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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대란‘의 딜레마... 농민이 부자되면 서민은 가난해질까?디지털농업, 해법으로 주목... 유연한 태도와 혁신적 기술로 난제 풀 리더십 기대

한 남자 고등학생이 있다. 날씬하고 큰 키의 멋진 몸매를 원한다. 우선 먹는 양을 줄여서 살을 빼려고 한다. 그런데 성장기 나이에는 잘 먹어야 키가 큰다. 날씬해지고 싶기도 하고 키도 커야 한다. 먹으면 살이 찌고 안 먹자니 키가 안 큰다.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딜레마(Dilemma)는 그리스어 di(두 번)과 lemma(제안·명제)의 합성어에서 유래했다. '두 개의 제안'이라는 뜻으로 진퇴양난의 의미이다. 여러 가지 사양(옵션) 중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저서 <소품과 단편집>에서 딜레마 상황을 우화로 설명했다. 고슴도치들이 있다. 날이 추워지니 서로 밀착해서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삐죽한 가시 때문에 가까이 할 수 없다. 가만히 있자니 춥고 붙자니 따갑다. 인간의 애착 관계는 한계가 있어서 적절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인간관계의 해법'이라고도 읽힌다. 우리가 만나는 딜레마 상황의 해법이 대개는 이렇다. 애매하지만 중간 지점을 취한다. 어정쩡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런 딜레마는 농업과 국민후생 사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면 농부는 돈을 번다.(물론 자연재해 등으로 생산량이 극단적으로 적어지면 농부도 돈을 못 번다) 반면 소비자는 물가가 올라 가계에 부담이 된다. 식품 가격이 높아지면 서민불만이 커진다. 그러면 정부는 외국에서 싼 값에 수입해 농산물 가격을 낮춘다. 매출액은 떨어지니 농부는 가난해진다. 농사를 지어도 돈을 못 버니까 생산을 포기하는 농부가 많아진다. 그러면 생산량이 줄어서 가격은 올라간다. 그 다음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딜레마의 무한 반복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년 새 반복하는 계란 대란이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딜레마의 대표적인 사례가 수년 새 반복하는 '계란 대란'이다. [사진=픽사베이]

가장 최근의 일은 2017년에 발생했다. 그해 1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등으로 30개 들이 계란 한판 가격이 1만원까지 올랐다. 계란을 많이 사용하는 카스텔라, 머핀 등을 만드는 제빵업체들은 생산을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이러자 정부는 무관세로 미국, 스페인 등을 통해 계란과 계란가공식품을 수입했다. 결국 9월에 가서야 5천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도 같은 일이 반복할 조짐이다. 작년 11월 27일 전북 정읍 오리농장에서 2년 7개월 만에 AI가 발생했다. 이후 1월 27일 현재까지 닭 1948만 마리를 살처분 했다. 이 중 산란계는 1165만 마리에 이른다. 알을 낳을 닭이 죽었으니 공급이 부족해지고 가격은 오르기 시작했다. 10개 들이 특란 기준 소매가격은 2254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7% 상승했다. 30개 들이로 전환하면 7천원에 육박한다. 시장에서는 곧 1만원을 깨고 2017년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소비자에게 값싼 농산물을 공급해야 하는 정부는 설 명절을 앞두고 계란 가격 낮추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급기야 기본관세율이 8~30%인 신선란, 계란가공품 등 8개 품목에 대해 긴급할당관세를 0%로 낮추고 총 5만톤 한도로 금년 6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수입한다고 밝혔다. 특히 신선란은 설 전에 필요한 물량에 대한 수입을 추진한다는 방침 아래, 지난 26일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를 통해 60여 톤이 공매를 통해 시장에 공급했다. 수입 한도를 5만 톤으로 정했으니 앞으로 6월까지 월평균 1만 톤 규모의 수입 계란이 국내에 유통될 수도 있다. 계란 가격을 낮추겠다는 농정당국의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

이렇게 되자 양계업계는 반발에 나섰다. 대한양계협회는 지난 19일 성명서를 발표해 “국내산 계란 폐기하고 외국 계란 수입하는 정신 나간 정부”라고 몰아붙이면서 “방역정책 실패를 소비자와 농가에 전가하는 농림축산식품부는 즉각 해체하라”고 주장했다. 협회가 문제로 지적한 것은 방역당국의 ‘3km 내 살처분’ 조치다. 협회는 “정부가 방역의 편의성을 위해 500m 내 살처분 의무 조항을 3km로 확대하면서 멀쩡한 닭들이 폐기처분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짧은 기간 동안 전체 산란계의 15% 이상이 사라지면서 계란 가격 상승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서로의 이해가 충돌하는 모습이다. AI를 막고 물가도 잡자니 양계농가는 억울하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자니 가계·외식·가공업체들의 원성이 높아진다. 농민이 돈을 벌려면 서민은 농산물을 비싼 값을 주고 사먹어야 할까? 반대로 서민이 값싼 농산물을 먹기 위해 농민은 항상 가난해야 할까? 전형적인 딜레마다.

농민이 돈을 벌려면 서민은 농산물을 비싼 값을 주고 사먹어야 할까? 반대로 서민이 값싼 농산물을 먹기 위해 농민은 항상 가난해야 할까? 전형적인 딜레마다. [사진=픽사베이]

이번 사태의 근본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역시 수급 불안이다. 가격이 떨어지면 생산이 줄고, 생산이 줄면 다시 가격이 오르는 농산물 유통의 약한 고리가 어김없이 드러났다. 지금이야 계란 가격이 눈 깜짝 할 사이에 튀어 올랐지만, 살처분 농가에 병아리가 입식되고 성체가 되는 8~9월이면 가격 폭락을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 돼지, 소 등 축산물을 비롯해 양파, 마늘, 배추 등 채소류에서도 어김없이 발생하는 수급-가격 사이클은 마치 자연법칙과 같다. 여태 이런저런 방법을 써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다. 

농산물 수급은 생산과 수요의 ‘예측’이 관건이다. 지금까지 방식으로는 각종 변수에 대응할 수 없다. 핵심 정보가 개별 농부의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정보의 양과 처리 속도가 제한적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변수에 개별 농가의 경험과 지식으로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때문에 최근 디지털농업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의 장점은 정보를 숫자로 만들어서 계산하고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데 있다. 이른바 데이터·네트워크·AI(인공지능) 등 디지털기술을 활용하면 농업계의 큰 숙제인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난 20일 열린 ‘농업전망 2021’에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박지연 연구원은 ‘농업의 미래, 디지털 농업’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디지털 농업은 생산, 유통, 소비 등 농업활동의 전 과정에서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라면서 “생산-유통-소비의 농업의 전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자원 사용의 최적화와 환경성 증대 등을 함께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처한 많은 딜레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모든 문제를 All or nothing (전부 아니면 전무)라고 보는 시각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값싼 농산물을, 농민에게 적정한 이윤을 주는 건 아직 딜레마다. 모든 해법은 처음엔 ‘고슴도치의 체온유지법’처럼 어정쩡해 보인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 한 발짝 물러서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면, 분명 길은 있다. 유연한 자세와 혁신적 기술로 한국 농업의 딜레마를 풀어줄 리더십을 기대한다.

데이터·네트워크·AI(인공지능) 등 디지털기술을 활용하면 농업계의 큰 숙제인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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