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언터처블스(Untouchables)’은 건드릴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1987년에 나온 헐리우드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케빈 코스트너가 연방 비밀검찰국 소속 밀주단속요원 엘리엇 네스 역할을 맡아 유명세를 타게 된 작품이다. 영화 속 네스 팀장은 정년을 앞둔 말론(숀 코너리), 경찰학교를 막 졸업한 신참 경찰 스톤(앤디 가르시아)과 손잡고 당대 최고의 악당 알 카포네(로버트 드 니로)를 체포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는 내용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 더욱 실감 넘치는 영화였다.

원래 ‘언터처블스’는 기자들이 네스와 그 팀을 조롱하는 말이었다. 당시 시카고의 경찰, 검찰, 판사, 언론인들은 알 카포네에게 매수되어 있었다. 알 카포네를 향한 수사는 무뎌지고 시카고는 마피아가 판치는 범죄도시가 됐다. 아무에게도 제지받지 않고 거침없이 수사하는 그들은, 기자들이 보기에 무모한 천방지축들이었다. 밤의 대통령 알 카포네의 뇌물과 회유에도, 윗선의 지시에도 굴하지 않는 네스와 그 팀원들에 딱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네스와 그 팀원들은 무슨 혐의로 알 카포네를 수사했을까? 바로 탈세다. 지금도 그렇지만 규모가 커진 폭력조직은 합법적 회사의 형태를 갖춘다. 그 ‘범죄회사‘가 많은 돈을 벌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수사의 단서였다. 그럼 알 카포네와 마피아는 어떻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까? 비밀은 ’금주법‘에 있다. 

‘언터처블스(Untouchables)’은 건드릴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1987년에 나온 헐리우드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사진은 영화 '언터처블' 포스터 [사진=프라임비디오]

‘금주법’은 1919년 1월 미국 의회에서 미국 수정 헌법 제18조를 비준하면서 시행됐다. 함께 통과된 ‘볼스테드 법’은 주류의 제조, 판매, 운반, 수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의료 목적이나 교회의 성만찬에 사용하는 포도주 외에 주류를 개인이 소유하거나 소비하는 행위는 연방 법률로 전면 금지됐다. 당시 미국은 중부에서 수확된 옥수수로 만든 값싼 위스키의 영향과 사회지도층의 술에 대한 관대한 인식 때문에 과도한 음주문화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나친 음주는 가정폭력, 결근 등 각종 사회문제를 낳았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유럽에서 불기 시작한 도덕 재건 운동은 금주운동으로 전환되면서 규제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결국 농촌 개신교 단체인 ‘금주 십자군’, 로비 단체인 ‘안티살롱 동맹’, 여성단체인 ‘여성기독교금주연맹’ 등이 주도해 금주법 제정을 관철시켰다. 청교도 정신을 지키려는 종교 세력과 음주 노동자의 결근과 산업재해로 생산성 저하를 우려한 기업가들, 가정 폭력 등으로 피해를 보던 여성단체 등이 합작해낸 결과였다. 술을 끊게 하려고 헌법까지 바꾼 미국인들이다. 뜻은 참 좋았다.

금주법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금주법이 시행된 1920년동안 미국의 알코올 소비량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1940년대까지 알코올 소비량은 금주법 이전 수준 이하를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작용이 컸다. 정부가 술의 제조, 생산을 전면 금지하자 밀주가 성행했다. 불법 주류 제조와 판매에 마피아가 손을 대며 큰돈을 벌었다. 알 카포네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경찰, 법조계, 언론, 지역정치인 등을 매수해 자신의 불법행위를 비호하게 했다.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이런 식으로 마피아들은 거대 범죄단체로써의 기반을 마련했다. 

