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반성문일까? 아니면 살살 좀 때리라는 하소연일까? 물론 진정성이 담긴 대국민 약속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좀 지나치다 싶다. 그럼에도 뭔가 좀 말 못할 속내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 것도 사실. 워낙 자주 정기적으로 축산농가들에게 이것저것 규제의 틀을 들이밀었던 환경부-식약처-농림축산식품부의 정책이 존재했기에 하는 말이다.

최근 축산단체들이 모여 대국민 약속을 했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가 지난 19일 모여서 '지속 가능한 축산업 발전 위해 축산농가가 드리는 대국민 약속'을 발표했는데 한우협회 김홍길 회장이 앞장을 섰다. 이날 발표는 축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한 축산단체의 자정 노력과 개혁 의지를 표명하려는 자리였다.

김홍길 회장은 “우리가 먼저 변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안전한 축산물 공급, ▲방역수칙 준수, ▲철저한 분뇨관리와 축사 청소 등을 약속했다. 이에 대해 약속이라도 한 듯 이재욱 농식품부 차관은 이날 김홍길 회장의 대국민 약속 발표 이후 “이 메시지가 소비자들에게 잘 전달되길 바라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축산이 되도록 하자”고 말했다. 

◇ 축산단체의 대국민 약속은 국민을 향한 것인가 아니면 정부를 향한 것인가?

그런데 뭔가 하나 빠진 게 있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는 뜻이다. 축산농가 주변 지자체나 도시민에게 가장 중요한 축사 냄새, 축사 악취 문제가 빠져 있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는 축산농가와 그 주변 당사자들이 아니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바. 이 문제를 빼고서 대국민약속을 하고 곧바로 ‘옳지!’라고 화답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3년 전 경기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6년 경기도 축산시설 악취 개선을 위해서만 약 1조 5천억원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경기도내 양돈 816가구, 양계 385가구 등 1201가구의 현대화사업 비용 추산액이 총 1조 5천억원이라는 것. 추청치이긴 하지만 , 이를 전국으로 확대해보면 얼마나 막대한 금액이 소요될 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겠다. 경기도가 그 정도면 전국적인 비용은 그보다 몇 배는 족히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축사 악취 문제에 대해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중일까? 올해 초 환경부는 오는 2028년까지 시행할 ‘제2차 악취방지종합시책’을 세부 내용을 발표했다. 이는 향후 10년간의 악취관리 정책 방향을 담은 것인데, 2028년까지 악취로 인한 민원을 2017년 2만 2851건 대비 57%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악취로 인한 민원이 1년에 무려 2만 3천 건에 달했던 게 현실인 걸 보면 축사악취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

무창돈사(無窓豚舍)는 말 그대로 창문이 없는 돼지사육시설을 말한다. 무창돈사의 의무화는 창문을 없앰으로써 냄새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는 발상이다. [사진=농촌진흥청]

◇ ‘제2차 악취방지종합시책’의 목표는 악취 민원 2만 건을 1만 건으로 줄이는 것

앞서 언급했듯이 축산농가들이 자정노력을 담은 대국민 약속까지 하는 데는 ‘정부의 규제와 압력 때문에 힘들다.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라는 속사정이 담겨 있다. 축사악취 부문에서만 꼽아보더라도, 축산농가들의 반발이 쏟아지는 지점은 두 곳으로 압축된다. 바로 사전신고제와 그 이름도 어려운 무창돈사(無窓豚舍).

사전신고제란 악취 피해가 먼저 발생한 경우에만 신고대상시설로 지정했던 것을 앞으로는 모든 악취배출시설을 설치 전에 미리 신고하도록 함을 말한다. 악취배출시설 사전신고제가 도입될 경우 기존의 신고 대상 시설은 중점관리대상으로 격상시킨다는 방침이다.

그런데 축산농가들의 입장은 좀 다르다. 전체 축산농가 약 11만호 중 악취관련 피민원 축산시설은 약 3100개 정도로 전체의 3%에 불과하다는 것. 축산농가들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게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3% 때문에 나머지 97% 축산농가를 악취관련 민원 가능성 범주에 넣고 정책을 시행함이 과연 정당한 것이냐는 것이다. 앞서 축산관련단체협의회가 대국민 약속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전체 축산농가의 축사 악취에 대한 인식 전환과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는 것도 반발의 이유인 듯 보인다. 축산악취가 큰 문제임을 축산농가 역시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 다음이 무창돈사(無窓豚舍). 이는 말 그대로 창문이 없는 돼지사육시설을 말한다. 창문을 없앰으로써 냄새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는 발상인 셈. 그런데 대한한돈협회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양돈장 중에서 창문이 없는 이른바 ‘무창돈사’는 약 30~40% 정도라고 한다. 역시나 60~70%가 엄청난 시설비를 들여서 무창돈사의 자격(?)을 갖춰야만 한다는 뜻이다. 축산현장에서는 이를 두고 무지막지한 행동이자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냄새와 악취의 원인을 해결하기 보다는 냄새를 새어나오지 못하게 돼지우리에 틀어막으면 된다는 발상이 아니냐는 거다.

