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가 농촌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식용곤충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은 국내에서 메뚜기 다음으로 유명한 식용곤충은 아마 굼벵이일 것이다. 한편 식용이라고는 도무지 상상하기도 싫은 것 중에 영화나 현실에서 실제 먹거리로 등장하는 곤충도 있다. 그건 바로 바퀴벌레. 요즘 대한민국 정치권에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친박 핵심 의원들을 향해 ‘바퀴벌레 같다’라며 비하하는 모양이지만,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당당히 화장품과 의약품 원료로 농가의 짭짤한 수익원이 되고 있는 게 현실.

영화 <설국열차>에도 바퀴벌레를 키워 ‘프로테인바(단백질스틱)’으로 만들어 꼬리칸에 탄 사람들의 식량으로 공급하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영화 속 상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아 보인다. 그 생김새로만 보면 바퀴벌레 못지않게 살갑지 않은(?) 굼벵이가 당당히 농촌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 해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다시피 갈 길은 여전히 멀다. 낙후된 농촌과 소외된 농민들을 위해 ‘구르는 굼벵이’ 한 마리라도 돌아봐 줄 정치인들은 거의 없기 때문.

사실 ‘굼벵이에게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란 속담을 헌정(?)한 최초의 인간이 누구인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굼벵이에겐 구르는 재주 외에도 장기자랑할 게 많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대한민국 곤충산업, 그 중에서도 굼벵이 산업을 개척해가는 ‘굼벵이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전북 진안 마이산 홍벵이 농장을 찾아 성기상 대표를 만났다.

어쩌면 성기상 대표의 귀농스토리는 그리 특이할 게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괜찮았던 직장, 갑자기 찾아온 아내의 병마, 함께 병마를 이겨내려는 노력, 귀농결심 등등 TV나 신문에서 많이 접했을 법한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특이하다고 할 만한 것은 병마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본인과 아내가 직접 임상실험 아닌 임상실험을 실행하며 스스로 말로만 듣던 굼벵이의 효능에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점.

전북 진안 마이산 홍벵이 농장은 궁벵이를 이용해 성공한 귀농 케이스로 꼽히고 있다.

굼벵이 사육 3년차인 성대표에게 우리가 관심을 가질 부분은 오히려 굼벵이 사육을 산업으로 인식하는 그의 앞선 관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귀농시점에 사회적 주목을 받는 인기품목을 선택한다. 그러다보니 선배 농가의 농법을 여과없이 답습하거나 지나치게 실험적인 시도를 감행함으로써 극복하기 힘든 우를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대표는 산업으로서의 굼벵이 사육, 사육에 머무르지 않는 상품화 그리고 유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해왔다. 이른바 6차산업의 abc를 혼자서 묵묵히 도모해온 것이다. 그래서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 모든 영농품목 시장은 초기에는 신품목을 개발하고, 분양시장을 통해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갑니다. 2세대 농민들이 진입할 쯤에는 1세대는 발을 빼게 되고, 변변한 상품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결국 후발농민들만 좌절하는 구조. 저는 이런 흐름이 두려웠습니다. 특정 작목을 언급하기 좀 꺼려지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부자농민을 만들 것 같던 여러 작목들이 현재는 상당수가 뽑혀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거든요.”

성대표는 귀농을 결심할 때부터 아무리 좋은 아이템일지라도 유통을 통해 소비자에게 상품으로 전달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신상품 개발과 유통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홍보하고, 개발하고, 섭취후기까지 들어보고 세상에 태어난 것이 현재의 마이산홍벵이. 성대표는 예상보다 시장 반응이 좋아 시간이 흐를수록 일취월장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내년엔 투자한 자금 절반은 회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그의 전망이자 희망사항.

지금이야 밝은 꿈을 꾸지만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2015년도에는 그저 선배농가의 농법에 따라 사육기술을 익히는데 전념했다. 하지만 사육하는 굼벵이의 개체수가 증가할수록 판로 즉 유통이 문제였다. 더구나 당시엔 굼벵이가 식품공전에 등재되지 않은 한시적 식품원료였다. 그래서 성대표가 생각해낸 게 식품공전에 등재된 뒤의 굼벵이 제품의 미래를 대비하는 것. 아울러 곤충전문가공업도 준비했다. 이어서 (유)마이산홍벵이 농업회사를 설립, 과립 제품을 출시했다. 성대표가 사무국장직을 맡고 있는 (사)한국곤충산업협회 전북지부의 전북지역 굼벵이 사육농가들과 함께 협동조합도 구성했다. 그런 노력들이 모여 현재를 만들었다.

