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21세기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안보 전문가들은 지난해 11월부터 러시아의 군사적 훈련이 심상치 않음을 누차 경고하며 전쟁 가능성을 전망했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마‘라고 여겼습니다. 결국 올해 2월 24일 푸틴의 공격 명령을 받은 러시아군은 4시 40분 새벽 미명을 기해 우크라이나 전역에 포격을 시작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설마가 사람을 잡았습니다. 지난 24일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인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전쟁 개시 이후 민간인 2435명이 사망하고 2946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피해액은 1천억 달러(한화 124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습니다. 여기에 군인과 미집계된 러시아점령 지역의 피해까지 합치면 사상자 수는 더 많을 것입니다. 실제로 러시아가 맹폭을 가한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는 민간인 사망자가 2만 명이 넘는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명이 희생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이 전쟁은 국제 곡물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4월 중 밀의 국제 선물시장 시세는 작년보다 40% 정도 상승한 상태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공장이라고 불리는 대표적 농업 수출국입니다. 밀 수출도 세계 4위입니다. 러시아도 세계 1위의 밀 수출국입니다. 두 나라의 밀 수출시장 점율율은 29%나 됩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의해 항구가 봉쇄당하고 봄철 파종이 부진한 상황입니다. 러시아는 식량 안보를 이유로 곡물 수출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공급이 줄어드니 가격은 뜁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밀 자급률은 0.8%입니다. 대부분 수입 밀을 쓰는 빵, 라면 등의 가격 인상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비단 밀만 문제가 아닙니다. 팜유의 대표적 수출국인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달 28일부터 식용유와 식용유 원료의 수출을 제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국제 시세가 오르며 국내 가격도 오르니 자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주요 수출국들의 대응도 비슷합니다. 이집트는 3개월간 밀과 콩 등 주요 곡물의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고, 헝가리는 모든 곡물의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대두유와 콩가루에 붙는 수출세를 연말까지 33%로 2%포인트 인상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우리 먼저 살고 보자’는데 그 나라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뭐든 먹어야 삽니다. 그래서 식량 시장에는 대체재를 소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한 품종의 공급 부족이 생기면 다른 작물의 수요가 늘어납니다. 시세 차익을 노리는 사재기도 생깁니다. 그럴수록 가격은 더 뛰어 오르게 마련입니다. 밀에서 팜유로, 그 다음에는 콩과 옥수수 가격이 뛸 것입니다. 그것을 원료로 사료를 만드니 소고기, 돼지고기, 계란, 우유 등도 함께 오를 것입니다. 먹거리 공급 부족 사태는 가뜩이나 걱정스러운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채질 할 것으로 보입니다. 식량이 부족한 가난한 나라, 저임금에 시달리는 가난한 자들은 더 큰 고통을 받습니다.

우리의 식량 조달 체계에도 당연히 위기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수입 농산물 가격이 오르며 주요 식품 가격은 줄줄이 인상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현재 수준도 문제지만 앞으로 공급 부족이 장기화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할 것입니다. 먹거리 가격이 오르면 나머지 물가도 다같이 뜁니다. 인건비도 올려줘야 합니다. 기업이 돈을 잘 벌고 있다면 문제없지만 매출은 그만그만한데 비용만 오른다면 이익이 감소합니다. 정부는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합니다. 한계 상황에 놓인 기업과 소비자는 지출을 줄이거나 파산합니다. 인플레이션 뒤 불황이 오는 악순환의 패턴입니다. 위기의 초입에 서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게 있습니다. 우리 먹거리는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2020년 기준 식량자급률은 45.8%, 곡물자급률은 20.2%로 OECD에서 꼴찌 수준입니다. 그나마 쌀을 100% 가까이 자급하고 있기에 가능한 수치입니다. 우리의 먹거리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으면 국제 시세에 따라 요동치는 식품 가격을 매번 겪어야 합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팔아서 번 돈을 잔뜩 오른 밀가루, 옥수수 사느라 다 쓰게 생긴 꼴입니다. 왜 경제 선진국들은 자국 농업을 키워 먹거리 공급을 안정시켰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넘어 가겠지’라는 요행수를 바랄 때가 아닙니다.

[사진=픽사베이]

모든 비극에는 전조증상이 있습니다. 참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하인리히의 법칙은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1건의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나고 300번의 다칠 뻔한 사례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사전 예방을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일하는 방식을 수정해 참사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1931년 소개된 이 이론이 거의 100년이 되어 가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대형 참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비극은 미래에 있고 대비는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즉 벌어지지 않을 일을 대비해 지금 뭔가를 한다는 것에 ‘돈과 노력의 낭비’라는 본능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평소 당연히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은 없어지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안전이 그렇고, 건강이 그렇고, 안보가 그렇습니다. 모두 사고가 나봐야, 병을 얻어 봐야, 전쟁이 나봐야 압니다.

먹거리는 생명입니다. 경제고 안보이고 복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중요함을 잊고 삽니다. 농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는 진리를, 식량 위기 시대에 생생히 목도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특히 정책을 다루는 정치인들은 더 그렇습니다. 새 정부 인수위에 농업전문가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은 새삼 놀랄 일도 아닙니다. 

누군가는 경고해야 합니다. 그 일에 한국영농신문도 동참하겠습니다. 먹거리 위기를 대비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하겠습니다. 쓴 소리와 함께 대안을 제시하며 우리 농업·농촌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집중하겠습니다. 농업이 공동체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소중한 미래산업임을 증명하는 일에 나서겠습니다. 이일이 가능하도록 독자들께도 지혜를 구합니다.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지난 28년 동안 한결같이 한국영농신문을 지켜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두의 가정에 건강과 평안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영농신문사 대표이사 이병로 드림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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