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맛을 느끼는 걸까? 오감과 관련이 있다. 우선 음식을 보는 시각에서 맛은 결정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혀와 식도에서 느껴지는 촉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맛을 느끼는 미각과 더불어 풍미라고 불리는 냄새가 결정적이다. 

예컨대 설렁탕 같은 진한 고기 냄새가 나는 음식을 먹을 때 후추를 넣어 먹는다. 여기에 파도 함께 넣으면 제격이다. 모두 음식을 더욱 맛있게 해주는 첨가물, 즉 향신료들이다. 지금이야 마트에 가면 분말 후추를 얼마든 구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인에게도 인도가 원산지인 후추는 고기의 노린내를 잡아주는 향신료로 인기가 높았다. 당시 유럽인들은 바질과 같은 토종 향신료는 평민들이 먹었고 후추는 높은 가격 때문에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이러다 보니 중세 유럽에서는 후추가 금이었다. 

2008년에 방영한 MBC스페셜 ‘스파이스 루트’를 보면 15세기 당시 후추의 가격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자료가 나온다. 이탈리아에서 발견된 당시 현지로 양피지 문서를 보면, ‘후추 한상자는 170 두캇(Ducato), 결혼지참금은 15 두캇, 여자노예는 50 두캇’이라고 되어있다. 두캇은 당시 화폐단위다. 후추 한 상자가 정확히 몇 kg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값보다 비싸게 쳐줬다니 그 가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후추를 찾아 목숨을 건 ‘대항해 시대‘가 열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였다. 

1453년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발호한 오스만제국의 메흐메트 2세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했다. 동로마 제국이 무너진 것이다. 이스탄불로 불리는 콘스탄티노플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유럽이 아시아로 가는 관문이었다. 오스만제국은 이 기세를 몰아 서쪽으로는 헝가리와 발칸반도 동쪽 이라크에 이르는 대제국을 완성한다. 지중해와 흑해의 해상 무역권도 손에 넣으며 유럽인들의 아시아로 가는 길목을 완전히 틀어쥐게 됐다. 그 영향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육상 교역도 어렵게 되고 후추 값은 천정부지로 뛰게 됐다.

상황이 이러해지자 상인들이 용기를 냈다. 육지길이 막혔으니 바닷길을 통해 후추를 구하러 떠나기 시작했다. 포르투칼의 바스코 다 가마가 포문을 열었다. 그는 1497년 4척의 범선과 170여명의 선원으로 이루어진 함대를 이끌고 리스본을 출발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 희망봉을 돌아 1498년 5월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했다. 인도 항로가 열린 것이다. 

사실 그 보다 후추를 찾아 떠난 유럽은 콜롬버스였다. 1492년 8월 스페인 여왕 이사벨의 지원을 받아 서쪽으로 떠났다. 같은 해 10월 현재의 카리브해 연안인 바하마 제도에 도착했다. 지구가 둥그니 서쪽으로 계속 가다보면 후추의 고향 인도에 이를 수 있다고 믿은 그는 현지 원주민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인도에 도착했다고 굳게 믿은 결과였다. 이 지역은 생뚱맞게 지금도 서인도제도로 불린다. 인도 본토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 콜롬버스의 대단한 착각을 지금도 존중해주는 명칭도 이상하긴 매한가지다. 

맛을 향한 인간의 집념은 대단하다. 맛을 향한 인간의 탐욕이 돈으로 표시되고 이것을 찾아 떠난 게 ‘지리상 발견’이었고 근대 제국주의 시작이며, 세계대전의 뿌리다. 맛이 역사를 바꾸는 장면인 셈이다. [사진=픽사베이]

이처럼 맛을 향한 인간의 집념은 대단하다. 맛을 향한 인간의 탐욕이 돈으로 표시되고 이것을 찾아 떠난 게 ‘지리상 발견’이었고 근대 제국주의 시작이며, 세계대전의 뿌리다. 맛이 역사를 바꾸는 장면인 셈이다. 

이제 제국과 수탈의 역사는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맛에 대한 사람들의 눈높이는 더 높아졌다. 중세에 유행했던 후추, 정향, 육두구 같은 향신료 한 가지만 쓰는 요리는 인기가 없다. 각종 채소와 소금을 넣고 혼합해서 최고의 조합을 만든다. 그게 바로 ‘양념’, 즉 ‘소스’다. 

우리가 잘 아는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은 한식의 맛을 결정하는 소스들이다. 중국 요리에는 춘장, 굴소스, 라유, 쯔유 등이, 서양식에는 토마토 소스, 데미그라스 소스, 케첩, 마요네즈, 땅콩버터, 발사믹글레이즈, 스위트칠리소스, 폰즈소스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양념과 소스들이 만나고 섞이면서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낸다. 새로운 조리법과 더불어 세계 각국의 요리를 더욱 맛있고 다양하게 해준다. 바야흐로 세계인의 혀를 유혹하는 ‘맛의 각축전’이다.

우리 정부도 ‘소스‘를 산업화하기 위해 나섰다. 한국식품클러스터진흥원(식품진흥원)은 지난해 11월 1일(금) ‘국가 식품 클러스터 소스 산업화 센터’를 열었다.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의 기본 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2017년 기본 및 실시 설계, 2018년 건립 공사 착공, 2019년 8월까지 1년 동안 공사를 마치고 완공했다. 식품진흥원은 국내 식품 산업 변화에 따라 식품 산업의 반도체라 불리는 소스 산업의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전라북도, 익산시와 함께 소스 산업화 센터를 구축했다. 

소스 산업화 센터는 발효 원료 기반 소스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시제품 및 위탁 생산 시설과 신제품 개발 지원을 위한 연구 시설을 갖추고 중소 소스 기업의 사업화를 지원한다. 주로 ▲소스 상품화 지원, ▲중소 소스 기업 애로 기술 해소 지원, ▲소스 산업 정보 지원 등의 기능을 하게 된다. ‘소스 산업의 총괄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고, 소스 산업 육성을 통해 전통 발효 식품의 신수요 창출에 이바지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잘 살려낼지 응원하며 지켜 볼 일이다.

최근 코로나 19로 집밥이 늘면서 가정간편식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여기도 제 맛을 내는 데는 소스가 핵심이다. 특히 정돈된 재료들을 레시피에 따라 직접 요리해서 먹게 만든 밀키트 제품은 소스 품질이 제품의 수준을 결정한다. 대표적인 밀키트 업체인 마이세프의 임종억 대표는 “신선한 식재료와 정확한 레시피, 무엇보다도 그에 꼭 맞는 소스의 개발이 좋은 맛을 내는 핵심이며 밀키트 기업의 경쟁력”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요리에 서툰 사람들도 좋은 소스를 쓰면 맛집 요리를 집에서 만들 수 있게 된 세상이다. 

성경에 혀를 길들일 자는 아무도 없다고 했다. 말을 조심하라는 교훈이다. 혀는 맛을 감별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맛을 향한 ‘혀의 욕망’도 끝이 없다. 인간의 욕구를 해결해 주는 방법을 찾는 게 기업의 역할이다. 앞으로 식품 기업의 성패는 세계인의 혀를 사로잡는 ‘소스’ 개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판 맛의 전쟁, 서막이 올랐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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