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릴까? 그런가 보다. 과학적인 설명도 나와 있다. 매운맛은 단맛, 신맛, 짠맛 등과 달리 혀에겐 통증이란다. 그래서 매운 걸 먹으면 통증을 줄여주는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엔도르핀은 모르핀처럼 진통작용이 있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원리로 매운 맛에 스트레스는 녹아내린다.

그렇다면 코로나19와 매운 맛의 관계는?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지만 매운 맛이 코로나19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란 걸 식품기업들의 조사결과로 알 수 있다. 음식평론가들은 ‘코로나 스트레스’를 매운맛으로 풀려는 심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작동중이란 분석도 내놓았다. MZ세대에서는 매운 맛에 대한 소비와 도전이 확산중이라고 진단했다. 유행이 된 것.

때마침 우리 식품의 해외수출, 특히 매운 맛 식품의 수출이 날개를 달았다. 코로나19, 온라인 시장 확대, 한류 확산에 힘입어 우리 농식품 수출이 올해 약 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 김치, 고추장, 떡볶이가 프리미엄 식품으로 팔려나간다는 이른바 신남방 지역(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인도 등)에서 수출은 대폭 증가했다. 수출액이 무려 15억 6천만 달러나 된다. 2위 미국(12억 달러), 3위 중국(11억 4천만 달러)보다도 신남방국가로의 수출액이 더 많다. 놀라운 일이다.

베트남에서 우리 떡볶이의 인기는 상상을 넘어선다. 국내 떡볶이 프랜차이즈업체 D떡볶이의 현지 매장 숫자는 54개나 된다. GS25, 대상, 삼양식품 등 우리나라 식품기업들은 베트남 현지에서 각종 매운 음식 이벤트를 벌이고 떡볶이 현지 공장을 건설중이다. 매운 라면과 컵떡볶이 수출량도 늘리며 우리나라 매운 맛 전파를 위해 땀 흘리고 있다.

매운 맛 음식의 폭발적 유행은 전체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 현상일까? 그래 보인다. 특히 식품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의 매운 맛 유행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에 대한 비교가 흥미진진한 이유다.

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매운 맛의 세계화를 가늠해볼 수 있는 한국 소스류 (매운 소스류 포함)의 수출 잠재력은 중국, 미국, 러시아 순으로 높았다. 일본이 순위에서 빠진 건 일본은 매운 맛에 서서히 눈을 뜨는 ‘매운맛 어린이’ 단계이기 때문. 우리나라 매운 맛 소스가 일본시장에 안착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 식품의 해외수출, 특히 매운 맛 식품의 수출이 날개를 달았다. 코로나19, 온라인 시장 확대, 한류 확산에 힘입어 우리 농식품 수출이 올해 약 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사진=픽사베이]

◇ 신남방국가, 한국식품 수출 1번지 등극... 'K-hot food' 열풍, 어디까지?

■ 한국 = 우리나라에서는 라면, 떡볶이에 이어 아이스크림도 매운 음식 카테고리에 입성했다. 물론 외국에서는 매운 요거트와 매운 맛 아이스크림이 오래전부터 출시돼 인기몰이중이다. 국내에선 '찰떡아이스 매운 치즈떡볶이'라는 제품이 최근 시장에 나왔다. 롯데제과 제품. 아이스크림에 할라피뇨 고추 성분을 포함시켜 매운 치즈떡볶이 맛이 나게 하는 비법을 구사했다는 설명. 빙그레도 매운 맛 붕어싸만코를 출시한다고 운을 띄웠다. 매운 불닭소스가 들어갈 예정이란다.

식품기업 대상은 '청정원 순창 100% 태양초고추장'을 매운 정도에 따라 4단계로 나눠 생산.판매하기 시작했다. '불타는 매운', '매운', '찰고추장', '덜 매운' 등 4단계다. ‘불타는 매운’은 매운 맛 마니아들에게도 호평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대상측의 기대. 또한 풀무원식품도 떡볶이 제품을 매운맛에 따라 1∼4단계로 재분류해 판매중이다. 가장 순한 1단계에서 가장 매운 4단계까지 순도높은 매운 맛 떡볶이가 준비돼 있다.

