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농민을 우선하라! 도시민과 소비자만 우대하는 정부대책이 웬말이냐?”

축산관련단체협의회(이하 축단협)에서 정부의 장마피해 대책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축단협은 지난 12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어려움에 처한 농민을 보듬는 현실적 대책부터 먼저 발표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라며 “(도시민들의) 농산물 수급부터 챙기는 농림축산식품부의 태도에 절망한다”고 비판했다.

축단협의 주장은 한마디로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는 뜻이다. 왜 농민들의 피해는 뒷전이고 도시민들의 농산물 수급부터 챙기느냐는 거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라는 영화제목처럼 ‘농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심정이 성명으로 폭발한 거다. 이들은 또 “재난상황에서 농민과 농업의 피해 수습안이 주무부처(농식품부)에서 조차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현실”이라며 , “수해로 속 타는 농심(農心)을 헤아릴 줄 아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되길 호소한다”고 주문했다. 축단협은 또 장마와 태풍 등으로 인한 농업 부문의 피해에 대해 정부의 농업재해복구비 지원기준이 너무 까다롭다고 지적했다. 실질적인 지원단가가 너무 낮아 정부 지원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꼬집었다.

그런데 이게 비단 축단협만의 입장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축산농가 뿐 아니라 과수재배농가, 채소재배농가 등등 대한민국의 모든 농가들의 입장을 축단협이 대신한 것일 게다. 이번 장마 피해 현황을 보면 농민들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지난 11일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침수·낙과·유실·매몰 피해 농경지는 총 2만 7466ha로 집계됐다.

농도로 알려진 전라북도가 8846ha로 피해면적이 가장 넓었다. 그 뒤를 이어 전남이 7260ha의 피해를 입었다. 이밖에도 충남(3561ha), 경기(2571ha), 충북(2244ha), 광주(1220ha)의 순서로 피해면적이 집계됐다. 작물별로는 벼의 침수 면적이 2만 2138ha, 채소가 1543ha, 밭작물이 930ha, 논콩이 292ha로 나타났다. 가축피해는 한우 폐사 370마리, 돼지 폐사 5975마리 등 총 151만 3천 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수확을 앞둔 과수농가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지난 11일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침수·낙과·유실·매몰 피해 농경지는 총 2만 7466ha로 집계됐다. 사진은 호우 피해 농가에서 피해 복구를 돕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직원들 [사진=한국농어촌공사]

◇ 축단협, 농민 피해보다 도시 농산물 수급만 걱정하는 세태 정면 비판

지자체 중에서는 전남이 먼저 농민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한 이개호 의원(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은 “전남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라. 그리고 수해 복구를 위한 제4차 추경예산을 편성하라”고 지난 10일 목소리를 높였다.

이개호 의원의 주장대로 전남은 담양, 곡성을 비롯한 전남 전역에서 산사태 등으로 인한 사망 및 실종이 다수 발생했고, 3천명에 가까운 이재민이 생겨난 곳이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도 성명서를 발표하고,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빠르게 진행할 것과 피해 인접 시군을 묶어 광역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경기 안성, 강원 철원, 충북 충주·제천·음성, 충남 천안·아산 등 7개 시군을 비롯한 다른 피해지역도 추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또한 “재난 복구에 군 인력과 장비까지 모든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달라” 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는 “피해 복구의 핵심은 속도”라며 “예비비와 재난재해기금 등을 사용해 추가 피해를 막아 달라”고 말했다. 문대통령은 또 재난지원금의 상향 검토를 빠르게 추진할 것도 당부했다.

그런데 앞서 축단협이 농민을 등한시하는 태도를 문제삼아 정면 비판했던 농식품부의 집중호우 피해 대책은 다음과 같다. ‘▲농산물 수급안정 비상 TF’를 구성하고, ▲농산물 수급안정에 만전을 기하고, ▲집중호우가 끝나면 인력과 장비를 최대한 동원, 농작물 병해충 방제에 나설 것.‘ 

이쯤 되면 축단협의 주장이 맞는 것 같다. 어디에도 농민과 농촌을 위하는 대목은 없다. 정작 사람(농민)은 사라지고 물건(농산물)만 존재하는 대책 아닌 대책. 이건 농식품부의 단순 실수일까 아니면 오랜 세월 학습으로 고착화된 엇나간 태도일까?

◇ 농식품부의 안이한 대책...文대통령 나서 ‘재난지원금 상향 검토’ 당부

지난 5일 국회에서는 눈길을 끄는 토론회가 열렸다. ‘농작물 자연재해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 라는 토론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날 토론회의 핵심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농작물 재해보험을 손질하자’라는 것이다. 재해로 동일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여러 조건들 때문에 피해액 산정도 다르고 보험료도 달라지는 문제 등을 시정하자는 취지다.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들은 ▲재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자. 관련 기본법 개정이 필요하다, ▲ 실질적 피해보상을 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자, ▲ 농작물재해보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제도를 개선하자 등이었다.

실제로 농촌에서는 농작물재해보험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은 농가들이 많다. 그래서 가입률도 그리 높지 않은 실정.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전체 53개 품목 중 하나라도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한 농가는 40% 정도다. 

이번 장마에서 유독 뉴스 화면에 자주 등장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가축인 소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소의 경우 가축재해보험 가입률은 10%를 조금 넘는 수준. 그나마 닭의 경우가 89.5%로 비교적 높지만 지난해의 98%에 비하면 줄어든 수치다. 

농작물재해보험을 운영하는 NH농협손해보험에는 지난 11일 총 3만 5천 건 정도의 신고가 접수됐다. 농작물재해보험은 농림축산식품부 주관으로 NH농협이 운영하는 정책보험상품인데, 말 그대로 태풍·가뭄 등 자연재해 피해를 중심으로 보상해주는 보험상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경기 안성, 강원 철원, 충북 충주·제천·음성, 충남 천안·아산 등 7개 시군을 비롯한 다른 피해지역도 추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달라고 당부했다. [사진=청와대]

◇ 재해보험의 한계 뚜렷해 근본 대책 필요... 농민 피해 실질 보상위한 재설계 시급

정부는 이번 수해 피해 복구를 위해 추경 편성 보다는 재난지원금 상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문 대통령이 언급했던 대로 재난지원금을 종전 대비 2배로 높여 지급하기로 했다. 4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보류하고 이미 마련되어있는 예비비를 수해 피해지원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청협의회에서 결정된 재난지원금 상향 지급 내용은 사망 시 지급 지원금은 1천만원에서 2천만 원으로, 침수피해 지원금도 1백만 원에서 2백만 원으로 인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민주당 측은 이번 집중호우 피해의 조속한 복구를 위해 사용가능한 모든 재원을 최대한 동원해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도 다각적인 대응책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현재 준비되어 있는 예비비는 중앙정부 3조원, 지방정부의 재난관리기금·구호기금 등 2조 4천억 원 정도다.

한편 농협은 전국 하나로마트 2300개소에서 '호우피해 농산물 팔아주기' 행사를 열어 농가를 지원하고 있다. 각계각층의 구호 성금도 답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농민의 시름을 덜어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실질적인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정부는 ‘실질’이란 말을 특히나 새겨야만 할 것이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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