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의 확진자 수가 연일 천 명을 넘나들고 있다. 곧 전면 통제를 의미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적용할지 방역당국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바이러스는 사람에게만 위협적인 게 아니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가축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다. 12월 16일 현재, 전국의 가금농장에서 15건의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닭·오리·메추리 등 가금류 살처분도 벌써 558만 9천 마리에 달한다. 여기에 한동안 잠잠했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걸린 야생멧돼지가 늘어나고 있다. 12월 14일 현재 총 883건이 발견됐다. 확산 저지를 위해 방역당국과 축산 농가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사람과 가축 모두 힘든 고비를 넘고 있다.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노아의 방주가 있다면 얼른 들어가 피하고 싶은 요즘이다. 이런 공포 상황이면 어김없이 기상이변, 핵전쟁 등으로 지구가 초토화되는 재앙을 맞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이 나오기도 한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와중에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면, 재앙이 지나가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뭘까? 

바로 식량을 생산하는 일, 그 중에서도 씨앗을 심는 일이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대부분의 생명이 멸절했다면 도대체 씨앗은 어디서 구할 것인가? 이에 대비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종자를 보관해둘 안전한 장소를 마련해 두었다. 대표적인 것이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Svalbard Global Seed Vault)'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 (Svalbard Global Seed Vault) 외관 [사진=노르웨이 정부 웹사이트]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 불리는 이 저장고는 북극점에서 약 1300km 떨어진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의 스피츠베르겐 섬에 건설됐다. 2006년 착공해 2008년 2월 28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노르웨이 정부가 소유권을 갖지만 이곳에 저장된 종자에 대한 권리는 종자를 제공한 국가가 갖는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는 산속 130m 갱도 끝에 450만 점을 보존할 수 있는 3개의 장기저장고를 갖추고 있다. 각종 재난과 재해에 견딜 수 있게 설계돼 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보낸 약 100만점의 종자가 저장되어 있다. 저장고의 온도는 영하 18도로 유지해 종자의 발아를 막고 신진대사를 최대한 늦춘다. 만일 저장고의 전기가 끊기거나 발전 시설에 고장이 나더라도 영구동토층에 위치해 있어서 영하 3.5도의 저온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시설이 있다. 바로 농촌진흥청이 운영하고 있는 ‘농업유전자원센터’다. 이 시설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로부터 2008년 ‘세계종자안전중복보존소’로 지정받았다. 현재 다른 나라와 기관에서 기탁한 총 2만 7325점의 종자를 안전하게 보존해주고 있다. 

2008년에는 세계채소센터와 ‘유전자원 안전중복보존’ 협약을 맺기도 했다. 지난 11월에 이 협약을 갱신하고, 2024년까지 단계적으로 세계채소센터의 모든 유전자원 456종, 6만 5천 점을 장기적으로 보존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우리도 현대판 노아의 방주가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농업유전자원센터는 전북 전주와 경기 수원 2곳에 국제 규격의 첨단 저장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온‧습도 유지를 위해 벽은 3중‧바닥은 5중으로 설계되어 있다. 리히터 규모 7.0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으며, 단전에 대비해 비상 발전기도 갖추고 있다. 

저장고는 보존기간에 따라 중기저장고(30년), 장기저장고(100년), 특수저장고(반영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저장고에는 해외 유전자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식물유전자원을 저장한다. 현재 종자 1599종, 23만 7872점과 영양체 1488종, 2만 6088점 등 총 3087종, 26만 3960점이 보존되어 있다. 지구 최후에 날에 대비한 생명 창고라고 할 만 하다.

농업유전자원센터 내부 [사진=농촌진흥청]

전문가들은 앞으로 올해 같은 전염병의 대유행이 앞으로도 반복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는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들에게 위협이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서식지는 파괴되면서 야생동물은 인간에게 더 가까이 다가온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질병도 사람에게 옮긴다. 식물도 살기 힘든 건 매한가지다. 가뭄과 폭우 같은 기상 이변 때문에 수확량도 줄어든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인류는 생존을 위해 상대를 죽이는 참극을 벌였다. 

게다가 첨단 과학을 이용해 대량 살상무기를 만든 인류는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전염병과 기상이변, 식량 부족과 경제난이 인간의 탐욕과 맞물리면 인류의 멸절이라는 대재앙을 재촉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종자저장소는 이러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최후의 보루’다. 그나마 양심이 있는 ‘노아’들이 만든 피난처인 셈이다.

성경에서 대홍수와 노아 이야기는 왜 나왔을까? 태초부터 가지고 있던 인간의 탐욕은 신의진노를 가져오고 재앙을 만나게 된다는 그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다. 바로 살아남은 자, 미래를 준비한 자,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희망의 스토리다. 

364일간 내린 비로 세상이 물에 잠겼던 어느 날 노아는 까마귀와 비둘기를 배 밖으로 날려 보냈다. 비둘기가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왔다. 물이 내려가고 땅이 드러났다는 증거였다. 일주일 뒤, 방주에 있던 생명들은 그제야 뭍으로 나올 수 있었다. 신은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그 징표로 무지개를 보여주었다. 욕망의 절제로 재앙 후 살아남은 자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얼마 있으면 예수가 탄생한 성탄절이다. 원래는 인류가 짊어졌던 원죄(原罪)로부터의 구원을 기념하는 날이다. 소란스러웠던 사람들의 세속적인 축제로 참 의미는 잊혀진지 오래다. 올해는 제발 각자의 집에서 차분하게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길 권한다.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의 끝을 전해줄 반가운 비둘기와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될 무지개를 기도하면서. 

힘든 한 해를 보낸 독자 여러분에게 위로와 응원의 말씀을 드린다. 메리크리스마스, 그리고 희망찬 새해를!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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