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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머스켓’이 주는 작은 사치, 그리고 명품 먹거리의 ‘입춘대길, 건양다경‘[유통발상] 농산물 유통 문제 해법을 위한 발칙한 생각

프랑스의 샤넬, 이탈리아의 페레가모, 미국의 애플의 공통점은 뭘까? 첫째, 사람들이 사고 싶은 제품인데, 가격이 비싸다. 오히려 갈수록 가격이 높아진다. 돈이 없어서 못 사지 형편이 된다면 꼭 갖고 싶은 사치품이다. 둘째, 같은 영역에서의 점유율이 높지는 않다는 점이다. 싼 값에 많이 팔리는 중저가 브랜드가 시장점유율이 높은 건 당연하다. 대부분의 가방, 넥타이, PC는 중국에서 만든다. 값도 싸고 질도 좋지만 중국산을 명품으로 쳐주지 않는다. 그냥 필요에 의해서 살 뿐이다. 

우리 농산물도 품질 좋은 농산물을 비싸게 팔자는 논의가 한참이다. 먹거리에도 명품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농산물은 아직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재이지, 사치재는 아니라는게 어느 나라나 보편적이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비싼 먹거리를 사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파는 사람은 ‘가격’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을 깨는 경험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이른바, 사용자 경험 (User Experience)를 고려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좋은 경험을 한 사람은 똑같은 선택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얼마 전 첫 직장에서 팀장이었던 지인께서 정년퇴직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견기업의 임원까지 지내셨으니 흙수저 출신 월급쟁이로는 성공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그의 인품이다. 신입사원이 올리는 품의서의 오탈자를 꼼꼼히 지적해주시면서도 늘 웃는 모습이었다. 일 때문에 함께 날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다. 한-중-영어로 된 계약서를 완성해서 임원에게 건내주고 사우나로 직행. 그 얘기하며 요즘도 웃는다. 고마운 마음도 있고 명예로운 은퇴를 축하(?)도 드릴 겸 점심 약속을 잡았다.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점심 값은 상사께서 꼭 낸다고 할 것 같았다. 점심대신 선물을 해드리기로 마음먹고 아이템을 생각해 봤다. 옷이나 지갑 같은 게 좋을까, 아니면 상품권으로? 마침 백화점 지하층을 지나다 먹거리들이 보였다. “그래 먹는 게 최고지” 샤인머스켓이 보였다. 전에 행사장에서 시식으로 처음 먹어봤는데 맛이 기가 막힌 포도다. “저걸로 하자” 가까이 가서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3송이에 7만원 가까이 됐다. “한 송이에 무려 2만원이 넘는 포도라?“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 동안의 고마움에 이 정도는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선뜻 지갑을 열었다. 그 경험은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샤인머스켓은 왜 비싸게 팔릴까? 최고급 포도라는 이미지도 한 몫한다. 비싼 가격 때문에 쉽게 사먹기 어려워 포도계에 ‘샤넬‘ 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고귀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샤인머스켓은 왜 비싸게 팔릴까?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06년 처음 국내에 식재되었고 2016년에야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해서 포도나무가 아직 어리다. 그래서 공급량은 적다. 그럼 왜 수요가 많을까? 맛있기 때문이다. 맛은 당도와 식감이 좌우한다. 샤인머스켓의 당도는 18~20브릭스로 포도 중 달기로 유명한 캠벨보다도 3~4 브릭스 더 높다. 껍질이 얇고 연해서 껍질째 먹을 수 있어 씹기도 적당하다. 껍질 처리가 필요 없으니 편리하다. 여기에 하나 더 한다면, 최고급 포도라는 이미지도 한 몫한다. 비싼 가격 때문에 쉽게 사먹기 어려워 포도계에 ‘샤넬‘ 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고귀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샤인머스켓의 명성은 바다 건너에도 전해졌다. 베트남, 홍콩 등으로 수출이 크게 늘었다. 작년 11월까지의 포도 수출 통계를 보면 각각 391만불, 332만불 어치를 팔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같은 기간 포도 수출총액은 1890만불로 전년 동기 대비 30% 늘었으며 이중 샤인머스켓의 비중이 60%라고 추정된다. 대 중국 포도 수출액은 110만불을 기록했는데 샤인머스켓이 90% 수준이라는게 업계의 전언이다. 

포도와 함께 국산 과일 수출을 이끌고 있는 딸기는 어떤가? 미국 등 경쟁산보다 높은 당도와 부드러운 식감으로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홍콩에서는 일상에서 즐기는 디저트로 꾸준한 수요가 있으며, 동남아에서는 발렌타인데이 선물용으로 사용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aT는 “순수 우리 품종인 매향 외에도 설향, 킹스베리, 죽향 등 다양한 품종이 수출에 가세함에 따라 한국산 딸기 수출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내친 김에 aT의 ‘과실류’ 수출 통계도 보자. 작년 11월까 지 누적 수출실적은 11만 4천 톤, 금액으로는 3억6백만불을 기록했다. 특이한 점은 물량으로는 3.7% 감소(-)했지만 금액으로는 10.9% 증가(+)했다. 최소한 국산 과일의 고급화 전략이 먹히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상사에 대한 보은으로 한 송이에 2만원이 넘는 포도를 산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입맛 까다로운 아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때 한 번 더 무리(?)했다. 이후 집사람의 잔소리에도 한 번 더 도발을 감행했다. 달달한 제과점 빵은 몇 번 덜 사먹기로 약속하면서. 이제 설 명절이다. 남성들이여, 음식상 차림에 스트레스 받을 며느리, 부인들을 위해 작은 사치 한번 부려보실 것을 권한다. 7만원짜리 핸드백을 선물하면 시큰둥하겠지만 포도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샤인머스켓의 달달하고 아삭한 그 맛은 절대 못할 것이므로. 대신 친구들과 술자리 몇 번은 포기하겠다고 안심시켜야 부인들의 도끼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설은 춘절이라고도 부른다. 추운 겨울은 가고 봄이 오는 절기라는 뜻이다. 그래서 대문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고 쓴 글귀를 붙여놓으며 복을 기원했다. 2020년 올 한 해 한국 농업과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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