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초 중국 어느 도시에서 독감이 유행한다는 소식이 돌았을 때 한국인 대부분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1월말 구정을 지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코로나 19로 이름 붙여진 대유행병이 세계로 퍼졌다. 정부는 즉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선 진단키트가 필요했다. 다행히 보건당국의 발빠른 대처와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활약으로 대응이 가능했다. 그 다음엔 마스크.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누구나 약국에서, 인터넷에서 손쉽고 싸게 살 수 있었던 게 마스크 아니었던가? 당연히 순조롭게 조달 가능하리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마스크 대란. 전 국민이 쓰기엔 국내 생산 능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중국에서 수입해서 쓰는 핵심 원부자재 MB필터는 품절 상태였다. 하나에 3백 원 남짓했던 마스크 도매가가 2천 원 이상으로 7배 이상 급등했다. 그나마 구하기도 어려웠다. 약국마다 긴 줄로 장사진을 쳤다. 

결국 정부와 삼성 등 기업이 나서 원자재와 제작 설비를 구해왔다. 의약품으로 등록해 약국을 통해 개인 구매한도를 두고 판매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배급제’가 세계 10위 자본주의 경제대국에서 실행되던 순간이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은 허언이 아니었다.

먹거리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사다 먹는 우리로써는 해외 식량 가격 동향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수급이 불안하면 식량안보와 국내물가 관리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픽사베이]

마스크와 같이 평소에는 소중한 줄 모르다 부족해지면 당황할 게 또 있다. 바로 먹거리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남긴 음식물 처리에 골치 아파할 정도로 먹을 걱정은 안한다. 주식인 쌀은 자급률이 100%에 가깝다. 최근에는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소비가 줄어 재고가 쌓이고 있다. 보관료를 걱정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면 상황은 다르다. 쌀을 제외한 나머지 곡물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곡물자급률’은 2019년 기준 21.0%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콩과 옥수수는 26.7%, 3.5% 수준이며 밀은 고작 0.7%에 불과하다. 채소와 육류, 사료 등을 모두 합친 ‘식량자급률’도 45.8%다. 먹거리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사다 먹는 우리로써는 해외 식량 가격 동향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수급이 불안하면 식량안보와 국내물가 관리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 식량 시세가 10월 들어 급등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엔 식량기구(FAO)가 발표한 10월 ‘세계식량가격지수’가 지난 9월(97.8포인트) 대비 3.1% 상승한 100.9포인트를 기록한 것. 올해 5월 91.0포인트로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 상승 추세다. 주요 원인은 곡물시장의 불안이다. ‘곡물가격지수’가 9월(104.0포인트)보다 7.3% 상승한 111.6포인트 기록했다. 이는 작년 동월 대비 16.6%나 상승한 수치다. 

FAO에 따르면, 특히 설탕과 유지(식용기름) 가격 상승이 심상치 않다. 9월(79.0포인트)보다 7.6% 상승한 85.0포인트 기록했는데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9.3% 상승했다. 주요 생산국인 브라질·태국·인도에서 강수량 저하로 생산 감소가 전망된게 주요 원인이다. 유지류는 9월(104.6포인트)보다 1.8% 상승한 106.4포인트, 전년 동월 대비 26.5% 상승하며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팜유는 국제 수요는 높으나 주요국 생산량이 예상보다 적을 것으로 전망되며, 대두유는 남미의 공급량이 계속 저조했던 점이 원인이 됐다. 이외에 밀은 건조한 기후로 인해 유럽·북미·흑해 지역에서 겨울밀 작황이 좋지 않아 수출 물량이 감소했지만 국제 수요가 높아 가격이 상승했다. 옥수수는 중국이 수입을 크게 늘린 반면, 미국 재고량 감소, 브라질·우크라이나의 수출 감소 등의 원인으로 가격이 상승했다. 

우리 정부도 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김용범 차관은 지난달 27일 열린 ‘제 13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국제곡물 가격 상승세가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까지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다만, “남미 등 주요 생산지의 기상 여건이 좋지 못하고, 중국을 중심으로 곡물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차관은 “정부는 ‘국제곡물 위기대응 매뉴얼’을 토대로 국제곡물 가격 상승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국제곡물 수급 상황반을 운영하여 점검을 강화하고, 민간 전문 업체의 해외 공급망 등을 활용하여 곡물의 안정적 확보에 중점을 두겠다.“고 덧붙였다.

연도별 ․ 품목별 식량가격지수 [자료=FAO 한국협회]

이와 관련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도 지난 7월 ‘해외 곡물 도입 정책 진단과 개선방안’ 연구를 통해 식량위기 대응 매뉴얼 재설정과 민간 중심의 조달체계 구축을 주장한 바 있다. 특히 눈에 띌 만한 것은 위기 대응 매뉴얼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대목이다. 

연구 책임자인 박성진 부연구위원은 반입 명령을 통한 국내 도입뿐만 아니라 이용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위기 대응 매뉴얼에 포함하여 실제 위기 발생 시 실효성 있는 대응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는 위기 경보 발령 단계를 ‘안정’, ‘주의’, ‘경계’, ‘심각’ 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안정’단계를 ‘평시’와 ‘관심’ 단계로 구분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따르면 ▲‘평시’에는 안정적 곡물 확보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의 지속적 추진과 국제 곡물시장 동향 및 전망 모니터링을 병행한다. ▲‘관심’단계는 국내 곡물 수급에 차질은 없으나 국제 곡물시장의 수급 불안감이 고조되는 상황으로 규정하고, 정부 부처·유관기관·곡물 공급자·수요자로 구성된 곡물 수급 비상대책본부를 구성한다. ▲‘주의’ 단계에서는 콜옵션 구매 검토를, ▲‘경계’ 단계에서는 수입물량 및 긴급 수입선 확보, 음식물쓰레기 최소화 등의 조치를 취한다. ▲‘심각’ 단계에서는 가격을 통제하고 식량의 배급 조치를 취하는 등 다양한 수단을 강구한다.

KREI의 박성진 부연구위원이 제시한 모델을 보면 국제 식량 위가가 최악으로 치닫게 되면, 마스크 대란 때처럼 배급제로 먹거리를 배분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실제 상황이라면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하지만 유비무환이 말처럼 쉽지 않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마스크로 그 난리를 겪은 것이 불과 8~9개월 전 일이다. 평소와 달리 중국으로부터 마스크 완제품도, 원부자재도 얻을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국민의 생명과 관련해서, 식량과 마스크와 그 차원이 다르다. 앞으로 먹거리 문제는 물가관리 차원이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할지 모를 일이다. 핵심은 해외수급 방식의 다변화는 그것대로 하되, 근본적으로 자급률 높이는데 있다. 그렇다면 이는 ‘식량난‘에 맞설 농민들의 몫이다. 바야흐로 ‘농림축산식품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저작권자 © 한국영농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