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다시피 김치는 항산화 효과, 피부노화 억제, 면역세포 활성화, 비만 억제, 변비예방, 아토피. 알레르기 개선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건강식품이다. 미국 건강잡지 헬스와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2006년과 2018년에 각각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한 바 있다. 영국 가디언이 꼽은 5대 건강식품은 김치, 렌틸콩, 낫토, 올리브유, 요구르트였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김치의 종주국은 어디일까? 우린 당연히 우리나라라고 생각하지만 외국에선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한국이 김치종주국의 위상을 지켜내기 버겁다는 소식은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일본이 기무치를 내세워 한국의 김치를 밀어내려 한다는 사실도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중국이 쓰촨의 파오차이(무,오이,양배추,고츠,배추 등을 염장한 절임식품)를 내세워 ‘김치공정’ 또는 ‘김치굴기(屈起)’를 진행중인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전전 정권에서 김치세계화를 기치로 노력했지만 별무소득이었다는 점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일본과 중국은 김치로 얽히고 설킨 관계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김치의 전량은 중국김치이며, 한국김치의 최대수출국은 일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김치를 수입해서 먹고, 일본에 김치를 수출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한자(漢字)와 불교(佛敎)가 중국에서 한반도에 전해지고, 이게 다시 일본으로 전파되는 과정과 유사해 보이기까지 한다. 김치종주국이 중국이라는 착시현상이 일어나기 딱 좋은 상황인 것이다.

어쩌면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김치를 중심에 놓고 조용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백두산과 중국의 동북공정, 독도와 일본의 영유권주장 외에도 김치를 둘러싼 한중일 3국의 경쟁과 각축전이 진행중인 것이다. 이에 한중일 김치의 소비패턴, 김치무역현황 , 김치수출 제고 방안 등을 3국의 문화와 함께 살펴본다.

한국과 일본과 중국은 김치로 얽히고 설킨 관계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김치의 전량은 중국김치이며, 한국김치의 최대수출국은 일본이기 때문이다. [사진=픽사베이]

◇ 한국은 중국에서 김치를 수입해 먹고, 일본에 김치를 수출한다

한국이 김치종주국이란 사실은 팩트를 넘어 진실이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2000년 대한민국의 말대로 '김치는 채소를 소금에 절인 뒤 양념을 버무려 저온에서 젖산(유산균) 발효한 것'으로 규정했고, 유네스코 역시 우리나라의 김장문화를 인류문화유산으로 인정했다. 김치는 또한 한국인의 밥상에서 삼시 세끼 빠지지 않고 오르는 스테디셀러. 그러다보니 전 복싱 세계챔피언 홍수환의 동생인 가수 홍수철이 1993년에 발매한 앨범에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짜/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짜짜..(중략)..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짜/ 나는 나는 너를 못 잊어 짜짜짜”라는 가사의 김치주제가라는 노래도 존재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김치의 여러 효능 중에서 항암 효과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관련 연구도 잇따르고 있다. 유산균, 유기산, 식이섬유 등 3개 요소가 항암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김치를 담글 때 마늘과 부추.고춧가루를 넣고 소금을 적게 쓰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또한 한국의 김치는 일본과 중국과 달리 젓갈과 쌀가루를 넣어 김치를 발효시켜 미생물을 활성화시킨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그런데 이렇듯 김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김치종주국 한국에서 김치 소비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 세계김치연구소가 발행한 김치산업동향 자료를 보면, 2018년 국민 1인당 김치 소비량은 36kg. 이 중 배추김치가 차지하는 비율은 74%로 2015년 76%에 비해 소폭 하락했다. 하지만 갓김치와 총각김치 등 다양한 김치를 즐기는 기호는 여전해서 아직까지는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 한국은 배추김치 소비 감소, 갓김치 등 소비 다각화와 김치의 항암효과 부각

일본은 김치를 우리보다 다양하게 소비하는 추세다. 일본에선 맥주 안주로 김치가 인기라는 것도 다양한 소비행태 중 하나. 술을 주문하면 무료로 김치가 서비스되는 일본의 술집에서 김치 소비패턴의 다양화와 김치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을 경험할 수 있다고 김치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일본에선 김치와 돼지고기를 조리한 김치덮밥(기무치 돈부리)를 편의점에서 언제든 사 먹을 수 있기도 하다.

