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농특위(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출범한 지 어언 1년이 되어간다. 위원장이 교체된 것을 기준으로 두 번째 농특위라고 칭한 것임을 밝혀둔다. 그간 타운 홀 미팅을 통해 전국의 농민들을 두루 만나 애로사항을 종합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게 첫번째 농특위(위원장 박진도)의 업적이었다는 평가.

그렇다면 제2기 농특위랄 수 있는 현 농특위(위원장 정현찬)는 지난 1년 동안 어떤 일들을 했을까? 최근 양배추값과 대파값이 대폭 인상된 것은 현 농특위가 하는 일과 관련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농특위는 말 그대로 훈수만 두고 뒤로 빠져있는 훈수꾼 이어야만 하는 걸까? 정권 말이 가까워지면서 농특위의 역할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농특위 전문가들이 문재인 정부의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의견을 청취중이라는 말이 들린다. 탄소중립을 위한 온실가스 배출 대응 민관 협력 시스템을 마련중이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또한 현 농특위는 먹거리 가격 안정을 목표로 8개 과제를 준비중이라고 한다. 이중 대표적인 아이디어가 바로 ‘가격위험 완충제도’ 도입. 이 제도는 쉽게 말해 주요 15개 주요 농산물의 기준가격을 정해놓고, 가격이 폭락할 때 기준가격의 80% 안팎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15개 주요품목은 건고추·마늘·양파·가을배추·대파·양배추·호박·고랭지배추·콩·들깨·고추·참깨·고구마·쌀보리·봄감자 등이다. 품목별 기준가격은 대표적 도매시장의 최근 5개년 가격을 사용하는데, 최고·최저 가격을 제외한 평균을 적용한다. 이 가격위험완충제도 도입이 시행되면 전체 노지 재배면적의 63%를 차지하는 쌀과 15개 품목이 차지하는 24%를 합해 총 87%의 노지재배작물이 가격완충장치 안으로 흡수된다. 이렇게 되면 농산물 유통 시스템은 일거에 안정되는 것일까? 과연 그럴까?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이하 농특위) 정현찬 위원장의 취임식 현장 [사진=농특위]

◇ 농특위, 15개 주요품목 ‘가격위험 완충제’ 도입 검토중

그런데 중요한 게 빠졌다. 농협개혁이다. 농협 개혁은 농업계의 주요 화두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이명박 정권 때까지도 농협개혁은 늘 정권 초반의 화두로 등장했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곤 했다. 시작만 요란하고 마무리가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에서는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농특위)가 앞장서 ‘좋은농협위원회’(위원장 강기갑)를 만들었다. 강기갑 위원장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특별했다. 국민들도 언론도 모두 주목했다. 하지만 거기 까지였다. 출범 초기 눈길을 끌었지만 활동 기간이 종료된 현재까지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다는 게 농업계 안팎의 솔직한 평가다. 사사건건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도 있는 걸까? 농협개혁이라는 화두 앞에선 모든 게 불투명해진다는 건 지난 정권이나 현 정권 때나 마찬가지다.

지난 3월 말,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좋은농협위원회(위원장 강기갑)가 운영기간 종료에 따른 활동 보고 인터뷰를 했다. 이 자리에서 강기갑 위원장은 “좋은농협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진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는 농특위 본회의 1호 의결 안건인 농협중앙회장 직선제가 지난 3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음에도, 부가의결권(3천 명 이상 지역농협 2표)이 반영된 점을 의식한 발언이었을 거라는 게 중론.

강 위원장은 “농협중앙회장 직선제 관련해서 부가의결권 도입이라는 것은 협동조합 정신과 맞지 않는다. 시행령 입법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또한 "농협이 제 역할을 하려면 지역연합회, 품목연합회 체제로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위원장은 또 “차기 대통령의 (농협개혁) 의지가 중요하다”고 아쉬움을 표명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농협 개혁이 차기 정권으로 넘어간 것을 인정한 것이다.