해외에서 더 인기 높은 매운맛 라면의 대표주자 '불닭볶음면(삼양식품)'도 건재하다. 지난해 매출이 약 4100억원인데 수출이 3100억원이나 됐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불닭소스, 불닭마요 등 소스의 매출을 늘리는 한편, 중국과 동남아, 일본에서 더욱 불닭볶음면 수출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 사천지방 향신료인 '마라'를 넣고 끓인 '마라탕'과 ‘마라탕면’의 인기는 최근 2~3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폭발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 마라 치킨도 잘 팔린다.

삼양식품은 불닭소스, 불닭마요 등 소스의 매출을 늘리는 한편, 중국과 동남아, 일본에서 더욱 불닭볶음면 수출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사진은 불닭볶음면 시리즈와 상품 캐릭터 [사진=삼양식품]

■ 중국 =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식품수출정보(KATI) 자료를 보면, 중국은 고추 등을 활용한 매운맛 조미료가 전체 조미료의 31%를 차지하고 있는 매운 맛 애호국이다. 또한 중국은 한국, 일본, 동남아, 멕시코에 고추를 수출하는 고추 수출국이다. 중국의 한 해 고추 생산액은 약 700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12조원에 이른다.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서도 매운 맛 소스 시장이 확장되고 있다. 중국의 즉석훠궈( 중국식 샤브샤브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는 전년 대비 520% 성장했고, 마라투토우(麻辣兔头) 소비는 11배 증가했다. 마라탕은 직장인, 학생들의 저녁, 야식 메뉴로 배달음식 플랫폼에서 인기 검색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중국 내 매운 맛 소스( 칠리 소스) 시장 규모는 2018년 약 70억 위안, 우리 돈 약 1조 2천억원. 관세청의 무역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4~ 2018까지 중국의 한국산 장류 수입 품목 중에서 고추장의 수입액과 수입중량이 가장 높은 12% 정도의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2018년에 총 1867톤의 한국산 고추장이 중국에 수출됐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고추장은 맛과 가격 부분에 있어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관광 및 한국 음식점을 경험하고 고추장을 구매한 중국 소비자들의 경우 한식당에서 경험한 음식 맛과 유사한 부분을 가장 일반적인 만족 포인트로 꼽고 있다고. 한국의 매운맛은 타 국가 제품들에 비해 인지도가 높아 중국인들의 성별과 연령에 구애받지 않는 특징을 지닌다. 

특히, 한국 특유의 달달하고 매콤한 맛은 대다수 중국인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이에 한국식품업체는 한국 매운맛의 이러한 장점을 잘 활용하여 중국의 매운맛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볼 필요가 있다고 코트라와 aT는 권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 일본, 동남아, 멕시코에 고추를 수출하는 고추 수출국이다. 중국의 한 해 고추 생산액은 약 700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12조원에 이른다. [사진=농우바이오]

■ 일본 = 특이하게도 일본의 수입 고추 중 90%는 중국산이다. 일본 소비자들은 매운맛을 즐기지 않는 이미지가 강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일본 현지의 매운맛 식품 수요는 매년 꾸준히 증가 추세다. 2018년부터는 얼얼한 매운맛을 중심으로 한 ‘4차 매운맛 유행’이 진행되고 있으며, 향후 일본 식품시장에서도 매운맛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4차 매운맛 유행(2018년~현재)은 고추뿐 아니라 ‘얼얼한 매운맛’을 내기 위한 산초, 카레, 후추, 유자후추 등의 향신료 사용이 특징. 디톡스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생 향신료 수요도 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마활(얼얼한 매운맛을 적극적으로 섭취하는 것을 의미)’, ‘스파이스 카레 붐’ 등 매운맛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소비자도 증가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일본인이 좋아하는 매운 요리 TOP 10중 김치·한식 관련 요리가 3개나 차지하고 있다는 것. 일본인이 좋아하는 매운 요리로는 1위 카레, 2위 마파두부, 3위 탄탄면 순으로 나타났으며, 김치돼지볶음, 김치나베, 순두부찌개 등 한국음식이 순위 안에 들어있다. 

일본에서는 얼얼한 매운맛과 함께 김치 요리, 순두부찌개 같은 한국적인 매운맛을 선호하는 소비자도 함께 증가중이다. 따라서 일본의 소비 트렌드에 맞는 상품 제안을 통해 현지 시장에 접근한다면 현지 시장 진출 및 수출 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게 코트라와 aT의 제언.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은 오늘도 고추, 마라, 김치, 고추장 등을 앞세워 ‘매운 맛 3국지’를 써내려가는 중이다.

이광조 기자  lgj@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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