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버린(?) 블루베리,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어부지리(漁父之利)?
- 정부에게 국내 블루베리 농가는 버린 카드(?)일까?

미국이든 한국이든 농사를 짓는 사람은 똑 같은 농민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농사짓는다고 ‘농부님’이 되고 한국에서 농사를 짓기에 ‘농사꾼’이 되는 현실이 못내 서글프다. 아니 속이 쓰리고 아프다. 나라가 농민을 대하는 태도, 그 중에서도 애정과 배려와 전략의 차이는 이렇듯 큰 차이를 낳는다. 바로 블루베리 이야기다.

오레곤(Oregon)은 태평양 연안 캘리포니아 바로 위에 있는 미국의 또 다른 주. 그곳 ‘농부님’들은 블루베리 농사를 크게 짓는다. 그래봤자 353개 농가(또는 영농법인)가 블루베리를 재배하는데, 오레곤블루베리닷컴(www.oregonblueberry.com) 이란 사이트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미국 오레곤주의 블루베리 생산량은 약 1억 1천 6백만 파운드, 우리에게 익숙한 톤(t)으로 환산하면 약 5만 3천 톤에 이른다. 2015~2016년 대한민국 블루베리 생산량 1만 톤에 비하면 5배가 넘는 수치. 오레곤에서 생산된 블루베리는 전 세계로 수출되는데 여기에 우리나라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르헨티나, 벨기에, 캐나다, 코스타리카,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일본, 멕시코, 대한민국, 스웨덴, 스위스, 대만, 영국, 베트남 등등이 오레곤 블루베리의 수입국들이다. 오레곤 블루베리는 이 중 약 40%인 4천만~5천만 파운드(1만 8천~ 2만 3천 톤)를 생과 형태로, 나머지 60%는 냉동 또는 가공되어 미국 전역과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오레곤 외에도 미국에서는 워싱턴주, 조지아주, 미시건주, 뉴저지주, 캘리포니아주, 노스캐롤라이나주 등에서 블루베리 재배가 왕성하다. 월드아틀라스라는 미국의 지리.통계사이트에 따르면 이들 7개 주가 바로 미국 블루베리 생산 ‘빅7’. 이들 7개 주는 각각 1년에 5천만 파운드(2만 3천 톤)~1억 파운드(4만 6천 톤)씩 블루베리를 생산하는데, 이들 빅7의 블루베리 1년 생산량만 무려 25만 톤 안팎이다. 다른 주까지 합한 미국 내 전체 블루베리 생산량은 약 40만 톤(t) 안팎일 것으로 추산된다. 대한민국의 블루베리 생산량을 1만 톤 정도로 계산할 때, 미국은 한국보다 약 40~50배 큰 블루베리 생산국이다.

미국 오레곤 주 블루베리 농장 [사진=오레곤블루베리닷컴]

#왜 갑자기 미국 오레곤주와 블루베리 이야기를 꺼냈는지 짐작할 것이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과정에서 국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거라던 정부의 발표와는 사뭇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 미국이 자국의 신선과일, 그 중에서도 블루베리, 체리, 사과, 배의 한국 수입을 계속 압박할 거라는 비보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4월 2일 청와대 정책브리핑 홈페이지에 참고자료로 올라온 내용을 보자. “미국 무역대표부(이하 USTR)는 ‘18. 3. 30.(미국시간) 2018년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National Trade Estimate Report on Foreign Trade Barriers)”를 발표했다....(중략)....미국산 과일(블루베리, 체리, 사과, 배)에 대한 한국 시장접근 이슈가 신규로 포함....(중략)...보고서에 제기된 사안들에 대해서는 국내 이해관계자, 관계부처 간 협의를 통해 면밀히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한편, 미측과도 한미 FTA 상 각종 이행위원회 등 협의채널 등을 활용해 긴밀히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라고 적혀있다.

