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처음에는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이 채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이건 무슨 말인가? 또 누가 한 말일까? 정답은 바로 울산광역시 교육청 관계자가 한 말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웬 채식급식?

울산교육청은 지난해부터 격주로 시행 중인 ‘고기 없는 월요일’을 올해부터는 매주 하고 있다. 교내 채식 관련 동아리 운영도 장려하고 가을엔 ‘지구사랑 채식요리축제’도 열 예정이다. “세상을 위해 음식을 먹을 때, 우린 더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점심..채식 고(Go)?” 이런 말을 학교에서 자주 듣고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울산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는 지난해 7월 전국 시·도교육감들이 ‘기후위기·환경재난 시대, 교육의 대전환을 위한 비상선언’을 통해 학교 환경교육을 강화하겠노라고 한 것과 맥이 이어진다. 전국 17명의 교육감들은 ▲기후위기 대응교육,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지혜, ▲학교와 교육청에서 시작할 수 있는 온실가스 감축 방안 모색, ▲다가치(민주, 인권, 평화, 환경 등)의 내면화를 통해 지구공동체의 생태시민으로서 성장하도록 학생들을 교육하겠다고 다짐했다. 좋은 뜻과 벅찬 다짐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엔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 급식에서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학생과 학부모 24명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기자회견장에는 녹색당, 녹색연합, 전쟁없는세상, 서울애니멀세이브, 카라, 서울시립대학교 비거니즘 동아리, 청주교대 동물권 모임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학교급식법 시행규칙 제5조 제2항에 채식을 하는 학생을 위한 내용이 없으므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녹색당은 “채식지향은 동물을 착취하지 않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기후 위기 대응 실천이며, 채식 선택권 보장은 양심의 자유, 자기 결정권, 건강권, 평등권, 환경권 등과 연결돼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국방부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따르면 국방부는 2019년 말 채식주의자 장병을 위한 급식지원 관련 규정을 새로 만들고, 2020년 급식방침에 처음 반영했다고 밝혔다. 이는 채식주의자 장병등이 식사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 부대 여건을 고려해 밥과 김, 채소, 과일, 두부 등 대체품목을 매끼 제공하는 내용이다. 우유 대신 두유를 지급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격세지감이다.

울산여고의 '고기없는 날'의 채식 급식 [사진=울산여고]

◇ “채식은 당연한 권리”... 녹색당, 채식선택권 헌법소원 제기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아니 실제로는 외국 특히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게 정설이다. 프랑스는 ‘식품법’이라 불리는 ‘에갈림 법안’이란 게 있다. 이 법안에 따라 지난 2019년 11월부터 모든 학교에서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채식 급식을 의무화했다. 육식은 물론 생선과 해산물도 배제된다. 그러다보니 젊은 층의 채식 선호도가 높다는 새로운 사실도 발견하는 성과도 있었다.

그린피스, 전국학부모협회 AFCP, 프랑스채식협회 등 3개의 시민단체연합는 '녹색급식(cantineverte.fr)'이란 이름의 사이트도 운영중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급식에 동물단백질과 육류를 늘려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된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파리 무역관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위생 및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트렌드가 오래 지속될 상황에서 채식과 발효식품 위주의 한국음식 마케팅이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건강한 이미지를 지닌 된장, 간장, 두부, 곡류 등의 식품군을 중심으로 프랑스 급식시장을 두드려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뿌려먹는 ‘김치 시즈닝’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천교육청은 지난 3월부터 채식 선택급식을 도입해서 모든 초중고교가 월 2회 학교급식 채식여행 (V.T.S DAY, Vegetarian Trip of School meal)을 실시하고 있다. 인천교육청 관계자는 ‘채식의 날’보다 친근감이 강한 ‘학교급식의 채식여행’이라는 문구에 대한 호응도 역시 높다고 덧붙였다.

