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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연분홍


벚나무 그루터기에 돋아난 실낱같은 가지 끝에
벚꽃 몇 개 피었다

고목의 뿌리가 지구를 움켜쥐고
죽은 듯 살아서
꽃을 피웠다

한 노인이 벚꽃 앞에 쭈그리고 앉아 경배를 드리고 있다
등 뒤에 내리는 황혼
연분홍이다

그윽하다 풍경

해질 무렵 황혼을 바라보는 일은 참 쓸쓸하다.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허름한 구멍가게 앞 나무걸상에서 깡소주를 홀짝거리기도 한다. 소주가 목줄기를 타고 배속으로 들어갈 때 알싸하다 못해 쓰리다. 안주는 빌어먹어도 쌀 쓸쓸함이다. 그 맛을 알아야 인생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한 세상을 살면서 별난 그 맛을 놓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한때는 가슴이 봉긋한 여자가 여자로 보였고, 뽀글뽀글한 라면머리를 한 여자는 아줌마로 보였고 귀밑머리가 희끗한 여자는 할머니로 보였다. 나이가 들면서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여자는 엄마로 보이고, 엉덩이가 펑퍼짐한 여자는 성숙하게 보이고, 육십 넘은 여자는 생의 쓴맛 단맛 다 본 완숙한 와인 같아서 삶의 지혜 한 수 배우고 싶었다. 늙어가는 기술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받아들이기’, ‘놓아 버리기’, ‘자신을 넘어서기’다. 나이 드는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은 ‘노년의 덕’을 습득해야 한다.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이 원칙에서 각자 안고 갈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곱게 늙느냐 아니냐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늙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대할 것인가? 질병과 상실, 한계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는 남이 아닌 내가 결정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지는 해를 보며 눈물짓기보다 황혼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는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한국영농신문  agrie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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