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이 개정안을 통과시킨 도매시장법을 놓고 업계와 관계자들의 셈법이 복잡한 모양새다. 일본이 1971년 제정한 도매시장법의 개정안을 통과시켜 2020년 6월부터 시행한다는 소식에 머릿속이 복잡한 이유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농산물유통시스템이 거의 흡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이 거의 개혁 또는 개벽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도매시장법을 뜯어고친다는 소식에 기존의 유통 강자인 시장의 도매법인들이 긴장하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일본은 앞으로 중앙정부의 도매시장 관여조항을 대부분 삭제할 예정이다. 또한 도매시장의 개설을 공공 뿐 아니라 민간에게도 활짝 열어젖힌다. 도매법인 허가권 역시 정부가 하는 게 아니라 시장개설자로 이관시켰다. 더구나 시장개설자는 도매법인이 중도매인, 매매참가인에게만 농산물을 팔도록 한 ‘제3자 판매 금지원칙’도 재량껏 설정할 수 있게 했다.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면 현행 유통시스템의 상당 부분은 뒤집힐 확률이 높다. 바로 여기서부터 서울시 가락시장을 비롯한 도매시장과 도매법인과 대주주들의 고민이 시작된다. 일본이 내년부터 하는 것처럼 ▲도매시장 운영에서 정부의 관여를 축소하고 시장개설자의 재량권을 늘릴 수 있을까? ▲도매시장을 사실상 다양한 농산물이 유통되는 하나의 물류센터로 규정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 도매시장의 중요 역할일 수 있는 경매가격을 통한 가격발견 기능을 포기할 수 있을까? ▲ 도매시장이 열린 장터이자 누구나 경쟁할 수 있는 자유경쟁시장이 되는 걸 묵과할 수 있을까? 여기에 더해 ▲농민들의 직거래나 온라인유통거래를 활성화시켜 제값 받는 농산물에 바탕한 농정을 정부는 펼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정부와 일부 관계자들은 도매법인과 중도매인은 갈등.경쟁 상대가 아니며 서로 상생하는 파트너로 기능해야 한다며 정부의 도매시장 정책이 공공성을 전제로 한 효율성 추구에 방점이 찍혀야 할 것이라고 원론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원론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정부나 관계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농민이 제 값을 받고 농산물을 팔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거의 붕괴된 상황이란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늘 산지폐기 과정에서 트랙터로 갈아엎는 농작물과 밭뙈기와 농민의 눈물을 목격하고도 인정할 수 없다면 그건 정말 큰 일이다.

농촌에 왜 인구가 줄어드는지 그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보면 , 도매시장법을 비롯한 농산물 유통관련법들을 왜 뜯어고쳐야하는지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농촌에 살면서 1년에 농사지어서 1천만원 정도밖에 벌지 못하는 상황(농업소득 1천만원)이 30년 가까이 지속된 게 바로 농촌 고령화와 마을소멸의 주원인인 것이다. 사실 아닌가? 원인을 알았다면 방법을 마련하면 된다. 바로 농산물 유통시스템을 바로잡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 기회에 정부가 나서서 도매시장법을 비롯한 관계법을 손질하길 바란다. 일본처럼 대폭 손질하는 건 아닐지라도 농민이 숨쉴 수 있을 정도로는 뜯어고쳐야 한다. 농민이 제값 받고 농산물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시민들도 물가안정의 혜택을 누려야한다는 원론적인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도 명심해야할 것이다. 서둘러야 한다.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일본은 하는데 우린 왜 못하겠는가?

가락시장 전경 [사진=서울시농수산식품유통공사]

이광조 기자  lgj@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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