일본은 대한민국 김치를 가장 많이 수입해서 먹는 나라이기도 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8년 김치수출은 9750만 달러(한화 약 1100억원)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을 일본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일본내 절임채소시장의 소비량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일본은 약 1조원대의 절임 채소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나라다. 최근엔 고춧가루를 넣는 한국식 김치 시장이 7천억원대 시장으로 부상했다. 일본 외에 우리나라 김치를 많이 수입해서 먹는 나라는 미국(900만 달러), 대만(500만 달러), 홍콩(450만 달러), 호주 (300만 달러) 등이다. 예전에는 일본수출이 90% 이상을 차지했었지만, 최근엔 수출국이 다변화되고 있는 추세.

한국의 김치와 일본의 기무치는 사실 크게 다른 점이 있다. 기무치는 김치처럼 자연발효식품이 아니고 사과산.구연산 등을 넣어 신맛을 내는 가공식품이다. 즉 겉절이 채소식품인 것이다. 더구나 일본 기무치는 일본인이 잘 먹지 않는 마늘과 젓갈 그리고 고추를 넣지 않고 단맛을 부각시킨 음식. 일본에서 김치소비가 가장 큰 도시는 재일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오사카인데 그 다음으로 도쿄의 우에노 김치시장, 후쿠오카 김치시장 순서로 소비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김치는 일본에서 다이어트 식품으로 입소문이 나서 젊은 여성들의 김치소비가 많다. 한국김치에 들어간 고춧가루의 캡사이신 성분이 지방을 분해한다는 말이 정설처럼 굳어진 때문이라고. 일본에선 실제로 김치를 섭취하지 않은 실험군과 김치를 섭취한 실험군의 체중,체지방, 운동효과, 기타 건강 등에 대한 실험 및 연구결과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치를 먹으면 날씬하고 건강해진다는 입소문 마케팅이 실행되고 있는 곳이 일본인 것이다.

일본에서 김치브랜드 1위의 명성을 자랑하는 업체의 대표는 자신들이 일본시장에서 점유율 최고를 기록하는 비결로 유산균, 나또, 치즈 등을 가미한 다양한 김치를 만들어내는 기술력과 상상력을 꼽고 있다. 실제로 이 회사에서 개발한 이치오시 라는 김치는 유산균을 200g짜리 김치 한 박스에 800억개씩을 넣은 제품이다. 또한 짠맛과 단맛을 다양하게 조절해 소비자의 기호와 연령을 각각 다르게 설정하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이 회사는 곧 한국에도 자사의 김치를 수출할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한국의 마트나 편의점에서 일본어가 적힌 포장지에 든 김치 아니 기무치를 볼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 일본은 김치를 맥주안주로도 소비, 김치가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은 쓰촨성에서 유래한 파오차이를 앞세워 김치시장을 공략중이다. 파오차이는 배추 무 오이 당근 등에 고추 생강 마늘을 넣고 소금 식초 설탕 바이주(白酒)를 섞은 물에 담가 발효시킨 절임음식. 한국 김치가 발효숙성 음식인 것과 달리 파오차이는 곧바로 먹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한류스타들의 영향으로 김치소비가 늘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인데, 중국인들은 한국 스타들을 롤모델로 한 소비 때문인지 김치를 미용식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젓갈이 든 김치는 인기가 높지 않고 오히려 고춧가루가 조금 들어간 김치가 인기다. 중국에선 김치가 노화방지 식품으로도 입소문이 퍼지고 있으며, 조류 인플루엔자(AI)와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예방식품으로도 소개된 바 있다.

이런 중국이 한국에 수출하는 김치는 어마어마하다. 한국이 수입하는 김치의 거의 전량이 중국김치라는 게 전문가와 통계기관의 분석이다. 관세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가 중국에서 수입하는 김치는 2014년 1억 달러(한화 약 1170억원)였던 것이 2018년엔 1억 4천만 달러(한화 약 1600억원)으로 증가했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는 김치 10㎏ 한 박스를 1만원 이하에 한국에 수출할 수 있는 가격경쟁력 때문이다.