하지만 어디 이런 일이 한 두 가지 뿐인가. 환경부나 식약처나 농림부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PLS(농약허용물질관리제도), 계란 산란일자 표시 밀어붙이기도 무창돈사와 비슷한 탁상행정이라고 현장농민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식품관리업무에서 농림축산식품부는 아예 손을 떼고 있는 형국. 책임질 일은 하지 않는다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 축산악취 사전신고제와 무창돈사에 대한 반발 거세

이에 대한 국회에서의 논의도 이뤄진 바 있다. 사전신고제 적용을 추진 중인 환경부 방침이 과도한 거 아니냐는 여론 때문이다. 지난 4월 24일 김학용 국회 환노위원장, 황주홍 농해수위원장,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이 공동주최한 ‘축산악취 관리 정책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환경부의 축산악취 관리 대책이 현장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안희권 충남대 교수는 “모든 축사를 악취배출시설 사전신고제로 적용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다. 일정 기준 이상 냄새유발물질 배출시에만 신고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 악취 저감 조치를 한 축사는 밀폐 대상에서 제외하자. 아울러 지자체의 악취관리 조례범위에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한돈협회 측 관계자는 “현재 축사의 70~80%가 개방형이라서 기존 축사를 밀폐하려면(무창돈사化), 높은 비용이 예상돼 실행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협 축산경제 관계자 역시 “축사의 악취배출시설 사전신고제는 축산농가를 범법자 취급하는 과도한 규제”라고 꼬집었다. 이날 나온 반발과 비판과 대안들은 결국 사전신고대상에 모든 축사를 지정할 필요는 없으며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종합할 수 있겠다.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 아닌가?

지난 13일 이만희·임이자(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최한 ‘퇴비 부숙도 검사 의무화 이대로 좋은가’ 정책 토론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사진=한우협회]

◇ 퇴비 부속도 기준검사 역시 축산농가에 대한 과도한 부담 아닌가?

축산농가 입장에서 반갑지 않은 소식이 또 하나 있다. 내년 3월 25일부터‘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축사 내 깔짚·퇴비더미의 부숙도(썩어서 익은 정도)를 정기적으로 검사해야만 하는 것이다. 시행 시에는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축사 내 퇴비 부숙도 검사를 해야한다. 이는 제대로 부숙되지 않은 퇴비 때문에 발생하는 악취를 막자는 취지. 또한 퇴비 품질을 높여 지력(땅심)을 살리자는 뜻도 있다는 게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이다.

이에 축산단체와 학계는 즉각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검사 의무화 적용 시기를 늦추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홍길 전국한우협회장 역시 퇴비부숙도 검사 시행 연기를 주장하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했다. 김 회장은 “현상태에서 퇴비부속도 검사를 의무화함은 농가의 큰 반발만 가져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회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기도 했다. 지난 13일 이만희·임이자(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최한 ‘퇴비 부숙도 검사 의무화 이대로 좋은가’ 정책 토론회가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시행을 앞두고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중인데, 퇴비유통전문조직 육성이 그 중 하나. 퇴비유통전문조직은 축산농가 60호 이상의 참여가 필요하고 퇴비 살포지 200ha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이 조건을 갖추면 사업비 2억원 기준, 국비 30%, 지방비 50%가 각각 지원된다는 것. 이렇게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은 퇴비유통전문조직은 축산농가의 퇴비를 규정대로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 농촌진흥청의 악취가스 90% 이상 감소 기술, 농가엔 언제 보급되나?

그런데 생각할 점이 있다. 퇴비유통 전문조직을 만드는 건 혹시 옥상옥이 아니냐는 거다. 농업현장에서 농민들은 고생만 하고 컨설팅이나 유통조직만 이익을 보는 그런 일이 재현되는 거 아니냐는 걱정스런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농촌진흥청이 돼지분뇨에서 발생하는 악취가스를 90%이상 감소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고 실용화까지 마쳤다는 소식에서 희망을 발견했다면 지나친 것일까? 국립농업과학원 유재홍 박사의 ‘김치에서 분리한 효모와 버려지는 잣송이를 활용한 돼지분뇨악취 가스 감소 기술 개발’이 2018년 국가기술 100선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말함이다. 이 제품을 돼지사육장에 적용한 결과 암모니아가스, 황화수소, 아민가스 등을 90% 감소시키는 효과가 확인했다는 게 농촌진흥청의 설명.

이런 기술을 하루 빨리 상용화하고 농촌에 적용하는 게 우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계속 축산농가에 과도한 규제만을 부과하는 환경부-식약처-농식품부의 설명보다 이 기술을 개발한 유재홍 박사의 말이 훨씬 더 울림이 큰 건 왜 일까.

유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악취문제 해결은 축산업과 도시민의 공존을 위한 최대 현안이다. 기존의 악취가스 감소대책은 거대한 악취방지시설을 만들어야 하므로 설치비.유지비가 많이 든다. 하지만 새로 개발한 이 기술은 미생물을 통해 악취가스를 분해하므로 비용부담이 적다.”

규제와 조직을 늘리고 키우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이미 개발된 ‘가성비’높은 기술을 신속하게 적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 아닐까? 농업현장에 왜 이리 지키기 힘든 규제와 틀만 난무하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농민을 위해 존재하는 농업관련 기관과 조직들이 왜 농민을 힘들게만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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