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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문학] 강희진 관장의 馹迅隨筆(일신수필)두 번째 토종 이야기, "홀아비 밤콩은 그리움이다." (2)
한국토종씨앗박물관 강희진 관장


"어르신은 왜 홀아비 밤콩을 찾는데요?"

"미안해서 그렇지. 마치 내가 없애버린 것 같잖어. 나두 죽을라나 보네. 옛 밥맛을 찾는 거 보니… 요즘은 서울 간 늙은 친구들이 가끔 그 콩을 찾네 그려."

혹시 자신 때문에 홀아비 밤콩이 없어진 것은 아닐까 미안해하는 박광태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몇 알 안 되는 콩을 가지고 포천으로 갔다. 전화를 한 분을 만나기 위해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미리 연락을 했는지 전 씨 성을 가진 아버지라는 분이 미리 와 있었다. 그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어버이날 행사장에서 마신 술 한 잔에 벌써 불콰하게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맞어! 이게 홀아비 밤콩이지."

그는 홀아비 밤콩이 마치 자신들을 닮았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6,25의 아픔이 있었다. 포천은 6.25 이전과 이후의 경계가 달랐다. 남한에 기대면 북쪽에서 죽이고, 북쪽에 기대면 남쪽에서 죽이고 남한과 북한 사이에 등이 터진 그곳 사람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이 마치 홀아비 밤콩이 등 터진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콩의 등 트임은 홀아비 밤콩의 특징이었다.

"그거 다 우리 집에서 퍼진 거여."

그가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할머니 때문이었다. 아니, 그 이전부터 심었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동네 사람들이 다 심었는데, 일본 놈들이 장단콩을 만들어 강제로 심어 가져갈 때 홀아비 밤콩은 이미 없어졌다는 것이다. 하여간 그 때도 자기 할머니는 꿋꿋이 심었다는 것이다. 독립운동이 별거 있냐는 것이다. 못 배운 사람들이 하는 거야 내거 지키는 게 독립운동이지. 뭐! 옆에 서 있던 따님들이 싱거운 아버지의 허세에 웃었다.

그 후 해방이 되자 다시 콩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박광태 할아버지 말 대로면 ‘임자 없는 밭에 돌피 성하듯’ 갈아먹을 거 없는 포천 땅에 그냥 무지로 퍼져나갔던 콩이 홀아비 밤콩이었다고 했다. 그 씨알이 바로 할머니에게서 나간 것이 아니겠냐고 강변하고 있었다. 전 씨 할아버지의 과장되고 흥분된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만큼 우리가 가지고 간 홀아비 밤콩을 보더니 심장이 쿵쾅댔던 것이다.

"그래, 죽은 아내 생각이 날 때마다 홀아비 밤콩이 드시고 싶다면서요?"

얼른 드리고 다른 곳으로 수집을 가려고 이야기를 서둘렀다. 그러나 그는 말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셨다. 그러니까 그는 젊은 시절 군대 군무관이었는데, 농사를 짓던 시어머니로부터 받은 종자를 며느리가 이어받아 심기 시작한 콩이 바로 홀아비 밤콩이었다. 늙은 시어머니가 유독 밥밑콩으로는 홀아비 밤콩을 찾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다시 신품종이 들어와 바람이 불자 사람들이 또 다시 없앴지. 난 그때 마누라가 왜 그렇게 홀아비밤콩에 매달리나 이해가 가지 않았지. 그렇게 우리 마누라가 근근이 심을 때 사람들에게 많이 나눠줬지. 손이 헤펐거든."

그러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군무관을 그만두고 농사일을 시작하며 가을이면 타작 기계를 사서 포천, 연천, 파주 지역을 돌아다니며 콩 타작을 다녔다. 당시엔 포천지역에 콩 바람이 불어 모든 사람들이 신품종을 심기 시작했으니 타작하는 일도 하나의 직업이 되었다. 그리고 삯으로 받은 것이 모두 콩이었다. 그러니 콩이 아쉬울 리 없던 그는 어머니도 돌아가셨고 해서 부인에게 콩을 심지 못하게 했으나 종자를 팔면 또 어디엔가 두었다가 심고, 없애면 또 찾아서 심었다 한다. 어머니는 남길 게 없어서 먹성을 유산으로 남기셨나 했단다.

그렇게 하길 십 수 년, 아내는 얼마 전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떴다고 한다. 때맞춰 홀아비 밤콩도 없어졌다고 한다. 요즘 들어 지독하게 아내가 생각나는 데, 그 앞에 꼭 홀아비 밤콩이 앞서 생각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남긴 것은 먹성이 아니라 들치근한 품성을 가진 아내와 홀아비 밤콩에서 풍기는 맛에서 오는 그리움이었던 것은 아닐까.

"많이는 못 드리니 이걸 가지고 올해 심었다가 가을에 바심해서 드세요."

뭐. 혹시 알아. 부인이 헤프게 종자를 나눠줄 때 벌말 박광태 할아버지에게 준 콩이 지금 이유순 할머니께 가고, 다시 박영옥 할머니에게로 이어져 내게로 왔는지. 그리고 그 콩이 다시 그에게로 가는 것은 어쩌면 홀아비 밤콩은 연어를 닮았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에게 기쁜 마음으로 돌려주었다.

그는 지금 그 그리움으로 무엇인가 또 꿈을 꾸고 있었다. 홀아비 밤콩을 통해 지역의 특산물을 만드는 꿈을 꾸고 있었다. 홀아비밤콩. 그 이름에서 오는 뉘앙스 자체가 그리움이다. 콩 이름이 홀아비라니! 대체 이 이름이 어디서 왔을까? 대개 우리 선조들은 씨앗에 이름을 붙일 때는 힌트가 역력하다. 이름 붙이는 이유가 단순했는지, 아니면 후손들이 잊기 쉬워 부르기 쉬운 이름을 붙였는지 이름을 들어만 봐도 씨앗을 유추할 수 있는 이름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홀아비밤콩이란 이름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토종을 지키는 사람이나 수집을 하는 사람이나 그 이유를 모른다. 누구는 콩대가 두터워 하나만 심으니 그렇게 부른다고 하고, 누구는 꼬투리가 홀로 있어 보여 그렇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그럴듯한 것은 없다. 그러고 보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신품종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 온 이유신 할머니가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린 홀아비 밤콩에는 다만 그 콩을 잃어버린 사람의 외로움만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한국영농신문  agrienews@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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