경남교육청은 오는 9월부터 채식급식을 시행한다. 채식급식 확대 정책숙의 공론화추진단은 지난해 9월 ‘기후위기·환경재난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채식급식의 확대’로 선정된 의제에 대해 5개월간 숙의 과정을 거쳤다. ▲교육공동체의 인식 전환을 위한 기반 조성 필요 ▲기후 환경교육과 연계한 교육 병행 ▲채식 형태는 곡류, 과일, 채소, 해조류, 달걀, 우유, 생선을 섭취하는 '페스코(Pesco)' 제시 ▲횟수는 월 1회 이상으로 하며 학교별 민주적 의사 결정에 따라 확대 가능함 등의 항목을 도출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전국 지방의회 최초로 ‘채식 조례’를 제정했다. 이는 채식급식을 제도화하려는 것. 조례에는 서울시장이 채식생활 실천을 위해 공공기관, 기업체 급식소, 교육기관 등에서 채식의 날을 지정해 운영하도록 권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서울 초·중·고 학생들이 이달부터 한 달에 두 차례 채식 급식을 제공받는다. 23개교에서는 ‘채식 선택제’를 시범 운영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4월초 이런 내용을 담은 ‘2021 SOS! 그린 급식 활성화 기본계획’(그린 급식 계획)을 수립해 9일부터 일선 학교에서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그린 급식 계획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채식 급식 추진을 위해 마련됐다.

제주도에서는 시민사회가 채식 급식을 지원 조례 제정 운동에 나서고 있다. 제주도내 12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기후위기 대응, 채식급식 지원 조례 제·개정을 위한 추진위원회’(가칭)는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발족식을 열고, 관내 초중고교의 주1회 완전 채식 급식, 채식선택권 보장 등을 담은 조례 제·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파리 무역관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위생 및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트렌드가 오래 지속될 상황에서 채식과 발효식품 위주의 한국음식 마케팅이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 프랑스 '식품법', 일주일에 한번 채식급식 의무화... 우리나라 지자체도 나서

지난해 2020년 415총선에서 정의당과 녹색당은 총선 공약으로 채식급식을 이슈화했다. 동물복지와 환경보호를 위해 채식을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 국민의 1인당 육류소비량(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이 지난 2013년 기준 42.7㎏이며, 유엔식량농업기구 자료를 보면 축산업이 전세계 온실가스의 18%를 차지하므로 채식을 권장할만 하다는 것이었다.

정의당은 '동물복지주간 운영 및 육류 소비 감축'을 앞세우며 1년에 1주는 동물복지주간으로 지정하고 이 기간에는 채식주의자를 위해 지역 내 요식업계와 연계해서 채식 메뉴 판매를 활성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지역 내 공공기관은 월 2회 이상 고기 없는 채식 식단을 제공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채식 학교 급식 확대, 우유 대신 두유 선택권 부여 등등도 공약 리스트에 올렸다.

녹색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물을 산 채로 조리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동물권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녹색당은 낙지, 오징어, 문어 등의 두족류나 새우, 게, 랍스터 같은 생물들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진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엄연히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청소년 시기가 한창 육류 단백질을 섭취할 나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채식급식 의무화는 동물만 생각하고 사람은 배려하지 않는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환경 보호의 역설로 아보카도 재배를 예로 들기도 한다. 아보카도 열매 하나를 재배하기 위해 물 320리터가 필요하고, 이 때문에 칠레의 물 부족현상이 나타날 정도라는 자료를 언급한다. 또한 일부 조직에서는 채식을 지금 당장 법으로 강제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문화 운동이나 캠페인 등에 맡기자는 주장도 펼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의 ‘그린급식의 날’ 계획을 놓고 축산농가들이 반발했다. 축산농가들이 반발한 포인트는 바로 제도 도입의 배경 부분. 서울시교육청이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지나친 육식 위주 식습관이 기후위기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축산농가들은 “정확한 근거도 없이 축산업을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매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서울시교육청을 성토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축산업은 범죄행위‘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거 아니냐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귀농귀촌으로 농촌살리기와 농업살리기에 나설 것이냐는 질타도 쏟아져 나왔다.

◇ 반론도 팽팽 “‘축산업=기후변화 주범‘이란 식의 과격 주장 삼가야”

반론에 대한 근거 자료 역시 정확한 통계가 나와있다. 실제 환경부가 지난해 발표한 ‘분야별 국내 온실가스 배출 비중’을 보면, 에너지(86.9%)와 산업공정(7.8%)이 2018년 기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9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축산분야에서 발생한 온실가스는 1.3%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축산업계의 주장이다. 미국 등 해외에서 조사한 결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는 기후변화를 막기위한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는 세계 최초로 학교 교육과정에 기후변화 교육을 의무화했다. 필리핀도 '환경을 위한 졸업유산법'을 제정해 초중고교 뿐 아니라 대학교까지 모든 학생들이 졸업 전에 의무적으로 10그루의 나무를 심도록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이제 막 채식급식 의무화 시도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 아닐까? 채식급식 확산이 인간과 자연, 축산과 친환경농업 모두를 위한 윈-윈의 첫걸음이 아닐까? 마음을 활짝 열고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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