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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김치 표준화 추진... 발효식품 특성 고려돼야이베리코 돼지, 등급 다양에도 세계적 명품 돼... 맛의 획일화 경계해야

김치가 최근 전 세계인의 화제가 됐다. 알다시피 코로나19와 관련해서 그랬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코로나19에 유독 강한 건 김치를 늘 먹기 때문이라는 외신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으로서 절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뉴스인 건 맞는데, 사실이 그런지 아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거 같다.

국내에서도 김치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최근 시판되는 모든 김치에 열량ㆍ당류ㆍ나트륨 등 영양성분을 표시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김치의 표준화를 도모하자는 거다. 이에 김치협회나 학계에서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내며 반발했다. 요약하면 “ 전통발효식품인 김치 특유의 창의적인 풍미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라는 것.

식약처는 ‘국민의 건강한 식생활을 지원’하기 위해서 김치와 떡에도 열량ㆍ당류ㆍ나트륨 등 의 영양표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제도 강행의 이유를 밝혔다. ‘식품 등의 표시ㆍ광고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을 지난 6월 초 입법예고까지 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잘 하는 걸까?

식약처는 지난 6월 1일 빵·과자 등 17개 품목에 더해 김치와 떡 등 29개 품목에도 영양성분 표시를 의무화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사진=픽사베이]

 

◇ 식약처의 김치 영양성분 표시 입법 예고... 김치업계와 학계 일제히 반발

식약처의 입법예고 소식에 문득 세계적인 명품 돼지고기로 명성이 자자한 이베리코 돼지고기가 머릿속에 소환된다. 도토리와 올리브열매를 생식하고 자란 까닭에 미식가들이 극찬하는 돼지 뒷다리 생햄 ‘하몽(Jamón)'을 만든다는 그 유명한 스페인 돼지고기.

종류와 품질에 따라 다르지만 이베리코 하몽은 우리나라 인터넷쇼핑몰에서도 1인분 50그램이 무려 3만원~7만원 사이에 팔리고 있다. 이베리코 하몽 1족(뒷다리 하나)에서 100인분 정도가 나온다니, 이베리코 하몽 1족은 몇 백만원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참고로 우리나라 110킬로그램 돼지는 최근 가격 하락으로 1마리 통째로 20만원~30만원 안팎에 거래된다. 하몽 10인분(500그램) 가격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그렇다면 스페인산 이베리코 하몽은 어떻게 이런 높은 가격으로 팔려나갈 수 있는 걸까? 어마어마한 부가가치 창출의 원동력은 과연 뭘까? 정답은 바로 스페인 돼지고기의 다양한 등급제에 숨어있다. 즉, 돼지 품종의 순도와 사육방식 등에 따라 여러 등급이 존재하는데, 최고등급인 ‘이베리코 베요타(bellota)’는 순종 이베리코 흑돼지를 3개월 이상 방목한 돼지고기다. 여기서 베요타는 도토리를 뜻하는 스페인어다.

스페인 정부는 드넓은 숲과 목초지에서 과실수의 과일들과 풀을 생식하면서 자란 돼지만을 이베리코 베요타라는 최고등급의 돼지로 인정한다. 주로 도토리와 올리브 열매와 풀을 먹는다. 그 아래 등급으로는 교잡종이면서 사료 및 도토리를 섞여 먹이는 ‘세보 데 캄포(cebo de campo)’, 교잡종이면서 사료만 먹이는 ‘세보(cebo)’ 등급 등등이 있다. 생햄 ‘하몬’(jamón)의 품질을 구분할 때도 이 등급을 적용한다.

 

◇ 세계적 명품 돈육 이베리코와 생햄 하몽은 등급·맛의 다양성에서 탄생

다시 우리나라 식약처와 김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앞에서 언급한 식약처의 김치 표준화 발상과 법제화는 스페인 이베리코 돼지고기의 사례와 비교하면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정책이란 생각이 든다. 뒷맛이 씁쓸하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쏙 뺀 채 공산품을 대하듯 김치를 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다.

다행히도 대한민국김치협회, 한국식품산업협회 등의 김치 관련 식품단체들이 식약처에 김치류는 빼달라고 요청했다. 정확하게는 ‘절임식품 중 절임배추는 제외한다’는 항목을 추가해야 한다고 식약처에 뜻을 전달한 것이다. 

