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릴 눈 한 쌍 달았을 뿐인데

불완전한 농산물 작품이 되다

독일도 못생긴 농산물 많이 버려져

음식낭비의 사회적 문제에 주목하게 돼

작은 당근으로 만든 작품 '당근 친구들' / 사진제공=eyemojis

현장에서 수확한 농산물은 마트 광고처럼 반듯하고 반짝이지 않는다.

사람도 성장과정에서 상처가 생기고 아물듯이, 현실의 농산물도 자라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바람이나 햇살에 휘기도 하고 표면이 부분부분 갈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장은 이런 농산물을 못생겼다 홀대한다지만, 여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작업 '아이모지(eyemojis)'를 공개하는 독일 작가 비르테 묄러(Birte Möller).

비르테는 자신의 손으로 만든 캐릭터에 이름은 물론이고 고유의 스토리도 붙여 정체성을 안겨준다.

털모자와 부츠를 신은 당근 '에노' / 사진제공=eyemojis

“우리집 냉장고에 다리가 달린 당근이 있었어요. 저는 그의 발에 딱 맞는 고무부츠를 신겼죠.”

그렇게 그의 손에서 털모자와 부츠를 신은 당근 ‘에노’가 탄생했다.

그의 작업에는 메부리코를 단 가지 ‘오베르타 테클라’도 있고, 짧막한 두 다리를 땅 위에 딛고 당당히 서 있는 무 캐릭터 '오림'도 있다. 

두 개로 갈라진 턱에 거친 수염이 있는 순무로는 마냥 즐겁고 순박한 남성 ‘마르코’를 표현했고, 뿌리 끝이 휜 비트는 코끼리를 빼 닮았다.

이렇게 모양이 다양한 뿌리채소는 늘 그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또한 그는 작업을 하며 알게 되었다. 남들이 못생겼다 거부할수록 풍부한 표정과 완전한 신체 부위를 표현해낸다는 것을.

그는 그런 과일과 채소의 변신을 '연기'라 표현한다.

이렇게 사람이나 동물을 닮기도 하고, 귀여운 야채 괴물처럼 생기기도 한 비르테의 작업은 아주 우연히 시작됐다.

바로 그의 집 식탁에서.

메부리코를 단 가지 '오베르타 테클라' / 사진제공=eyemojis

두 다리로 당당히 서있는 무 캐릭터 '오림' / 사진제공=eyemojis

집에서는 엄마이기도 한 그가 과일바구니에서 발견한 배에 아크릴 눈을 붙이며 아이모지가 탄생됐다.

아이들은 엄마의 작품에 금방 빠져들었고, 그 뒤로 부엌의 식재료가 작품으로 완성되지 않으면 거침없이 항의하기도 했다.

그의 친구들도 팬을 자처하며 계속해서 작업물을 보여주길 권했다.

그렇게 그는 요리할 때마다 새로운 캐릭터를 하나씩 꺼내어 소개하기 시작했고, 그가 만들어낸 눈이 달린 채소와 과일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모지가 포토샵으로 빚은 작업이 아니냐며 반신반의 하지만, 비르테가 전부 손으로 만든 작품이다.

"농산물의 형태를 망가뜨리지 않고 배치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내부가 비어있는 파프리카는 눈이 속으로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당근도 정말 잘 찢어지거든요. 또 과일과 채소에게 입힐 소품은 주로 벼룩시장에서 사오는데, 제가 하는 작업을 설명하면 황당해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명함에 예시를 몇 가지 적어 건넸더니, 이제는 도와주는 상인도 생겼죠." 

순무 '마르코'. 즐겁고 행복한 사람을 표현했다. / 사진제공=eyemojis

아이모지가 사랑 받으며 그의 가족은 매주 장을 봐 신선한 식재료로 요리해 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 위해 편식을 버리고, 더 다양한 종류의 먹거리를 즐겁게 시도하게 돼었다.

심지어 엄마인 그도 처음보는 재료를 살때면 직접 나서 조리법을 찾기도 한다.

이렇게 재료를 고르는 것부터 먹는것까지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는 이 가족.

그의 작업으로 가족은 더욱 친밀하고 건강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이제는 시장의 상인들도 그를 위해 특별히 모양이 불완전한 채소를 빼두기도 한다.

"그럼에도 작업에 어울리는 농산물 찾기가 여전히 힘들어요."

어렵게 찾은 못생긴 농산물의 팔이나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고 집으로 무사히 데려오는 것도 그에겐 큰 미션 중 하나다.

비트로 표현한 코끼리 / 사진제공=eyemojis

작업을 하며 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독일에서도 많은 양의 농산물이 생김새 때문에 버려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똑같은 농산물인데 심하면 수확량의 절반까지 버려지는 일이 발생했다.

세상이 농산물마저 예뻐야한다 요구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부의 몫으로 돌아가는 법.

농부가 농산물을 팔지 못하는 만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없게 된다. 

“감자가 너무 작거나, 당근에 다리가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로 인해 농산물이 버려진다는 사실이 정말 큰 문제죠. 아마 소비자가 직접 농사를 지어본다면 하나도 버릴 수 없는 것들일 걸요.”

비르텔이 작업한 다양한 농산물 캐릭터. 작업에 필요한 작은 소품은 벼룩시장에서 구하는 편이다. / 사진제공 = eyemojis

다양한 생김새의 과일과 채소를 얻는 것이 누구보다 절실한 그에게 최근 기쁜 일이 생겼다.

바로 그가 사는 함부르크에 모양이 불완전한 농산물을 파는 슈퍼마켓이 등장한 것.

"만약 상인들이 못생긴 채소를 따로 빼두지 않거나, 이런 슈퍼마켓이 생기지 않았다면 저는 원하는 농산물을 찾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겠죠? 지금도 시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충분히 길다니까요."

세상엔 다양한 모습의 농산물이 있음을 팬들에게 알리는 비르테. 

그는 앞으로 시장에서 다양한 모습을 지닌 농산물을 만나는 일이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이아롬 기자  arom@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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