전국 곤충사육농가는 2015년 724농가에서 2016년 1,300여 농가로 급증했다. 전북지역만 보더라도 2014년 4농가, 2015년 55농가, 2016년 99농가로 급증하는 추세이다.

현재 전국 곤충사육농가는 2015년 724농가에서 2016년 1,300여 농가로 급증했다. 전북지역만 보더라도 2014년 4농가, 2015년 55농가, 2016년 99농가로 급증하는 추세. 등록되지 않은 농가도 상당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가히 70년대의 잠사(누에)농가에 이를 날을 꿈꾸어 봐도 될 듯 싶다. 또한 국내 산업곤충시장도 2020년쯤에는 현재보다 70%정도 성장한 5,000억원 규모까지 이를 전망. 하지만 곤충산업시장의 성장은 실용적 성장이기보다는 컨벤션효과가 크고 관 주도적 소비가 증가한 효과에 힘입은 바 크다.”

“2017년 현재 사육농가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가격은 하락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관위주의 소비를 늘리거나 신생산업을 시장의 법칙에 따르라는 식으로 떠미는 것 둘 다 문제는 있습니다. 농민이 할 부분, 초기에 관에서 지원할 부분 등을 세밀하게 나눠서 곤충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도록 고민해야만 합니다.”

성대표는 또한 농촌지역에 투입되는 농업예산의 성격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정부가 진입을 도와줄테니 그 이후는 농민들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식은 곤란하다는 게 성대표의 주장. 하나의 농작물에 대해 심도있는 예측과 탄탄한 진흥책이 마련되어 적정수량의 종사인구를 예측하고 지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농민들이 정부만 바라봐서도 절대 안됩니다. 정부가 농민에게만 맡겨놓아서도 역시 안됩니다. 반도체 기술의 초기에 정부의 인프라 지원과 해당 업체의 노력이 서로 시너지를 내서 현재의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점을 농수축산물 분야에서도 깊이 새겨야 합니다.”

'6다리 가축'이라고 불리는 식용곤충. 곤충사육은 다리가 4개이거나 2개인 동물,가축을 기르는 것보다 확실히 친환경적이다. 실제로 약 500g의 소고기를 만들기 위해 1만 리터 이상의의 물이 필요하다. 사료는 11kg이상이 들어간다. 아울러 넓은 우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같은 양의 식용곤충을 기르는 데에는 물이 4~5리터 밖에 들지 않는다. 사료는 1kg 정도면 족하다. 사육공간은 굼벵이, 귀뚜라미 등등 곤충의 몸집을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농민들은 바퀴벌레, 굼벵이, 귀뚜라미를 비롯한 곤충산업을 키워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0월 27일 광주 한국농어촌공사 대강당에서 ‘국제곤충산업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폴란드, 미국, 이스라엘, 멕시코, 태국 등 7개국의 8개 기업체가 참여했다. 문제는 심포지엄 개최가 아니라 실질적이고 유용한 영농대책으로써 이런 모임이 기능해야 한다는 것. 특히나 고군분투하며 대한민국 곤충산업을 이끌어가는 마이산 홍벵이 성기상 대표 같은 영농인들에게 힘이 되고 밥이 되는 길을 정부와 정치권이 제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끝으로 바퀴벌레는 식용이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바퀴벌레는 완전식품이라고 단언한다. 바퀴벌레에는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무기질 등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갖춰져 있어서 충분히 식용화할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바퀴벌레의 주요 성분은 단백질 40%, 탄수화물 20%, 지방 10%, 비타민, 키토산, 각종 무기질이다.

2년 전 미국 LA타임즈는 중국에 약 100 여개의 바퀴벌레 농장이 있고, 이를 원료로 화장품과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말린 바퀴벌레 가격은 1파운드(454그램) 당 20달러(2만2천원)이란다. 반면 굼벵이는 500그램 당 40만원 정도. 일반인이 구입하기엔 턱없이 비싼 가격이다. 원자재 및 희소성에 따른 가격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곤충산업을 주력 산업으로 인식하고 원자재 수급방안, 효율적 생산방식 개발, 생산원가 줄이기, 값싼 중국산 과의 경쟁우위 확보 등등의 정책 마련에 힘써야만 할 것이다.

소모적이고 감정적이며 분열만 야기하는 현 정치권의 ‘바퀴벌레 논쟁’은 그래서 더욱 씁쓸하기만 하다. 농민들은 지금도 묵묵히 정치권에서 그토록 함부로 입에 올리는 바퀴벌레, 굼벵이, 귀뚜라미를 비롯한 곤충산업을 키워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게 나라사랑인지는 자명하다.

초기에 관에서 지원할 부분 등을 세밀하게 나눠서 곤충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도록 정부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농가들은 밝히고 있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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