김치를 만드는 배추도 산지와 계절에 따라 다르고, 더구나 김치는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매우 정교한 맛을 지닌 식품이므로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치는 또한 유산균 발효식품인지라 숙성 정도에 따라서도 성분이 변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한마디로 ‘식약처의 김치 표준화는 김치의 특성상 안 하는 게 훨씬 낫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영양성분의 의무표시가 아닌 가이드라인 제시 정도로 일단 추진하고, 김치라는 발효식품의 다양성을 보존해나가자는 뜻이다.

실제로 김치의 산업화와 과학화를 주도하는 전남 나주에 있는 세계김치연구소 역시 포기김치에 대한 나트륨 함량 연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날 만든 김치인데도 원료인 배추의 차이로 인해 포기 당 나트륨 함량이 큰 편차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냈던 것이다. 여기에 숙성 정도와 유산균의 변화까지 감안하면 김치의 품질 표준화와 균질화라는 이상(?)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속속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학계도 식약처 입장과는 반대편에 섰다. 한식은 그 특성상 발효식품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서 표준화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만약 성분표시를 했다가 발효와 숙성에 따라 그 게 변화했을 때는 생산자가 허위표기라는 멍에를 뒤집어쓰는 일이 발생할 지 모른다는 경고도 덧붙이고 있다.

식품영양학 분야의 한 대학교 교수는 식약처의 김치 성분표시 입법예고에 대해 “김치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정해진 틀에 김치라는 우리 고유의 식품을 집어넣어 재단하는 꼴”이라며 “더 이상 김치라는 훌륭한 식품에 찬물과 재를 뿌리는 일을 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또 다른 김치전문가는 “김치를 다른 공산품과 똑같이 바라보는 시각이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이런 탁상행정이 김치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식약처는 지난 6월 1일 빵·과자 등 17개 품목에 더해 김치와 떡 등 29개 품목에도 영양성분 표시를 의무화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식약처는 2019년 생산실적을 기준으로 매출액에 따라 시행 일시는 차이가 있지만 내년 2021년부터 2026년까지 순차적으로 이를 밀어붙인다는 방침이다.

축산 및 돈육 전문가들은 스페인산 이베리코 돈육의 성공 요인은 한마디로 차별화와 고급화에 있다고 말한다. 도토리와 올리브열매를 먹고 자란 돼지고기라는 스토리텔링 또한 주효했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픽사베이]

 

◇ “식약처의 김치 표준화 강행은 김치의 세계화와 다양성의 걸림돌”

현재 우리나라는 스페인산 이베리코 돼지고기의 직격탄에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한돈업계와 당국은 이러한 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우리나라 돼지고기의 프리미엄화를 추진할 때가 됐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돼지고기에도 고급육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국내소비자들이 스페인 이베리코 돈육을 맛보고 나서 알게 된 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자조감 섞인 한숨도 터져 나온다.

축산 및 돈육 전문가들은 스페인산 이베리코 돈육의 성공 요인은 한마디로 차별화와 고급화에 있다고 말한다. 도토리와 올리브열매를 먹고 자란 돼지고기라는 스토리텔링 또한 주효했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 돼지고기가 스페인산 이베리코 돈육 앞에서 힘을 못 쓰는 주된 이유는 획일화 표준화 때문이라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도축. 유통되는 돼지고기는 요크셔와 랜드레이스, 듀록의 삼원교잡종이 90~94%를 차지하고 있다. 도축할 때도 110~115킬로그램에 맞춰 벽돌을 찍어내듯 시장에 내보낸다. 토종 돼지나 전통을 자랑하는 돼지고기도 거의 없을뿐더러, 표준화-획일화된 맛과 품질이 오히려 프리미엄 돼지고기의 탄생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식약처의 김치표준화 강행(?)에서 우리는 스페인산 이베리코 돼지고기의 쇼크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김치산업 표준화가 김치 품질 및 맛의 획일화로 이어져 , 일본산 기무치나 중국산 김치의 프리미엄 공세에 무기력하게 쓰러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마저 느껴진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저해하는 정책은 심사숙고해야만 한다. 100년 뒤를 내다보는 안목이 새삼 아쉬워진다.

이광조 기자  lgj@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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