세계김치연구소가 발간한 ‘2017년 김치산업동향’을 보면 중국김치의 가격경쟁력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산 김치의 평균단가는 2,661원, 중국산 김치의 평균단가는 918원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 김치 소비량의 14% 이상을 중국산김치가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중국에서는 한족도 김치를 먹기 때문에 텐진(天津)ㆍ베이징(北京) 에서도 김치소비량이 점점 늘고 있다. 중국 김치회사들은 앞으로 한국을 비롯해 동남아와 유럽 시장에도 수출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계김치연구소가 발간한 ‘2017년 김치산업동향’을 보면 한국산 김치의 평균단가는 2,661원, 중국산 김치의 평균단가는 918원으로 나타났다. 중국김치의 가격경쟁력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 김치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가격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사진은 세계김치연구소(소장 하재호)는 국내 바이오 벤처 회사인 ㈜리스큐어바이오사이언시스(대표 이사 진화섭)과 기능성 미생물 6종에 대한 기술 이전 협약을 체결하고 있는 모습 [사진=세계김치연구소]

◇ 다양하게 변주되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는 김치... 중국에선 미용식품으로도 인기

그렇다면 세계인들에게 김치는 과연 반찬일까 요리일까? '극한직업'이라는 영화 대사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말이 김치에도 적용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한국에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식당에서야 김치가 곁들임 음식이자 반찬이란 걸 쉽게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그토록 애쓰는 김치라는 말 그 자체로는 반찬인지 요리인지 구분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세계인들은 김치를 반찬으로 소비하는 걸까 요리로 먹고 있는 걸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나날이 늘어가는 김치 무역적자(지난해 약 450억원)과 김치세계화라는 숙제(?) 앞에 이 점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상상력의 확장을 위해서도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이나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밥을 주식으로 하지 않는 세계인들은 김치 하나만을 먹기엔 무리가 따른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서 우리도 그게 배추김치든 갓김치든 파김치든 김치 하나만을 먹지는 않는다. 늘 밥과 함께 먹는 게 김치라는 말이다. 사정이 이런데 김치를 외국인 특히 서양인들에게 몸에 좋으니 먹어보라고 김치 한 접시만 내놓은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그래서 김치가 세계적으로 명성은 자자하지만 소비가 늘어나고 수출이 증가하지는 않는 것인지 살펴보자는 말이다. 그들이 먹기 좋게 포장하고 변주하는 노력이 지금까진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김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국내산 김치의 품질을 높여 수입확대를 막고 수출을 늘리는 ‘김치산업육성방안’을 발표했다. 2022년 국내산 김치시장 점유율을 현 61%에서 70%로 늘리는 것이 목표.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배추김치를 포함한 전체 김치시장 규모는 2016년 기준 약 4조원 대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상품김치시장은 전체 김치시장의 약 30.3%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1조 2천억 원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이를 위해 농식품부는 국내산 김치의 ▲품질·안전 차별화 ▲내수시장 확대 및 신시장 개척 ▲표시·관리 강화 ▲김치원료 안정적 보급 ▲국내산 김치 소비·수출 확대 등을 주요 과제로 설정, 대책을 마련했다. 주요내용으로는 기존 30일인 김치 유지기한을 60일로 연장, 김치 맛·숙성도 등 ‘김치품질표시제’를 도입, 김치맛 표준지표 분석법 확립과 등급화를 위한 빅데이터를 축적, ‘학교급식 김치 표준’을 개발·보급 등이다. 군대에 납품하는 김치도 늘려나가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소비하는 김치를 국산으로 대폭 늘려나가겠다는 계획도 들어있다. 어린이, 성인, 노인 등 연령별 김치개발도 한다고 한다. 

또한 국내산 김치 상표도용 방지를 위해 김치 ‘국가명지리적표시제’ 도입도 추진한다. 김치산업진흥법을 개정하고, ‘김치의 날’을 지정한다고도 한다. 김치업계, 전문가, 유관기관 대표 등이 참여하고 있는 ‘김치산업정책포럼’을 통해 이행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해 나갈 계획이란다.

◇ 김치산업 활성화에도 스토리와 상상력이 필요하다.

다 좋다. 하지만 마케팅부문에서 많은 것이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맥주 안주로 김치를 먹는 일본, 다이어트 식품으로 김치를 대하는 일본, 한류스타들의 영향으로 미용식품으로 김치를 먹는 중국에서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1위 김치기업 대표의 말처럼 다양한 김치를 생산해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나가는 기획력과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김치산업육성 대책을 들여다보면 그저 ‘잘 만들면 잘 팔릴 것이다’라는 원론적인 부분만이 언급되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무리 김치를 잘 맛있게 만들어도 우리가 수출하고자 하는 나라의 현지 사정에 맞게 김치를 변주.변화시키고 그 나라 문화에 맞는 스토리와 상상력을 가미하지 않으면 김치수출과 김치세계화는 여전히 멀기만 할 것이다. 김치분야도 더욱 유연해져야만 한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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