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기획
한국-미국의 WTO개도국 지위 문제, 또 다른 무역전쟁?미국과의 자동차 무역확장법 및 방위비 협상과 연계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 총성없는 무역전쟁이 총성이 있는 전쟁과 연계돼 세계평화 위협
- ‘농업 안보, 식량 안보’ 지켜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장면 1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74주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연설문 내용 중에 농업관련 부분.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농업을 전공한 청년이 아무르강가에서 남과 북, 러시아의 농부들과 대규모 콩농사를 짓고 청년의 동생이 서산에서 형의 콩으로 소를 키우는 나라입니다.” 좋다. 원대한 이상이 엿보인다 하겠다.

#장면 2 : 지난 9월 일본산 맥주의 한국 수출액이 99.9% 급감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에 대해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일본 기업에 경제적 악영향을 주려는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유감. 한·일 양국 관계가 엄중한 상황임에도 양국 간 인적 교류.경제 활동은 제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장면 3 :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최근 "시리아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 미군 철수명령은 재앙적 결정이다. 이익을 보는 측은 IS, 시리아 정부, 이란, 러시아일 것.”

#장면 4 :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해리포터’에까지 튀었다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30일 보도했다. 해리포터를 발행하는 출판사가 해리포터 시리즈를 중국에서 인쇄하기 때문에 나온 기사다. 미국이 지난 9월 중국산 제품 3천억 달러에 15% 관세를 부과했는데, 여기에 해리포터 책도 포함됐기 때문. 미국은 오는 12월부터 중국산 제품 3천억 달러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끌어올린다는 방침.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25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WTO 개도국 논의 관련 정부 입장및 대응 방향' 발표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 세계는 지금 무역전쟁 도미노. 농업분야는 안전한가?

앞서 언급한 4개의 장면들은 모두 2019년 하반기에 등장했다. 따끈따끈한 최신 소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의 깊게 봐야할 점은 이 4개의 장면들이 서로 별개가 아니라는 것, 따지고 보면 다 하나로 엮여 있다는 것이다. 진짜 총성이 울려 퍼지는 시리아와 터키 국경의 일도 , 미국과 중국이 옥수수와 돼지고기를 앞세워 벌이는 패권전쟁. 무역전쟁도, 일본 맥주를 안 마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대적 분위기도, 남북한과 러시아 청년들이 아무르강에서 콩농사를 짓자는 이야기도 모두 국가와 국가의 경제적 이해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얽혀 있단 뜻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지난 10월 25일, 우리나라에서는 ‘설마?’가 ‘역시나!’로 변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3일까지 대답해!”라는 엄포에 우리 정부가 25일에 “넵!”이라고 대답하고 나선 것이다. 맞다. 우리 정부가 지난 10월 25일 농업분야 WTO(세계무역기구)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결정을 온 천하에 공표했다. 다시 말해 앞으로는 WTO 협상에서 농업 분야 개발도상국에 주어지는 특혜를 더 이상 주장하지도 언급하지도 않겠노라는 결정이다.

경제분야 책임자랄 수 있는 홍남기 부총리는 서둘러 이렇게 입을 열었다. “우리 정부는 우리 농업의 민감분야는 최대한 보호하겠다. 하지만 WTO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더 이상은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농업에 막대한 타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농업의 문은 활짝 열어주겠다는 말 아닌가? 그리고 어떻게 농업의 민감분야를 보호하겠다는 것인가? 또한 농업이 민감분야만 보호한다고 되는 그리도 만만한 분야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이번 결정이 ‘농업 분야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는 아니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쌀을 포함한 농업분야 민감 품목에 대한 별도 협상권한을 확인했단다. 그러니까 당장은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없단다. 시간도 우리편이란다.

 

◇ 남북한 청년들이 아무르강에서 함께 콩농사를 짓자던 대통령 약속은 유효한가?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으리라는 걱정과 조바심으로 농민들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정부의 발표가 나자마자 전국의 30여개의 농업 단체들이 결집했다. ‘WTO 개도국 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을 만들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렇게 외쳤다. “▲개도국 지위 포기는 농업주권 포기다. ▲이는 농업 홀대의 결정판이다. ▲미국에 굴복한 굴욕외교다.”

가톨릭농민회 전국본부 정한길 회장도 "국민들의 먹거리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WTO 개도국 지위는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역시 성명에서 “우리 정부의 소극적 대응이 문제다.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강조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어긋나는 이번 결정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울분을 쏟아냈다.

