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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토종씨앗박물관 강희진 관장"어머니의 씨 주머니는 노아의 방주... 마을 전체가 박물관되는 에코뮤지엄 꿈꿔요 "

[편집자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시인이 노래하는 '저게' 뭘까? 그렇다. 대추 한알이다. 대추 한알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 대지는 낮에 해와 밤의 별, 구름과 비, 바람과 눈을 먹였다. 그렇게 정성스레 만들어진 대추 한알은 생명의 원천, 씨앗을 품고 있다. 소중한 열매는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해주는 영양분이 된다. 씨앗은 뿌리이고 원천이다. 한민족을 수천년 동안 먹이고 살린 먹거리들. 그 삶과 역사를 이어줬던 토종 씨앗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외래 농산물이 판치고 본래의 것이 외면 받는 시대에 근본을 생각하는 퇴직 농부가 있다. 국내에서 유일한 '한국토종씨앗박물관'을 설립한 강희진 관장이 바로 그다. 어머니의 오래된 씨 주머니를 보고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를 만나 농업과 씨앗과 문학 사랑 이야기를 들어봤다.

 

- 먼저 국내 유일무이한 한국토종씨앗박물관을 설립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정말 운이 좋았다. 몇 가지 계기가 한꺼번에 왔다. 우선 제가 평생 지은 농업을 은퇴했다는 것이다. 농민도 은퇴해야한다는 게 평소 지론인데, 누가 은퇴 시켜주지 않으니 스스로 은퇴한 것이다. 은퇴한 후 평생 우리 식구들을 먹여 살린 농업에 무엇인가 보답을 해야하는지 고민 중에 전국 박물관을 답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씨앗 박물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씨앗은 우리 인류 문화의 근간 아닌가. 그런데 씨앗 박물관이 없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그 가정에서 어느 핸가 장마가 심하게 졌는데, 그 해 어머니의 오래 된 장롱에서 오래된 씨 주머니를 보게 됐다. 마치 노아의 방주 같았다. 그래서 박물관을 계획하게 됐는데 마침 오래 전부터 아내가 씨앗 운동과 슬로푸드 운동을 해 와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토종씨앗 선구자인 안완식 박사님의 힘도 컸다.

 

- 박물관에 보유하고 있는 토종씨앗보유현황은?

고대 탄화미를 비롯한 조선시대 부처님 복장유물 씨앗 60여종과 1984년 이후부터 수집 된 토종 씨앗 1만여 자원이 있다.

 

-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어려움이 있는데 체험마을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코로나 19 사태는 세계적인 어려움으로 우리만 특별한 현상은 아니니 잘 견뎌야 한다. 다행히 저희 박물관이 코로나 방제 클린 농장으로 지정받아 철저한 방제 속에서 학생들과 일반인이 조금씩 방문하고 있다. 특히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의 일환으로 어린이 가족을 중심으로 한 생태텃밭 요리교실을 비롯한, 중학생과 그 가족들이 참여한 인문학 농부학교, 사회적 취약계층들인 장애인들이 참여한 농부학교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어머님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

어머니는 1916년생이시니 오쩌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결혼하시고는 아버지가 일본으로 징용가시면서 겪은 고초, 또 해방 후에는 좌우익의 갈등 속의 회오리에서 보내셨다. 제가 젊었을 때는 농민운동하는 자식을 두어 공권력의 공격을 상당히 받으셨으니 어찌 보면 애처로운 분이다.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고생하신 날이 훨씬 많다. 최소한 반반은 돼야하지 않나 해서 늘 짠하다.

 

- 지역사회발전을 위한작품활동과 준비중인 작품은?

얼마 전에 어머니와의 10년 생활을 수필집으로 냈다. 그동안 향토 작가로 지역의 인물인 추사 김정희, 소설 윤봉길, 충남의 노거수를 주제로 쓴 신이 된 나무, 예산 문화유산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이제 1900년대 이상향을 추구한 젊은이들의 만주 이주사를 쓰고 있다. 토종 박물관을 운영하는 만큼 틈나는 대로 토종씨앗 이야기도 출판사로부터 의뢰 받고 집필 중에 있다.

 

- 한국토종씨앗박물관을 어떻게 운영해나갈 것인지 궁금하다.

애초에 작은 박물관을 지향했기 때문에 큰 자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영 부담은 적다. 우리 박물관의 역할은 자명하다. 토종 씨앗을 수집하고, 보존하고 보급하는 일들이다. 이제 수집은 취미생활이 됐다 싶을 정도다. 그 다음에는 교육이다. 사람들에게 씨앗의 중요성, 올바른 음식에 대한 중요성을 계속해서 교육해 나가는 일을 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커다란 포부 중의 하나가 있다면 이제 우리 박물관이 이 작은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을로 점점 확장해 나갔으면 한다. 그래서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 되는 에코뮤지엄을 꿈꾸며 준비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토종 씨앗은 관심이 없으면 없어진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사람들 입맛에 맞는 씨를 육종해 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토종 자원이 없으면 그러한 씨를 육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러니다. 농민들이 씨를 사와 심다가 어느 날 씨를 팔지 않으면 그때는 국가의 존망이 위태롭게 된다. 이건 우리가 왜 씨앗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역설이다. 관심 부탁드린다.

이광조 기자  lgj@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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