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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벨기에 유기농장에서 보낸 2주 - 산 중턱으로 귀농한 이자벨씨 농장 / 박푸른들
이자벨씨 농장의 아늑한 뒤뜰

“베리 베리 스페셜”

피에르 마리씨와 두 번째로 머물 농장에 가는 길에 그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농장이 특별한 곳임을 연신 이야기했다.

화장실도 밖에 있고 히터도 없지만,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 농장은 우프야.” 유기농 농장(호스트)과 자원봉사자(우퍼)를 연결해, 농장의 일손을 돕는 우퍼들에게 호스트가 숙식을 제공하는 방식의 우프 회원이기도 했던 것.

유기농업 농장이냐는 내 질문에는 ‘베리’를 하나 더 붙여 대답했다.

“베리 베리 스페셜 오가닉!”

농장은 같은 리에주였지만, 첫 번째 농장에서 차로 한 시간은 가야 했다.

피에르 마리씨 지역이 너른 들이었다면, 이곳은 산이었다. 비 오는 저녁에 도착한 농장은 피에르 마리씨 차로는 올라갈 수 없었다.

우리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어두운 언덕길을 걸어 농장에 도착했다.

앞으로 일주일을 보내게 될 농장이름은 ‘Les Jardins du Sart’ 

뜨거운 장작난로와 보온 물주머니가 히터를 대신했고, 따뜻한 브로콜리 스프가 있는 곳이었다.

 

내가 직접 스케치한 이자벨씨, 에카르트씨, 미르가 사는 집

다양한 꽃과 농작물이 자라는 귀농 부부의 농장

마흔이 된 이자벨씨, 에카르트씨 부부는 딸 미르와 함께 4년 전 귀농했다.

과거 마케터로 일한 이자벨씨는 나처럼 농촌 출신으로 농민 아빠를 둔 사람이었다.

IT업계 경력자인 에카르트씨는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이었다.

벨기에의 비싼 땅 중 살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이곳, 산 일부분이었다.

큰 나무로 에워싸인 농장은 한 해 50여 가지 농산물이 자랐고, 다양한 꽃이 폈다.

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오래된 농가에는 이자벨씨, 에카르트씨 부부와 딸 미르, 당근을 좋아하는 엄마 개와 갓 태어난 강아지들,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살았다.

 

10월 말 윈터타임에 접어든 농장은 제롬이 출근하는 아침 8시부터 일을 시작했다.

제롬은 지역주민으로, 3년 동안 함께 일한 동료였다.

겨울을 맞은 농장은 아침마다 그날 나갈 농산물을 수확했다.

새벽이슬을 맞은 농산물과 흙은 손이 벌게질 정도로 차디찼다.

추운 겨울 수확량은 이자벨씨가 어젯밤 정리한 목록에 딱 맞췄다.

배추 다섯 포기, 노란 비트 여덟 묶음, 파슬리 열 묶음…. 포장은 대단치 않았다.

겉잎을 뜯고, 물로 흙을 털고, 노란 고무줄로 줄기를 묶는 것으로 끝.

양이 많은 경우, 얇은 종이봉투나 남는 나무상자에 넣어주는 게 전부였다. 

대부분 지역주민들과의 거래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소박한 포장이었다. 

겉 포장으로 잘 보이지 않아도 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는 부러웠다. 

두 부부는 일주일에 두 번 시내에서 열리는 장에 나가 농산물을 팔았고, 농장에 오는 게 가능한 주민들은 약속시간에 맞춰 농장을 찾았다.

 

Les Jardins du Sart의 다양한 당근. 고무줄로 한 번 묶어낸 소박한 포장으로도 거래는 충분히 이뤄진다.

 

많은 사람을 반기는 환대의 공동체

농장을 찾는 주민들은 그냥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농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늑한 뒤뜰에 모여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테이블에 놓인 채소를 맛보고, 수다를 떨다 돌아갔다.

수확 전 도착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져갈 농산물 수확을 돕기도 했다.

‘생산, 학습, 실험과 지식의 교환 장소’라는 이자벨씨, 에카르트씨 말처럼 농장은 많은 사람을 환대하는 곳이었고, 그만큼 좋은 동료가 많았다.

농장은 소비자 외에도 여러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농번기에는 많은 우퍼들이 오갔고, 유기농학교 학생들이 실습을 위해 일주일에 두어 번씩 다녀가기도 했다.

한 주민은 농장 한 켠을 빌려 꽃을 길렀고, 주민 네다섯 명이 농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곳이기도 했다.

부부는 캐나다 농민 장 마틴 포티어 농법을 참고해 농사를 지었다.

경운은 얕게 했고, 기계는 쓰지 않았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만큼, 손이 많이 가는 만큼 사람들은 농장에서 농사를 지으며 어울릴 여지가 많았다.

농장에 좋은 동료들이 많은 이유는 농장의 운영방식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농장주인 이자벨씨의 화통하고, 강직한 성격이 큰 이유 같았다.

마지막 날, 감사인사를 건네니 이자벨씨는 내게 “네가 이곳에 온 것이 우리에겐 선물이야.”라 말해줬다. 나는 여성농민인 그가 좋았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산 속의 농장 Les Jardins du Sart은 따뜻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시내에서 열리는 장에 나가 농산물을 파는 이자벨씨와 에카르트씨

농업으로 연결된 우리, 너무나 고마운 인연

2주를 리에주에서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건, 국제가톨릭농민운동연맹 피막(FIMARC)의 사무국장 조지씨와 벨기에 가톨릭여성농민회 회원인 수잔씨와 남편 다니엘씨 덕분이었다.

리에주에서의 마지막 날은 이 부부 덕분에, 가톨릭 성지와 그들이 운영하는 농장을 방문할 수 있었다.

농장 한쪽에는 주민들을 위한 우유와 치즈 무인판매대를 운영했고, 평소 우유를 잘 마시지 않는 이자벨씨네도 이 농장 우유만큼은 좋아했다.

 

지면을 빌려 피막의 조지씨, 첫 번째로 방문한 과수농장 DE LA FLEUR AU FRUIT의 피에르 마리씨댁, 두 번째로 방문한 채소농장 Les Jardins du Sart의 이자벨씨와 에카르트씨, 축산농장 수잔씨와 다니엘씨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덕분에 난 실로 오랜만에 천진하게 농장을 누비며, 내가 농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난 두 가지를 다짐했다. 농민으로 살며 공부할 것, 친구들과 함께 다시 한번 가볼 것.

농사계획을 한창 세우는 요즘 난, 지난 10월에 만난 리에주 농민들 모습을 되짚어보곤 한다.

리에주에서 보낸 2주는 분명 내 삶에 힘이 되는 시간이었다. 

 

박푸른들 / 농촌청년여성캠프 기획자, 농 저널 '농담' 운영자

고향에서 농민 아빠를 따라 농사지을 준비 중인 농촌 페미니스트. 취미는 그림, 특기는 일 벌리기.

 

 

한국영농신문  arom@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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