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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발상] 퍼펙트 스톰 만난 농민들, 생명 먼저 구해야냉해, 코로나, 장마와 홍수에 태풍까지... 농업소득 감소 대책 없는 예산안에 우려

‘퍼펙트 스톰’은 위력이 크지 않은 태풍이 다른 자연현상을 만나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되는 기상 현상을 말한다. 완벽한 폭풍이라는 뜻으로 조지 클루니가 주연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미국 북동부 연안의 메사추세츠주 어촌 마을이 배경이다. 영화에서는 세이블섬 폭풍, 캐나다 한랭전선, 허리케인이 합쳐지면서 거대한 폭풍, 퍼펙트 스톰이 됐다. 차갑고 거친 바다에서 퍼펙트 스톰을 만난 미국 어부들의 이야기다.

영화 속 어부들이 작은 배를 타고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파도로 돌진하는 모습이 꼭 2020년 대한민국의 농부들과 닮았다. 묘한 데자뷰다. 올해 초 중국에서 역병이 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만해도 이럴 줄은 몰랐다. 씨를 뿌리고 과일 나무는 수분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추위가 찾아왔다. 점차 퍼지는 코로나로 학교는 문을 닫고 급식에 쓰일 농산물은 처치 곤란이 됐다. 재난 지원금과 꾸러미로 어찌어찌 한 고비 넘겼나 싶었는데 역사상 최장기간의 장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무려 54일 동안 비가 내리거나 흐린 날이 계속됐다. 집중호우도 농경지를 때렸다. 2만7466ha의 농경지가 물에 잠기는 등 피해를 입었다. 태풍도 연달아 두 개나 한반도 인근으로 지나갔다.

기상 이변과 자연 재해는 농가들의 숙명이라 치지만 올해 유난히 농가를 힘들게 하는 건 코로나 19다. 외국인 노동자 입국이 어려워지니 일할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소비 위축으로 소비 감소도 걱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농가 소득은 작년보다 줄어들었다. 특히 농사를 지어 벌어들이는 농업소득은 크게 줄어들었다. 농사해서 돈을 벌지 못하니 다른 일을 하거나 가족에게 도움을 받거나 정부의 지원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이다. 이게 작년 수준일진데, 퍼펙트 스톰을 만난 올해 통계는 과연 어떻게 나올까? 걱정이 앞선다.

좀 더 자세히 보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 8월 24일 ‘2019년 농가경제 실태와 시사점’이라는 자료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2019년 농가소득은 전년보다 2.1% 감소했다. 농업소득이 20.6%나 감소한 게 주된 원인이 됐다. 참고로 농가 소득은 농사를 해서 올린 수입인 ▲‘농업소득’, 자기 농사 외에 제조·숙박업 등 사업을 겸하거나 노동을 해서 번 ▲‘농외소득’, 지인이나 정부가 지원해 준 돈인 ▲‘이전소득’으로 나뉜다. 농업소득이 준다는 것은 농사를 지어서 번 돈이 감소됨을 의미한다. 작년에는 쌀변동직불금 지급 지연 등의 특수한 사유가 있긴 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수급 불균형에 의한 가격 하락과 재해로 인한 품위 저하로 제 값을 받지 못해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도 여전했다.

영화 <퍼펙트 스톰>은 잘못된 시점에, 잘못된 장소에 있던 어부들의 비극을 그렸다. 집채만한 삼각파도가 넘실대는 망망대해에 던져진 게 대한민국 농업인들과 비슷한 처지다. [사진=픽사베이]

연도별 추세를 보면 농가 소득 구조의 미래가 보인다. ▲농업소득 비중은 2004년 41.6%로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24.9%까지 줄어들고 있다. ▲농외소득 비중은 2006년 31.1%로 저점을 기록한 뒤 증가 추세를 보였고, 2010년부터는 계속 40%를 넘어 2019년 농외소득 비중은 42.1% 달했다. ▲이전소득 비중은 2003년 7.6%에서 2019년 27.3%로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2019년에는 최초로 이전소득 비중이 농업소득을 넘어서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갈수록 농업을 해서 돈을 벌긴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농가는 농사 말고도 다른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아니면 정부가 보조금으로 소득 부족분을 메워줘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2021년도 농업 예산을 보면 이상한 데가 있다. 농가소득·경영안정 분야의 예산이 3237억 원(7.4%)이나 감소했다. 대신 혁신성장·체질강화에 3212억 원(9.5%), 농촌복지·지역개발에 1343억 원(11.2%)이 각각 증액됐다. 수치로만 놓고 보면 농가소득 보전은 줄일테니까 대신 농가 스스로 혁신하고 체질을 강화해서 농업소득을 늘리라는 주문으로 읽힌다. 물고기 대신 낚시하는 법을 알려준다면 감사할 일이다. 그린뉴딜과 디지털뉴딜로 국가 경제를 대전환해서 경쟁력을 갖추자는 데 농업도 동참해야 한다는 데 시비 걸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농가 소득 중 농업소득은 줄고 이전 소득은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는 코로나라는 복병과 함께 역대 최장의 장마와 홍수 등 기상이변의 피해가 어려움을 키우고 있다. 농가 소득이 작년보다 오를지 내릴지는 남은 기간의 기상상황과 소비에 달려 있지만 전망은 어둡다. 한국경제와 세계경제가 박살이 났다는데 농업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농가 소득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어느 해보다 높다. 이런 와중에 농가소득과 경영안정에 배분될 예산을 7.4%나 깎는 예산 당국의 강심장 또는 무심함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영화 <퍼펙트 스톰>은 잘못된 시점에, 잘못된 장소에 있던 어부들의 비극을 그렸다. 집채만한 삼각파도가 넘실대는 망망대해에 던져진 게 대한민국 농업인들과 비슷한 처지다. 먼저 이들을 위험에서 구해내야 한다. 그런 다음 체력을 비축하고 좋은 배를 주고 더 많은 고기를 잡으라고 바다로 내미는 게 옳다. 정부의 예산안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에서라도 우리 농업을 살리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제대로 된 진단과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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