술 공급이 지하로 숨어들자 가격은 크게 올랐다. 돈 없는 술꾼들이 공업용 알코올로 술을 만들어 마시다 경우도 비일비재 했다. 여기에 주류에 붙는 세금을 걷을 수 없게 되면서 각 주 정부의 세원은 줄어들었다. 1929년 미국에서 대공황이 터지자 이에 대응할 재정 여력이 필요했지만 정부의 금고는 비어 있었다. 결국 새로 들어선 민주당 정부는 1933년 수정헌법 21조를 제정하고 금주법을 공식 폐기했다. 선한 의도에서 시작한 규제가 최악의 결과를 낳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뉴욕 경찰이 압수한 술을 하수구에 버리고 있다. [사진=브리태니커]

최근 우리 사회는 부동산 가격 폭등과 LH사태로 홍역을 앓고 있다. 빈부와 세대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분노 게이지를 상승시켰다. 성난 민심은 집권당도 갈아 치울 기세다. 그 핵심에 신규 주택 공급을 제한하고, 대출 한도를 줄이고, 부동산 소유와 거래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규제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규제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규제 자체는 죄가 없다. 규제의 진짜 목적과 효능이 문제일 뿐이다. 

국회 농해수위는 지난달 26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상속·이농 농지 미이용 처분의무 ▲주말·체험 영농 농지 대상에서 농업진흥지역 제외 ▲농지 소유·이용 정기 실태조사 및 보고 의무화 ▲농지(관리)위원회 설치 ▲농지처분명령 이행강제금 부과기준 상향 등의 내용을 담은 ‘농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농해수위 전체회의와 법사위 검토, 본회의 의결 등이 남았으나 이변이 없는 한 이대로 농지법 개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소위 LH 사태를 촉발한 그 구멍 숭숭 뚫린 농지법을 손보겠다고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다. 하지만 이번에 개정되는 농지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다. 이번엔 느슨한 규제가 문제다.

6월 3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성명서를 통해 “이번 개정안이 농지가 더 이상 투기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위기감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주말체험영농 목적의 농지 소유 금지의 경우, 이번 개정안에는 제외되었다”고 비판하면서 “농지투기의 온상으로 지적되었던 주말체험영농 목적의 농지 소유를 그대로 방치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주말체험영농은 농지의 소유가 아닌, 농지은행 등을 통한 농지 임대차나 지자체 등의 프로그램 등을 활용하도록 할 수 있다.”면서 “비농업인의 농지 취득 자체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농지 실태조사에 대해서도 ”최근 일정 기간 내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 취득한 농지 등으로 한정되어 있는 등 충분하지 못하다.”면서 “정부는 예산 타령하지 말고 모든 농지에 대한 철저한 실태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끝으로 경실련은 “농지는 건강한 먹거리 제공과 식량안보 및 환경생태 보전의 근간”이라며 “국회 농해수위는 농지가 농민·농업·농촌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적정하게 보존되어야 할 것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하고, 농지법 개정 작업에 임할 것”을 촉구했다.

국회 농해수위는 지난달 26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농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사진=한국영농신문]

규제는 사람의 욕망을 제어하는 순기능이 있다. 약자를 보호하고 공공의 선을 유지한다. 반면, 불필요한 규제는 비효율을 낳는다. 규제 당국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보여주기식’으로 만들기도 한다. 규제를 가장한 기득권의 보호도 있다. 그래서 역대 정부들은 규제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어왔다. 핵심은 ‘좋은 규제는 강화하고, 나쁜 규제는 없애자‘다. 양자를 가르는 기준이 뭘까? 공익을 향한 철학과 비전이 담겨 있느냐, 즉 진정성이 있느냐에 달렸다. 

미국은 헌법까지 고쳐가며 술 먹는 사회를 고쳐보려고 했다. 하지만 범죄단체에 매수된 권력은 공범이 되면서 규제를 무력화시켰다. 법을 만드는 사람 따로, 집행하는 사람 따로, 지키는 사람 따로였다. 효과 있을 리 만무했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음주’라는 표면적 현상을 없애는데 주력한 결과, 부작용만 낳은 규제로 전락했다. 

이번 개정하는 농지법 개정안이 효과를 거두려면 당국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성난 부동산 민심을 비켜가려는 눈속임으론 안된다. 국회는 농지 소유자 기본권 제한, 귀촌귀농 역행 등을 걱정한다. 혹여 농민과 농촌을 위하는 척하며 이미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동료의원이나 친인척들을 비호하려고 하다가는 큰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우리 헌법에 분명히 적혀있든 농자유전의 원칙을 제대로 구현할 좋은 규제는 환영받아 마땅하다. 농지는 농민의 것이어야 옳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국회와 농정 당국에 좀 더 많은 ‘언터처블스‘가 출현하길 기대한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저작권자 © 한국영농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