이 내용이 어떤 의미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지난해 한국과 농축산물 분야에서만 73억 달러 (우리 돈 약 7조 3천억 원)의 흑자를 낸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과일시장을 더 열어달라는 은밀한(?) 요청이자 압박일 수 있다. 아닌가? 앞서 인용한 오레곤 블루베리 통계자료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은 가격경쟁력도 높고 풍부한 물량까지 갖춰진 자국 농산물을 앞세워 한국시장으로 한 발 더 진입하겠다는 욕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블루베리 시장과 농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블루베리 재배 농민이 아니라면 잘 모를 수 있겠지만,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는 블루베리를 ‘FTA 피해보전 직접 지불 및 폐업지원 대상’ 품목에 전격 포함시켰다. 그 결과, 2016년 1,500여 블루베리 농가가 FTA 폐업지원금을 신청했고 액수로는 1천억 원 정도가 지급됐다. 최대산지 전남과 전북은 30% 가량의 재배면적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접었다.

이런 상황을 농림부가 농민들에게 전하는 말로 쉽게 풀어보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정부는 블루베리라는 작물을 포기했다. 미국의 등쌀과 경쟁력 앞에 국산 블루베리를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 싶으면 각자 알아서들 잘 지어보시라. 살아서 돌아오면 좋고, 그게 아니어도 정부가 상관할 바는 아닌 것이다.” 맞나?

정확한 해석 아닐까? 하지만 애써 시작한 일에 대해 꿈과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게 농심(農心)인 모양이다. 정부는 블루베리 농가를 포기했는지 모르지만, 농민들은 아직 블루베리를 붙잡고 부활의 불씨를 살려보려고 애쓰고 있다. <한국블루베리협회(연합회)>에 따르면 아직 우리나라 블루베리 농가는 5천~ 8천 호 정도를 유지하고 있단다. <즐거운 블루베리 학교>라는 포털사이트 카페 한군데의 가입자 숫자만 1만 명에 가깝다.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멤버 숫자가 2천명도 넘는다. 이 수치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국산 블루베리 [사진=한국블루베리협회]

#정부는 정말 국내 블루베리 농가를 버린 카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정부는 블루베리 농가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는 성의를 보여야만 할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국내엔 아직까지 블루베리 공동 선별장도 하나 없다. 신경 좀 써 달라. ▲국내 블루베리의 생산성은 여전히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선진기술을 지원해 국내 블루베리 농가들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게 도와 달라. ▲ 국내 블루베리 자급률이 낮아지고 외국산 블루베리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지지 않게 해 달라. ▲ 이른바 ‘소수 품목’인 블루베리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농업관측 대상 품목에 포함시켜 달라. ▲ 현재 국내 블루베리 시장은 3,500억 원 정도로 6대 과수 수준으로 커진 상황. 블루베리는 부가가치가 높고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해 농촌 노년층 일감으로도 훌륭하다. 일자리 창출이란 면도 고려해 달라. ▲ 소비자들도 블루베리가 외국종이라는 인식을 버리고 국산에 관심을 가져달라.

어떤가? 정부가 블루베리 농가에게 이 정도는 해주면서 한미 FTA재협상에 나서야 되는 거 아닐까? 국내 유통되는 블루베리가 100% 외국산이 되는 날을 농림축산식품부는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국내 블루베리 농가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 이런 요청을 블루베리 농가들이 아무런 자구 노력 없이 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한국블루베리협회는 협회를 전국 농가의 80% 이상이 참여하는 협의회로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또한 자조금 조성 등 대응책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미국 무역대표부의 이의 제기(보고서 내용) 및 한국시장 추가 개방 요구가 정식 협상 의제로 올라올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결국 굴복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도 커져만 간다. 한편에선 이런 목소리도 들린다. “한미 FTA 발효 이후 한국으로 수출이 600% 늘어났다는 블루베리, 200% 늘어난 체리, 125% 늘어난 소고기, 115% 늘어난 포도 등에 대해서 이번에 우리정부는 미국에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정말인가? 와중에 2017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은 사상 처음으로 10억 달러 (우리돈 1조원)을 넘어섰다.

백종호 기자  bjh@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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