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양재동 aT센터에서는 농식품부와 aT가 주관하는 2019 식품산업대전 개막식이 열렸다. 약 220개의 중소 식품 기업들과 영농법인들은 저마다 소중하게 개발해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을 가지고 나와 고객들과 바이어들에게 알리기 여념이 없었다.
정부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일자리 만들기인 만큼 농식품 산업에서도 청년 창업과 일자리는 큰 과제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유독 청년들의 참가가 눈에 띄었다. 이들도 젋은 감각으로 디자인한 세련된 포장과 좋은 품질의 제품으로 시장을 한참 두드린다 그런데 어딘가 불안해 하는 모습들이었다. 왜그랬을까? 현장에서 만난 한 영농법인 관계자의 말을 들어 보자.
“지금까지 정부의 농정은 생산에만 초점이 맞춰졌던 것 같아요. 돈을 줄테니 많이 생산해봐라, 포장 개발해 봐라, 홍보-마케팅 해봐라 등등을 주문했어요. 그런데 농민들은 그것보다는 어떻게 팔아줄 것인가가 더 시급해요. 학교 급식으로 학기 중에는 어찌어찌 돌아가는데 방학때는 공장이 놀아야 해요.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일감이 없어 집에 계셔야 하지요. 로컬푸드직매장도 도움이 되지만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해요. 직매장을 만들 때는 도시민들의 입장에서 가서 사고 싶도록 만들어야지 농민들에게 시혜를 베풀 듯 형식적으로 매장내면 경쟁력이 없어요. 돈은 돈대로 쓰지만 농민들에겐 별 도움이 안됩니다.”
구구절절 옳은 지적이다. 이제는 좋은 농산물을 많이 수확하는 것보다는 제 값 받고 잘 파는게 농민을 위한 지고지선한 정책이다. 생산보다는 유통이란 말이다. 그러나 말이 좋아 유통이지 농민 개인의 힘으로 유통망을 세우기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몇몇 성공한 온라인 직접 판매 농가들의 사례를 200만 농부들이 똑 같이 따라 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대다수의 농민이 가입하고 있는 농협은 뭐하고 있을까? 농협은 농민들이 정성껏 키운 농산물과 그 가공품을 잘 팔아줘야 할까, 아니면 농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게 먼저일까?
국회 농해수위 박완주 의원은 이에 대해 힌트를 줬다. 박 의원은 지난 18일 농식품부 종합 감사에서 농산물 유통 구조 개혁을 위해 도매시장 개혁, 농협의 판매조직으로의 대혁신, 온라인 경매제도 활성화 등 3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특히 박 의원은 "농협의 유통 라인을 활용하여 생산자–APC-하나로마트·로컬 푸드 직매장을 연계하여 유통의 효율화를 이끌어야 한다"면서 판매의 주체로써 농협의 헌신을 주문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왜 안했을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앞으로도 안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기우이길 바란다. 다시 현장에서 만난 농업인의 얘기다.
“농협하나로마트 입점이 너무 어려워요. 지역단위농협 등 매장마다 독립채산제로 운영되어서 개별적으로 입점 협의를 해야 해요. 차라리 롯데-이마트랑 얘기하는게 나아요. 거기는 본사 MD랑 얘기하면 전국 매장에 동시에 깔리잖아요.”
농민들의 유통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하나로마트가 생겼을 텐데 정작 농민들 입점하기엔 민간 유통기업이 더 낫다니 어찌된 일인가. 정책과 현장 따로 노는 ‘따로 국밥’이요, 아무리 얘기해도 변화가 없는 다람쥐 쳇바퀴다. 이 짓을 수십 년 해본 눈치 빠른(?) 생산자들은 농협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각자도생의 길로 나간다. 그게 뱃속 편하다.
여당 소속 박완주 의원은 “불필요한 유통비용을 낮춰 농민은 제값 받고, 소비자는 착한 가격의 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는 농산물 유통 구조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농정 개혁 중 하나일 것”이라고 밝혔다. 농특위도 생겨 대통력에게 직접 현안을 조언할 수 있게 됐다. 방향도 정해졌고 의지도 충만하다.
이제 실행이 문제다. WTO 개도국 포기, ASF 살처분 사태 등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아 우리 농업이 근본부터 흔들린다. 진심으로 농협과 농정당국의 대변혁을 기대한다. 농업이 없으면 농협도, 농식품부도 존재할 필요가 없을테니까. 이제 물러설 데 없기는 우리 농민이나 농협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위기가 변화를 추동하는 역설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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