농협 조합장들도 나섰다. 농협 농정통상위원회 조합장들이 지난 29일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대책을 촉구하는 대정부·국회 건의문을 국회와 정부에 전달했다. 전국의 250만 농업인들의 입장이라며 통계자료도 제시했다. 1995년 WTO 출범 이래 2018년까지 20년이 넘는 동안 농축산물 수입액은 69억 달러에서 274억 달러로 무려 4배 증가했다는 것. 사정이 이런데도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느냐는 것이다.

농업계를 비롯한 각계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의 이런 결정이 미국과의 자동차 무역확장법과 미국과의 방위비 협상과 연계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타당한 지적이다. 미국은 2019년 10월 말 현재 우리나라를 상대로 내년 방위비 분담금을 50억 달러 (약 6조원)으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미국은 11월엔 한국 자동차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외국산 수입 제품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조치)의 적용여부를 결정한다.

농민단체인 농민의길과 한국농축산연합회로 구성된 ‘WTO 개도국 지위유지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이하 농민공동행동)’은 25일 대외경제장관회의가 열린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도국 지위포기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사진=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 농업계의 거센 반발 “자동차와 방위비분담금 때문에 농업 포기하나?”

 

농업계는 화들짝 놀라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 중인 모습이다. 쌀 주산지인 전남과 지자체들이 그런 발 빠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쌀 주산지인 전남은 이번 정부의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이 쌀 분야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에 대비해 대책을 마련중이다.

쌀이 일반품목으로 풀리게 되면, 최대 513%이던 수입쌀 관세율이 154%로 떨어지게 되니까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고령화가 날로 심화되는 쌀농업 중심의 우리 농촌에 이런 결정은 걱정을 넘어 공포로 작용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뒷이야기도 들린다. 쌀 만큼은 식량안보 면에서 접근해야 된다는 당위마저 내다 버린 위험한 결정이라는 말도 쏟아지고 있다.

영광군의 행보가 특히 눈에 띈다. 농어업·농어촌의 공익적·다원적 기능을 수행하는 농·어업인에게 사회적 보상을 할 예정인데, 이를 ‘영광군 농어민공익수당’이라 이름 붙여서 내년부터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농산물 가격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고추, 양파, 대파에 대해 ‘영광군 주요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를 내년부터 본격 시행하기로 했다. 정부가 안 하면 우리가 한다는 게 농업현장의 행보인 셈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어떤 대책을 마련 중일까?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10월 30일 "농민들에게 당장의 불이익은 없다.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미래 협상 결과가 나올 때까지 농업 부문의 경쟁력을 차근차근 개선해 나가겠다"고 원론적인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김 장관은 또 “쌀을 포함한 민간 품목은 철저히 보호하겠다. 농업직불금을 WTO가 허용하는 보조인 공익형 직불제로 전환해 협상에 영향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의 말에 이상한 점이 있다. 우리 농민을 보호하겠다는 말보다 WTO협상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게 김 장관과 우리 정부의 속내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아닌가?

이낙연 국무총리도 목소리를 냈는데, 불 난 집에 부채질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이 총리는 "이번 WTO개도국 지위 포기결정을 농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농업경쟁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출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익을 최우선에 놓고 내린 결정“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달리말하자면 ‘국익이 최선이니 농업계도 알아서 체질개선하시오’라는 훈수 아닌 훈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것도 아닌가?

 

◇ 농민 포함한 온 국민이 정부의 대책마련을 철저하게 감시해야

WTO개도국지위 포기 문제로 국내에서 걱정과 한숨이 늘어가는 중에 중국의 여유있는(?) 목소리가 나와 눈길을 끈다. 바로 ‘중국은 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중국 관영언론의 보도 때문이다. 이 언론은 중국은 한국과 경제발전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결정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문제는 서방의 압력 때문이라고 성토했다.

중국 관영언론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좀 더 따져볼 문제지만, 실제로 미국과 일본 등 경제대국 중심의 상대국압박용 무역 규제조치는 매년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 지난 7월에 나온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감시 중간보고서를 보면, 2018년에만 새롭게 등장한 무역규제가 무려 127건으로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무역 규모 역시 400조원에 이른다는 것. WTO의 이 보고서는 무역긴장이 무역환경을 압도하는 증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총성없는 무역전쟁이 진짜 총성이 울려퍼지는 전쟁터와 다를 게 없음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힘들다는 건 알지만, 우리 정부의 지혜로운 대처를 기대한다. 농민을 위하고 온 국민을 위해서 말이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저작권자 © 한국영농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병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icon최신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