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다. 미국 뉴욕 증시 시가총액 1~2위를 다투는 기업이다. 7월 23일 기준 시가 총액은 1조 7천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천조 원에 이른다. 애플은 아이폰을 출시하며 IT업계에서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아이폰이 스마트폰 보급을 견인하면서 사람들은 손에 고성능 컴퓨터를 쥐게 됐다. 인터넷에 24시간 연결되는 네트워크 사회도 열렸다. 인류사는 이제 스마트폰 문명의 시대, ‘포노사피엔스’ 시대로 접어들었다. 애플은 이제 단순히 IT 기업을 넘어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대업을 이룬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애플이 또 하나의 수상쩍은 꿍꿍이(?)를 벌이고 있다. 바로 ‘RE100’ 캠페인에 참가하고 있는 것. RE100이란 ‘Renewable Energy(재생 에너지) 100%’의 약자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한다는 의미다. 다국적 비영리단체인 기후 그룹(The Climate Group)은 2014년 뉴욕시 기후 주간 행사에서 기업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 에너지를 100%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RE100'의 시작이었다.
애플은 이미 2018년에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만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캘리포니아 본사를 포함해 애플스토어, 데이터 센터 등에 필요한 전력을 사용하는 전력은 태양광이나 풍력 등을 사용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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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는 100% 재생 에너지로 전력을 공급받고 있다. [사진=애플 홈페이지] |
왜 그럴까? CEO 팀 쿡의 개인적인 철학이나 취향 때문은 아닐 것이다. 미국 기업은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가 지배한다. 돈이 벌리면 하고 아니면 안한다. 애플은 그들의 고객들을 두려워하기에 비용 지출을 감수하면서도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동시에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기업으로써의 이미지도 만들 수 있다. 기존 고객과 더불어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는 동인이 된다. 선진국 소비 시장에서 친환경은 메가트렌드가 됐다. 국내에서는 친환경을 넘어 필(必)환경이라는 마케팅 용어가 유행이다. 물건을 살 때 ‘환경‘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마음을 기업들은 벌써 눈치챘다. 애플 같은 초일류 기업들 경영 철학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애플은 한 술 더 떠서 납품하는 업체들에게도 RE100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최근 SK하이닉스에 이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미 동참을 선언한 LG화학과 함께 ‘국내 최초 RE100 기업’ 타이틀을 두고 각축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글로벌 기업에 납품하려면 RE100에 가입해야만 한다는 전망은 우려를 낳기도 한다. 진입 장벽이 돼 비용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 법제도가 미비해 RE100 인증에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을 키우려는 정부와 업계가 주목할 대목이다.
이렇듯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환경문제를 단순히 마케팅의 수단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기업생존의 필수적 전제로 보고 있다. ‘친환경이면 살고 반환경이면 죽는다’, 이게 글로벌 기업들의 생각이다. 우리 정부도 한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하며 디지털과 그린을 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다. 국가 경제 성장을 위해 친환경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런데 농업계의 반응은 성토 일색이다. 한국농업인단체연합은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대해 우리 농업의 구조개혁 의지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실현할 그린뉴딜 종합계획을 제시해 줄 것”을 촉구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도 “정부의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스마트 물류체계 구축 정도를 빼면 농업·농촌 분야의 과제는 새로운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며 한층 중요해진 식량 안보 대책 차원에서라도 안정적 식량 조달 등 농업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고민이 반영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왜 비난을 받을까? 근본적 변화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한국판 뉴딜이 발표되었을 때 전문가와 언론들은 근본 원인 분석과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농업계의 문제 제기는 이렇다. 친환경 산업을 키우는데 왜 환경 지킴의 주체인 농업 분야가 빠져있느냐는 것이다. 물건과 전력을 친환경으로 만들면 우리 환경에 녹색불이 켜지냐는 물음이다. 참고로 대한민국 국토의 85.!%는 산과 농지다. 근본적 문제는 빼놓고 주변만 때리는 ‘형식적’ 그린 뉴딜이 아니냐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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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유통업체나 각국 정부들이 농식품분야에 친환경 규제를 만들 수 있다. 농식품판 RE100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우리 농식품이 이제 막 세계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잘나가는 케이푸드(K-food)에 날개를 달려면, 첫째도 둘째도 친환경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
정부가 세운 정책의 방향은 옳다. 이제 실행 과정이 남았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다. 정부의 각 부처와 기업은 세부실행 계획을 빈틈없이 짜고 면밀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 농식품부도 농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적극적으로 과제를 발굴해야 한다.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 없이 국가의 그린 뉴딜이 있을 수 없다는 농민단체의 목소리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동시에 농식품 생산-제조-유통 과정 중 친환경 요소를 적용할 부분은 없는지도 살펴야 할 것이다. 먹을 수 없는 스마트폰에도 친환경을 들이대는 시절이다. 글로벌 유통업체나 각국 정부들이 농식품분야에 친환경 규제를 만들 수 있다. 농식품판 RE100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우리 농식품이 이제 막 세계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잘나가는 케이푸드(K-food)에 날개를 달려면, 첫째도 둘째도 친환경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1992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 캠프의 선거 슬로건을 소개한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아칸소의 정치 신인 클린턴은 이 짥고 간결한 문장으로 걸프전의 영웅이자 현직 대통령인 부시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2020년 한국 경제가 공유해야 할 명제도 이래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환경이야, 이 바보야.”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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