좋은 농협 위원회는 농특위의 위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농특위가 자문조직이 아닌 현안에 대한 기획·조정 권한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어쨌거나 좋은 농협위원회는 지난 2월로 활동을 공식 마무리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농특위 '좋은농협위원회'의 강기갑 위원장 [사진=농특위]

◇ 농협 개혁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안하나 못하나?

최근 농특위의 성과랄 수 있는 것도 발표된 게 있긴 하다. 바로 '국가먹거리종합전략'이다. 국가 단위 푸드플랜이 마침내 공개된 것. 구축 4년 만에 발표된 첫 번째 국가 단위 먹거리종합계획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위원장 정현찬)는 지난달 4월 22일 제8차 본위원회를 열고, 4건의 심의안건과 3건의 보고안건을 서면으로 처리했는데, 이날 심의안건 중 하나가 바로 국가식량계획. 농특위는 먼저 국가식량계획을 ‘국민의 먹거리 관련 국내·외 문제를 대응하기 위한 국가 단위의 범부처 통합 전략’이라고 정의했다.

생산 부문에서는 ▲지속 가능 농어업 ▲로컬푸드 생산 ▲농어민 가공이 목표로 제시됐다. 소비(유통) 부문에서는 ▲공공먹거리 확대 ▲식생활교육 확대 ▲영양·건강관리 ▲공동체 활성화가 목표. 주목할 부분은 먹거리 소비가 생산보다 더 중요한 항목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국가식량계획이 선순환 하려면 안정적인 먹거리 생산기반보다 소비기반 구축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고, ‘지역 내 생산자 조직과 계약재배를 통해 안정적 생산-소비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공공급식, 식품·유통업체 등 발굴’이 목표로 제시된 것이다.

농특위는 지역 내 생산자 중심으로 로컬푸드 판매 품목을 다양화하겠다는 계획 하에 학교·공공급식 공급 확대로 대규모 소비기반을 구축하겠다고 언급했다. 국가식량계획에 공공급식 확대가 명문화된 점이 눈에 띈다. 지난해부터 구축작업이 시작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공공급식 플랫폼’도 포함됐다.

물론 이는 농특위가 제시한 큰 그림일 뿐이다. 이를 바탕으로 관계기관이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워 추진해야만 하는 실행단계가 남아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는 뜻이다.

경상북도가 운영하는 온라인쇼핑몰 '사이소'

◇ 농특위가 그린 큰 그림, 국가먹거리전략...관련법 제정과 실행이 관건

최근 정현찬 농특위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농협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농산물 유통의 가장 좋은 방법은 직거래 방식이라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물론 좋은 말이다. 하지만 듣기에 따라서 농민 스스로 각자도생 하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 하는 추세가 강화되곤 있지만, 농촌에는 엄연히 고령 농민과 소농을 중심으로 한 ‘농산물 유통 약자’ 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상북도에서는 농산물 ‘유통도우미’ 제도를 운영해 남다른 기획력과 추진력을 보여주고 있다. 농산물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산물 유통 약자, 즉 고령농, 소농, 여성농 등 취약 농업인을 도와 농산물 수집에서 판매까지의 유통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경북 23개 시·군 5189개 마을별 유통도우미(마케터)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농산물 유통도우미 제도는 경작면적 0.1 헥타르(ha)이하의 소규모 농가, 만65세 이상 고령 어르신, 여성 농가 등 취약농가를 30가구 단위로 조직해 지원한다. 이를 통해 상품 물류비와 포장재 등 상품화를 지원하고, 온‧오프라인 판매 연결망을 넓혀가는 사업. 현재 경북의 농산물 유통 도우미 운영현황을 보면, 유통 약자를 위한 관계기관의 노력은 필수임을 알 수 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는 경제부총리,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치 자문기구. 하지만 자문기구로만 멈춰서는 안될 중요한 조직이다. 농업과 농촌을 살리자는 원론적인 화두를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지혜와 실행력이다. 그래서 매번 농특위를 바라보는 바깥의 시각은 한결같다. “대통령이 얼마나 애정을 갖고 농특위를 대하느냐에 농특위의 성패가 달려있다”라는 것이다.

남은 기간 동안의 농특위의 활동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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