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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칼럼] 사람이 되었다 / 전인숙

농사를 짓다보면 농사가 보이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보인다.

곡물이 자란 것을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어 사람에게서 얻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을 보고 살면 시기와 질투가 앞서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 되지만 내가 심어 놓은 곡물이 자란 것을 보고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면 진정한 삶을 생각하게 한다.

우린 농촌으로 온지 18년이 되었다. 농사를 지으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크게 교통사고를 당해 건강을 잃고선 도시의 복잡한 생활이 싫어 왔는데 농촌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허지만 바쁜 발걸음을 보지 않으니 여유롭고, 많은 신호등이 없는 도로를 가니 마음도 너그러워졌다. 농촌의 풍경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일하는 농부의 힘듦도 보는 것은 평화이지만 내가 하면 노동이다.

언제나 평화로움은 힘든 노동 속에 있는 것이다 노동을 노동이 아닌 더 큰 기쁨을 갖기 위해선 곡물이라는 먹거리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존본능을 살펴야 한다. 그러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다. 농사는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라고 눈빛 속에서 큰다는 말이 성립이 된다, 즉 교감으로 자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고추농사를 짓는다. 처음에는 우리가 먹기 위한 것이었지만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양은 그리 많지 않아 가족이나 지인에게 팔기도 한다.

완전 유기농으로 재배하여 손이 많이 간다.

농사는 한여름 뜨거운 땡볕에서 자라는 것이라 도시의 사람들은 피서라고 놀러갈 때에 농부는 뜨거운 볕은 품고 진땀을 흘려 일해야 가을에 알찬 수확을 얻을 수 있다.

허지만 그것이 재미있다. 뜨거운 볕에서 흐르는 땀방울이야말로 진정한 수확의 결실이라고 생각하면 큰 얻음 같아 마음이 풍성해진다.

땀만이 진정한 결실을 가져온다.

땀 흐르지 않은 결실은 사기이며 속임이다.

농사는 사람을 사람 되게 했다.

고추농사를 지으면서야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알고 사람이 되어갔다.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하고 사람의 이름만 갖고 있지만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생인지를 알았으니 그것으로 사람이 되어 간다고 자신 있게 얘기해도 괜찮을 것 같다.

고추는 6,7월에 열매를 맺고 8월부터 익기 시작한다. 매 때가 맛있다. 풋내 나는 고추도 맛있고 매운 고추도 맛있다. 다른 것과 달리 매 때가 먹을 만하다.

그래서 고추가 열릴 때면 고추 한가지로도 입맛이 돋고 밥상은 풍성해진다 텃밭에서 반질반질한 고추를 따와 된장이나 고추장에 찍어먹으면 그것으로 맛나고 행복하다.

붉게 익은 고추에선 달큼한 맛이 배었다. 익으면 더 매울 것 같지만 달큼하다. 그러면서 딸 때가 된 고추 빛은 검붉은 빛을 하고 손만 대도 “똑” 하고 떨어진다. 미련이 없다. 허지만 붉다고 다 익은 것이 아니다. 더 있어야 할 고추는 따기가 힘들다. 가기 싫어 버티는 것처럼 버틴다. 손가락이 아프다.

갈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있는 고추, 어느 시인이 노래한 갈 때가 언제인가를 아느 사람은 아름답다고 한 시처럼 아름다움이다. 미련 없이 떨어지는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 아! 이거구나 하는 큰 얻음, 사람은 항상 조금 더 있어야 하는 덜 익은 고추처럼 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고추는 다 익으면 “똑”하고 떨어져 나온다.

나는 갈 때와 놓을 때를 모르고 집착이 성숙한 삶인 양 살다가 고추 농사를 지으면서 사람이 되어 갔다.

붉은 고추를 말릴 때면 단내가 난다. 집착하지 않음으로 필요했던 것마저 버린다.

그것을 빼지 않으면 곯아버리거나 썩어 성실히 살아온 날이 헛것이다.

헛삶이 되지 않기 위해 놓는다. 다 놓는 모습은 더 당당하고 오롯하다,

그것을 가루로 빻아야 결국에는 자기완성이 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되어갔다.

내가 되기 위해선 나를 채웠던 그것마저 놓아야 곯지 않은 내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계속 붙들고 있으면서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고추농사를 지으면서 얻은 수확보다 더 큰 수확이다. 요즈음에는 빼버린 수확으로 산다.

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은 풍요로운 마음인데 비슷한 시기에 귀촌한 지인은 이런 맘이 보이는지 “세상에 가장 편하게 산 사람”라고 한다.

그것은 많은 농사를 하지 않고 내가 할 만큼만 하고 산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귀촌 귀농 인들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전원으로 들어 왔다고 하면서 자유로움과 행복은 뒷전이고 많은 것을 심어 먹으려고 매여 있어 자유로운 행복은 물 건너가고 다른 욕심에서 버둥거리고 산다.

이것이 큰 오류다. 목적은 사라지고 또 다른 목적, 많은 것을 손수 지어 먹고 살고자 하는 마음이 무거운 짐이 되어 버린다.

내가 할 만큼만, 할 수 있는 양 만큼만 하여야 생활이 즐겁고 기쁘다.

그 기쁨은 놓은 데서 비롯된다. 그 기쁨을 얻을 수 있을 때 풍족하고 풍요로운 전원생활의 혜택을 오롯이 다 받을 수 있다.

고추농사는 봄에서 가을까지 이어진다. 그때까지는 할 일이 있다.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고추를 따서 말리고 또 말린 고추를 좋은 가을볕을 등지고 앉아 닦는다. 좋은 것은 손이 덜 가지만 안 좋은 것은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나를 점검 한다.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생활이 바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농촌의 삶이다.

나는 농촌의 삶이 참 좋다 농사를 지으면서 얻는 법도 알았고 놓는 법도 알았다.

그것을 적절하게 잘 할 때 행복하다.

고추가 채웠던 것을 모두 다 빼 오롯한 자기가 되어 그것마저 빻은 다음에야 자기완성이 되듯

인생도 그렇게 사는 삶 이었다.

지금은 건강도 되찾고 마음도 건강해졌다. 허여멀겋던 얼굴도 건강미가 넘치고 마음은 풍요로워져 가시 돋는 일이 없어 내가 행복하니 덩달아 가족도 행복하다.

어쩜 이것이 농촌으로 와 살겠다는 꿈의 완성이 아닌지 모르겠다. 

 

<전인숙> 약력

 

전남 장흥 출생

문학세계(2004년) 시 신인상

9회 동서커피문학상 수필 가작

15회 광명문학상 수필 우수상

한국영농신문  agrienews@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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