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농신문이 창간 26년을 맞았습니다. 그 동안 본지를 아껴주시고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두보의 시 구절이 올해처럼 절절히 와 닿은 적은 없습니다.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은 요즘입니다. 봄은 만물이 겨울잠을 깨고 약동하는 생명의 계절입니다. 기온이 올라가고 따뜻한 날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워지고 바깥 활동을 왕성히 하기 시작합니다. 각 지자체들은 각종 축제를 준비하면서 상춘객 유치에 바쁠 때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찾아오니 농촌에도 활력이 돌기 시작합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농부들의 손길도 신이 나는 이 맘 때였습니다.

하지만 올 해는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모든 걸 집어 삼켜버렸습니다. 사회적 격리가 이어지면서 모임과 야외활동은 중단됐습니다. 지자체들의 축제도 다 취소됐습니다. 외식 경기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초중고교 개학이 미뤄지면서 학교 급식 업체들도 매출이 급감하는 상황입니다. 세계 각국은 방역 수준을 높이면서 필수재가 아닌 이상 교역량도 크게 줄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농업에 큰 걱정거리입니다. 농산물을 사줄 수요처들이 없어진다는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가들은 비상입니다. 학교 급식이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애써 길러놓은 농산물들을 내다 팔 데가 없습니다. 외국인 입국이 막히면서 농가들에선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때가 있는 농사일인지라 농심은 타들어 갑니다.

막막한 상황들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은 가져야 합니다. 그와 함께 틈새를 찾는 눈과 험지를 찾아가는 발이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제임스. B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다가 포로로 잡혔던 미 해군의 장교다. 1965년에 잡혔다가 1973년 풀려났으니 무려 8년간 수감되었다. 이후 극적으로 생환한다. [사진=미국 국방부 사이트]

스톡데일의 모순(Stockdale‘s Paradox)을 소개합니다. 제임스. B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다가 포로로 잡혔던 미 해군의 장교입니다. 1965년에 잡혔다가 1973년 풀려났으니 무려 8년간 수감되었습니다. 이후 극적으로 생환합니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 제임스 C. 콜린스가 그에게 어떻게 그 험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먼저 죽었던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상황을 낙관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전에는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부활절이 되기 전에는 석방될 거라고 믿음을 이어 나갔다. 부활절이 지나면 추수감사절 이전엔 나가게 될 거라고 또 믿었다. 그렇게 다시 크리스마스를 맞고 반복되는 상실감에 결국 죽게 됐다."

근거 없는 낙관론이 삶을 쉽게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콜린스는 낙관론자가 먼저 사망한 이 현상을 ‘스톡데일의 모순’이라고 불렀습니다.

스톡데일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절대 잃어서는 안 되는, 마침내 이기겠다는 ‘믿음’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지금 벌어지는 가장 가혹한 사실들을 똑바로 보는 ‘자제력’을 절대 혼동하면 안 된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잘 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은 자칫 모든 걸 포기하게 만드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른바 ‘팩트(사실)‘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합리적인 대안이 나오고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말라는 어찌 보면 모순되는 이 관점이야 말로 위기 돌파의 해법이 됩니다.

이것은 저희 한국영농신문에도 필요한 자세라고 봅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매체가 되겠습니다. 보다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과 현장을 목소리를 담아 내겠습니다. 농업. 농촌의 문제가 우리 사회 전체의 의제가 될 수 있도록 공유할 가치와 소재를 발굴하겠습니다. 그래서 농정 당국과 국회, 그리고 농업단체들이 제대로 된 해법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저희 한국영농신문이 제대로 된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고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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