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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메이커냐, 금메달이냐... 갈림길에 선 쿠팡[유통발상] 농산물 유통 문제 해법을 위한 발칙한 생각

육상이나 스케이트 등 기록경기에는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가 있다. 주로 장거리 경기에서 우승이 유력한 자기팀 선수와 함께 뛰면서 경기 템포를 유지하고 경쟁자를 지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일종의 승리 도우미 역할이다.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대표적 사례가 나왔다. 처음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매스스타트’는 6400미터의 거리를 도는 장거리 스케이트 경기다. 트랙을 16바퀴나 돈다. 남자 경기에서 우리나라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거머쥐게 된다. 이때 페이스 메이커를 한 선수가 정재원이다. 14바퀴까지 전력 질주를 해 경쟁자를 지치게 했다. 힘을 비축한 이승훈 선수가 막판 2바퀴를 전력 질주해 우승했다. 정 선수의 조연 역할이 빛났던 한 장면이었다.

영화 <페이스 메이커>의 결론은 슬프지만 감동적이다. 주인공 김명민은 올림픽 마라톤 대회에 페이스메이커로 나섰다. 30km 지점까지만 뛰면 그의 임무는 완수다. 하지만 쥐가 난 다리에 상처까지 내면서 기어이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래도 언제가 한번은, 나를 위해 뛰고 싶다”고 말하면서. 금메달은 아니지만 인생의 의미를 발견한 페이스 메이커에 관객들은 박수를 보냈다. 

산업에서도 페이스 메이커가 있다. 기업의 간의 경쟁 속에서 나타난다. 치열한 경쟁 끝에 몰락하면 살아남은 기업은 그 과정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한다. 반면 또 다른 기업은 ‘의도치 않은 희생’을 한다. 경쟁자를 도와주고 자신은 파산이나 인수합병 등으로 무대에서 사라진다. 스포츠의 같은 팀내 유력한 우승후보를 돕기 위한 ‘의도된 희생’과 대비된다.  

육상이나 스케이트 등 기록경기에는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가 있다. 주로 장거리 경기에서 우승이 유력한 자기팀 선수와 함께 뛰면서 경기 템포를 유지하고 경쟁자를 지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사진=픽사베이]

최근 기업 간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는 산업 중 하나가 유통업계다. 특히 국내 온라인 유통에서 쿠팡이 몰고 온 새 바람은 엄청났다. ‘로켓배송’이라는 당일 배송 서비스를 시작해 상품 배송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이를 위해 일본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3조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해 물류 인프라를 강화했다. ‘쿠팡맨’이라고 불리는 배송직원을 직접 고용했다. 배송 서비스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년 1월부터 ‘로켓프레시’라는 신선식품 당일 배송도 시작했다. 덕분에 매출액과 시장 점유율은 수직 상승했다. 

이러던 쿠팡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쿠팡이 자랑하던 물류센터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것. 지난 5월 27일 고양 물류센터에서 최초 발생 후 이와 관련된 확진자수는 3일 현재 119명이 이른다. 쿠팡은 사실 확인 즉시 해당 시설을 폐쇄하고 방역당국과 필요한 조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고의 여파는 크다. 고객 이탈의 신호도 읽힌다. 삼성증권과 와이즈리테일의 분석에 따르면 소식이 전해 사건 직후인 28일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의 결제대금이 모두 전주 대비 17% 상승했으며 이후에도 6%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성급하지만 지속 성장해온 언택트(비대면) 구매가 시들해지고 고객들이 컨택트(대면) 구매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쿠팡이 약해진 틈을 타 편의점이나 마트가 점유율을 더 늘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네이버나 이베이 경쟁사로의 고객 이탈 가능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더 큰 문제는 검찰이 쿠팡의 김범석 대표이사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는 점이다. 3일 KBS 등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김범석 대표 등 쿠팡 공동대표 3명을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형사2부(부장 이창수)에 배당했다. 사실 관계는 조사에서 드러날 일이지만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는 추세다. 리더가 검찰수사를 받게 된 상황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브랜드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던 쿠팡에게 치명적인 타격이다. 

쿠팡은 빠르고 안전하고 편리한 쇼핑을 표방해 소비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온라인 유통을 넘어 국내 유통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는 소리도 들었다. 찬사를 받으며 고속 성장한 쿠팡이 어떻게 위기를 돌파할지 지켜볼 일이다. 또한, 코로나 사태 이후 언택트라며 주목을 받았던 온라인 유통업체들도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돌아보기 바란다. 위기는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기 마련이다. 고객은 영리하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으면 언택트에서 컨택트로 돌아설지 모른다. 

쿠팡은 유통시장에서 페이스 메이커로써의 역할은 충분히 했다. 유통공룡들인 이마트, 롯데 등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쿠팡의 질주가 여기까지인지, 분발해서 금메달을 차지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쿠팡의 실력에 달렸다. 영화와 스포츠와는 달리 기업 간의 경쟁은 비정하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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