끝까지 남아 튈르리 궁과 고객인 왕과 왕비를 지켰고 결국 전원 전사했다.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빈사의 사자상>은 이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바위 절벽 가운데  만들어진 가로 10미터, 세로 6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의 작품으로 1820년 덴마크의 조각가인 베르텔 토르발센이 설계하고 루카스 아호른이 조각해 만들었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 조각상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 조각상은 심장을 창으로 찔려 죽어가는 사자가 부르봉 왕조의 백합 문양이 새겨진 방패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사자는 스위스 용병들을 상징한다. 죽어가면서도 고용주인 프랑스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용맹한 스위스 병사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처연하기 그지없다.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빈사의 사자상' [사진=픽사베이]

왜 스위스 용병은 전멸의 위기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죽음을 맞았을까? 튈르리 전투에서 전사한 한 병사의 품에서 나왔다는 편지에 그 힌트가 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신용을 잃으면 후손들은 영원히 용병이 될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약을 지키기로 했다" 알프스 산지로 둘러싸인 빈국 스위스의 남자들에게는 용병 외에는 생계를 꾸려나갈 방도가 없었다. 아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는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신뢰를 지켰다. 그들이 남긴 유산 ‘신뢰’는 후일 부국 스위스가 되는 ‘자산’이 됐다. 고객과 맺은 계약은 절대 어기지 않는다는 평판, 그것은 스위스 경제의 원동력이다. 

스위스가 금융 강국이 된 바탕에도 이러한 ‘신뢰’ 자산이 자리 잡고 있다. 스위스에는 UBS, 크레디트 스위스 등 세계적 금융회사들이 있는데, 누구에게도 고객의 금융 정보를 누설하지 않는다는 ‘은행 비밀주의’로 유명하다. 스위스는 1934년 은행이 고객의 정보를 공개할 경우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의 금융비밀주의를 도입하기도 했다. 금융기관들은 임의 번호로 관리되고 계좌 소유자나 명의인이 표시되지 않는 익명의 숫자로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이점 때문에 고객의 정보가 누출될 염려가 적어 세계 부호들이 애용하고 있다. 그래서 자주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범죄자의 막대한 돈이 스위스 비밀금고에 예치되어 있다는 식으로. 

실제로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의 자금이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것을 확인한 미국은 폭격을 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영국은 왕실의 자금도 스위스 은행에 있다며 공격을 반대해 무산되기도도 했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는 세계 각국의 자금을 스위스 자국 내로 끌어들였다. 영세중립국이기 때문에 세계무역기구(WTO), 국제노동기구(ILO),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들은 본부를 스위스에 두고 있다. 스위스는 세계에서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지역으로 꼽힌다. 세계 각국의 돈과 사람이 스위스를 든든히 지켜주는 용병이 되고 있는 셈이다.

스위스 국립은행 [사진=픽사베이]


스위스 금융업의 시작은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루이 14세 때부터다. 1685년 왕권강화를 추구하던 루이 14세가 ‘퐁텐블로칙령’을 내려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 ‘낭트칙령’을 무효화했다. 그러자 프랑스 신교도 ‘위그노’ 들은 구교의 박해가 되풀이될 것을 염려해 다수가 스위스 등 신교를 허용한 나라로 건너갔다. 구체제에 대항하고 신교를 믿는 프랑스의 위그노들은 교육수준이 높았다. 상인, 기술자 등 전문지식을 갖고 있어서 경제적 여유도 있었다. 퐁텐블로칙령으로 신교 박해라는 구체제가 회귀하자 이들이 스위스 등 신교를 보장하는 나라로 떠나는 건 당연했다. 프랑스판 두뇌유출이었다. 

스위스로 옮겨간 위그노 중에는 보석 가공 기술자들도 있었다. 칼뱅의 금욕주의로 장신구 착용이 금지되자 이들은 시계 제조로 방향을 바꿨다. 스위스 시계산업의 기원도 여기서 시작된다. 예배시간을 맞추기 위해 시계는 꼭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크기는 작지만 가격도 비싸게 받을 수 있었다. 스위스의 장인들이 만든 시계는 유럽 각국으로 불티나게 팔렸다. 이렇게 스위스 산업의 특징인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전통이 세워졌다. 

스위스는 금융업 외에도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이 세계 정상급이다. 우선, 로슈, 노바티스 등의 유명 제약회사가 스위스 기업이다. 세계적인 식품회사인 네슬레, 마우스·키보드로 유명한 로지텍,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독일의 지멘스와 함께 세계 3대 엔지니어링 회사로 꼽히는 ABB도 대표적인 스위스 기업이다. 지난 2018년 중국 화공그룹에게 인수된 종자회사 신젠타도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일명 맥가이버 칼이라고 불리는 빅토리아 녹스의 스위스 칼과 롤렉스·오메가와 같은 명품 시계도 스위스 브랜드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시계 브랜드 '롤렉스' [사진=픽사베이]

스위스 생 갈(St. Gallen) 대학교 조사결과에 따르면, 스위스 라벨이 부착된 농산물에는 가격이 약 20% 오르고, 명품에는 50%의 프리미엄이 붙는다고 한다. 스위스라는 국가 브랜드가 상품의 가치를 더욱 올려준다는 방증이다. 이는 스위스가 만든 제품은 안심하고 쓸 수 있다는 믿음 즉 ‘신뢰’의 자산에 근거한다. 유럽의 빈국 스위스 용병들이 피로 지켜냈던 고객과의 약속이 금융업을 키우고 제조업을 성장시킨 바탕이 됐다. 작지만 강한 나라, 스위스의 힘이다.

스위스의 힘은 선택과 집중에 있다.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골라 역량을 집중했다. 강소국 스위스의 길을, 우리 농업도 배울 필요가 있다. 최근 케이 팝 등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대한민국의 브랜드 파워가 크게 성장했다. 여기에 안심하고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우리 농업도 비약적으로 성장할 여지가 있다. 

대규모 플랜테이션이나 공장식 축산은 미국과 호주 같은 농업 강국에서 가능한 일이다. 반면, 우리는 ‘샤인머스켓‘ 포도, ‘설향’ 딸기처럼 고가로 팔리는 경박단소한 품목을 발굴해 집중 육성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덕분에 케이 푸드가 동남아와 미국을 중심으로 수출이 크게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산 농산물이 세계 시장에게 어떤 평판을 받고 있는지 냉정히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스위스 브랜드의 프리미엄은 수 백년 전 유럽 각지를 누비던 용병들이 쌓기 시작한 ‘신뢰‘ 자산에 기반하고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먹거리, 우리 농식품 산업의 숙제임은 분명하다.

바티칸 교황청의 스위스 근위병 [사진=픽사베이]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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